“단순히 전기적 접근이나 역사적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영성(Spirituality)과 선교사적 목회(Missionary Pastoral Ministry)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한 훌륭한 연구”(박성규 총신대학교 총장)
들어가기(서론): “선교사적 목회자 조지 뮬러의 영성과 유산”(본서의 소제목)
조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 ‘5만 번의 기도 응답’ ‘고아들의 아버지’, 전설적인 조지 뮬러 그 이름. “그는 평생 어떻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였을까?” “그의 기도 응답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나도 조지 뮬러처럼 살 수 있을까요?”
‘조지 뮬러를 선교학적으로 분석한 유일한 학문적 성과’(정용암 교수 추천사). 본서는 그의 ‘기도영성과 청지기적 영성’ 그리고 그의 ‘믿음선교(Faith Mission)’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대답한다. 뮬러의 빛나는 ‘선교사적 목회사역’을 명쾌하게 밝히는 좋은 책(良書)이다.
‘조지 뮬러, 교회와 세상을 잇다’(송우석, CLC, 2026). 칼빈신학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M.A), Grace Theological Seminary(D. Miss),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Ph. D). 영국 브라이튼 한인교회 담임(2002- ) 예수제자운동(JDM). GMS 파송 선교사. Pilgrim Christian Centre UK 대표. Bethel College and Seminary in South Sudan 학장(2017- )
본서는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에 제출한(2025) 박사학위 논문이다. 뮬러의 영성, 그의 사역의 근간인 신학, 선교사적 목회와 선교, 선교사적 재정 관리, 영성의 선교학적 유산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저자는 로버트 클린턴(Robert Clinton)의 ‘리더십 개발의 6단계’를 가져와서 뮬러의 삶과 사역을 분석하였다. 서평자는 핵심 주제를 소개하면서 서평할 것이다.
1. 뮬러의 탁월한 영성, 그의 삶과 사역들의 비밀: ‘뮬러의 리더십 개발의 6단계’
1.1. 주권적 기초 단계(19세까지, 도둑질 거짓말 방탕한 삶)
뮬러는 독일 프로이센에서 세무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1805). 뮬러의 부친은 어린 아들들에게 상당량의 현금을 주면서 돈을 잘 관리하는 습관을 갖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10대 시절부터 뮬러는 도둑질과 거짓말에 익숙했고 각종 오락과 쾌락의 삶에 심취했다. 14세 때 뮬러의 어머니가 병사했을 때도 그는 선술집에서 카드놀이를 즐겼다. 세금을 훔쳐 값비싼 호텔에 머물다가 도망친 죄로 24일간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세(1825) 할레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는 여전히 사악하고 방탕한 삶을 계속 살았다. 11월 초에 친구 따라 매주 토요일 열리는 작은 성경공부 집회에 참석하여 뮬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그날 저녁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그의 자서전에 기록하였다. 그때부터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가족들에게 전했지만 냉대를 받았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많은 기도와 성경연구와 거룩한 생활을 통해 신성한 것들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p. 103)
1.2. 내적 삶의 성장 단계(20-24세, 내적 삶의 성장과 자질 개발)
회심 이후 뮬러는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완전히 변화되었다. 뮬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단호한 믿음과 신뢰를 보인 모델적인 인물이다. 20세가 되자 그는 선교문헌을 읽기 시작하며 점점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변화와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아버지는 맹렬히 반대했다. 할레대학 교수였던 프랑케가 지은 고아원 무료 숙소에 2달간 지냈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그가 영국 브리스톨에서 세우게 될 고아원에 대한 아이디어의 씨앗을 심으셨던 것이다.
그 후 뮬러는 23세 때, 런던의 빈민가 사람들의 영적, 물질적 필요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유대인 기독교 진흥을 위한 런던협회(LSPJ)’에 가입하였다. 뮬러는 LSPJ 소속된 선교사 학생으로서 히브리어/헬라어 연구와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나치게 공부에 열심한 나머지 건강을 잃은 뮬러는 의사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날씨가 좋은 시골지역 요양하기 위해 데본의 테인머스(Teignmouth)가서 지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뮬러는 만남의 복을 누린 자이다. 평생의 복음의 동역자, 스코틀랜드 국교회 아들인 헨리 크레이크(Henry Craik, 1805-1866)와 34년간 복음 안에서 폭넓은 교제와 더불어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뮬러는 1830(25살)년 10월에 신앙과 삶의 성숙한 견해를 가진 연상(5살)의 메리 그로브스(Mary Groves)와 결혼하며 가정을 이루었다.
1.3. 사역의 성숙 단계(25-44세, 개인성장, 실제적 리더십 기술 습득)
뮬러는 명목상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21세가 되어 비로소 영적 각성과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테인머스에 머무는 동안 성경을 깊이 연구하였다. 매일 아침 6-8시까지 기도와 성경 읽기 위해 동료학생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의 목회 철학을 정립한 시기였다. 하나님은 브리스톨에서 베데스다 채플 사역과 고아 사역을 준비하게 인도하신 것이다.
국내외성경지식연구소 설립(1834). 성경보급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지원, 선교를 돕고,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목적이었다. 1835년 10월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고, 일평생 기도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뮬러는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면서 1696년에 프랑케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할레에 고아원을 세웠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만으로 2천명의 어린이가 그 안에서 교육받았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았다. 1727년 프랑케가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30년 동안 모든 것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 프랑케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고, 고아들의 필요에 따른 현세적 복을 받았다는 것은 뮬러도 그와 같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p. 134,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1663-1727), 스페너와 함께 독일 경건주의자)
1.4. 삶과 성숙 단계(45-64세,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 단계-통합과 균형)
헨리 크레이크와 함께 베데스다교회를 목회하며 에쉴리 다운 고아원 사역에 전념하는 신앙의 모범, 일생 기도에 대한 변함없는 삶, 아이들의 영적 복지에 대한 깊은 헌신, 하나님의 공급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뮬러는 45세 때 버려진 아이들의 영적 복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였다.
“저는 젊었을 때 사탄을 많이 섬겼고, 이제 남은 지상 순례의 날 동안 하나님을 섬기기를 온 힘을 다해 소망합니다. 나는 마흔다섯 살 하고도 석 달입니다. 하루하루 지상에 머물러야 할 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온 힘을 다해 일하기를 원합니다. 돌봐야 할 고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약 5년 전 주 안에서 한 형제가 공식보고서를 통해 당시 영국 감옥에 6천명의 어린 고아들이 있다는 것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어린 고아들이 감옥에 있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는 지금 제가 돌보고 있는 3백명뿐만 아니라 앞으로 700명에게 필요한 모든 현세적 공급을 제공하는 데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나는 죽어가는 가난한 과부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고, 곧 버려질 힘없는 고아들을 바라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고아를 남겨 두고 부양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돕고 싶습니다.”(p. 142)
뮬러는 독일의 아버지의 죽음(1840)과 34년의 동역자 헨리 크레이크의 죽음(1866년), 그리고 40년을 함께 걸었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의 죽음(1870)과 뮬러의 유일한 딸, Lydia의 죽음(1890) 아픈 이별의 시련을 경험하였다. 뮬러는 66세에 수산나 그레이스와 재혼(1871), 그 후 25년간 한결같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다. 수산나는 결혼 23년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뮬러는 89세. 이후 뮬러는 애쉴리다운에 3번째로 지은 고아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1.5. 수렴(융합) 단계(65-80세, 개인적 리더십과 전문적 리더십의 융합)
뮬러는 회심 후 8년 동안 5번이나 선교사로 자원했었다. 65세가 되자 하나님은 그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세계선교사가 되는 것을 허락하셨다. 고아원 사역은 사위인 라이트에게 넘겨주고 1875-1892년까지, 17년간 42개국, 20만 마일 이상 해외순회설교로 300만 명 넘는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뮬러는 “성결을 갈망하는 영성과 삶은 거의 80세가 될 때까지 자신의 출판물에 사진이 함께 출판되는 것을 꾸준히 거부했다”(p. 153)
1.6. 여운 또는 완성.성화 단계(81-93세, 영적성장과 리더십 성취의 평생의 여정)
신앙을 행동으로 실천한 증거는 뮬러의 자서전과 연례 보고서에 다수 기록되었다.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한 그의 헌신과 실천한 기록들은 사적(私的)이며 아울러서 공적(公的)인 기독교 영성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지 뮬러의 인생 이야기는 영성, 개인적 거룩함, 활기차게 활동하는 신앙이 어떻게 일상생활의 구조에 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모범이 되고 있다. 그의 유산은 신자들이 개인적 경건과 실제적 봉사의 맥락에서 자신의 영적 행보의 깊이와 진정성을 고려하도록 도전하고 격려한다”(p. 155, 서평자는 본서를 읽으면서 뮬러는 비교적 젊은 나이(32세)부터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였음을 눈치채게 된다)
2. 조지 뮬러의 자서전 ‘6권’: ‘32세부터 초판 발행 이후 6권까지 출판되었다’
뮬러는 자신의 생애를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뮬러의 자서전은 1837년에 초판이 발행된 후에 1841년, 1845년, 1856년, 1874년, 1886년까지 6부로 출판되었고, 그의 사후 ‘Autobiography of George Muller’(Bristol: J. Nisbet)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뮬러는 자신의 삶과 사역을 32세부터 <국내외를 위한 지식연구소>의 ‘연례 보고서’ 형태로 계속 기록으로 남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투명한 삶의 모델이다.
뮬러가 감당했던 엄청난 사역들은 오늘날도 그의 자선재단/박물관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조지 뮬러 자선재단(Muller Foundation)과 그가 생전에 세웠던 고아원 건물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뮬러 박물관(The George Muller Museum)이 재개관되었다.
3. 조지 뮬러 사역의 근간인 신학: ‘개혁주의 신학전통과 복음과 경건주의 신앙에 기초’
뮬러는 브리스톨 소재 베데스타 채플에서 66년간 신실한 목회자로서 사역을 감당하였다. 우리는 뮬러의 영성과 사역의 원천과 근간은 건강한 신학에 있음을 위에서 확인하게 된다. 뮬러가 가졌던 신학적 배경은 14세기 존 위클리프에서 비롯된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하였다. 루터와 칼빈을 거쳐 독일의 경건주의자인 스페너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프랑케가 세운 할레대학교 시절 톨럭 교수 등으로부터 개혁신학을 배웠다. 뮬러는 20세 회심 이후 학문에 대한 열정이 히브리어/헬라어/라틴어 등 6-7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뮬러는 영국복음주의 운동, 18세기의 영국의 경건주의와 청교도 운동, 스코틀랜드의 언약도 운동, 19세기 브리스톨 사역 초기부터 플리머스 형제회 운동(The Brethren Movement)의 안토니 그로브스로부터 강한 영향력을 받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갖춘 뮬러는 그가 매일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읽으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믿는 신학적 토대 위에 성경이 가르쳐 주는 다양한 개혁주의자들과 경건주의자들의 신학 사상을 체득했기 때문에 자신의 목회와 형제회 신앙 운동으로 확산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p. 244)
4. 조지 뮬러의 선교사적 목회와 선교: 선교사적 목회의 출발, ‘국내외성경지식연구소’
뮬러가 브리스톨에서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으로 고아원 사역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18,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심각한 빈부의 격차로 점점 피폐해져 가는 시대였다. 영적으로 18세기 영적 각성운동으로 영국교회는 수많은 사역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하나님은 독일 태생의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1834년 뮬러는 영국인들의 성경지식 부족을 깊이 우려하면서, 성경이 모든 참된 지식의 원천이며 구원의 필수적임을 간파하며 국내외성경지식연구소(The Scriptural Knowledge Institution for Home and Abroad)를 설립하였다. 설립목적은 각종 학교설립과 지원/성경원리에 따라 가르침/성경보급/선교사지원/출판물 배포/고아사역 지원. 특히 뮬러는 성경보급과 복음전파를 위하여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파송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죠지 뮬러의 유산은 종종 고아들을 위한 그이 사역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브리스톨의 베데스다채플에서의 목회 사역은 그의 영적 리더십과 신학적 신념이 매일 구체화되는 현장이었다”(pp. 251-252). 뮬러의 66년간의 목회 활동은 성경에 대한 헌신, 하나님의 공급에 대한 절대 믿음(faith mission)은 당시로서는 혁신적 교회 리더십의 모델이 되었다.
조지 뮬러의 성경읽기: “규칙적으로 구약의 일부와 신약의 일부를 매일 읽는 것이 중요”
뮬러는 회심 이후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 성경공부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분명히 밝혔다. 성경읽기에 대한 그의 평생 습관을 확인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구약의 일부와 신약의 일부를 매일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성경의 내용을 연속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으로 내가 원하는 부분만 읽는 것은 성경의 다른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중략) 성경을 내 마음에 드는 부분만 여기 저기 읽는다면 특정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계시된 진리의 특정 부분이 유익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을 때 전체의 의미를 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어떤 좋아하는 견해만을 너무 강조하지 않게 되므로 잘못된 견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 전체를 담고 있으므로 우리는 때때로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아직 성경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매일 분량을 정해서 읽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pp. 253-254, 서평자는 ‘성경 전체를 읽는 최고의 방법’은 ‘맥체인 성경읽기’임을 30년 전 스코틀랜드 유학생활 중 발견한다)
나가는 말(결론): 뮬러는 오랫동안 자신이 전한 복음대로 살아왔다는 것’(찰스 스펄전)
뮬러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귀에 따갑도록 듣는 설교 예화, ‘5만 번의 기도 응답의 기도의 사람’. 그는 평생 1만여 명의 고아들을 돌보며 70세 이후 더 멋진 세계선교를 오직 믿음선교(faith mission)로 감당하였다. 중국내지선교회(CIM, 현재는 OMF)의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와 당시 수많은 선교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도한 대로 응답을 받는 삶! 사실상, 뮬러는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의 삶을 살았다.
뮬러의 설교는 그렇게 유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설교한 대로 살았던 사람이다. 사도 바울과 같이 삶으로 본을 보였던(고전11:1) 자이다. 뮬러의 설교를 여러 번 들었던 찰스 스펄전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유창한 설교보다 설교한 대로 사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밀러는 다음과 같이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이 뮬러의 설교를 듣고 평가한 말을 적었다. “뮬러의 설교는 그 자체로 매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스펄전은 자신이 들었던 그의 설교 중에 하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설교에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설교의 어법과 구조는 평범한 주일학교 교사의 설교보다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 뒤에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비밀이었습니다. 그는 웅변이 없었습니다. 그는 새롭거나 눈에 띄는 방식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투나 태도에는 진정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명의 사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자신이 전한 복음대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pp. 313-314, D.L 무디 역시 그가 설교한 대로 살았던 삶이 있었던 전도자였다)
서평 후기: ‘주님! 설교한 대로, 가르친 대로 살게 하소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조지 뮬러는 나의 큰 바위 얼굴이다. 그가 70년간 살았던 같은 영국 하늘 아래 살면서 뮬러처럼 살기 원한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 바울 선배님을 쫓아가기가 너무 버겁다. 특히 70세 이후 더욱더 빛나는 선교사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이 서평을 쓰면서, 지금까지 개인 선교서신에 써왔던 ‘은행후원 계좌’를 이제부터 당장 안 쓰기로 결단하였다.
서평자는 코로나 시절에 ‘성경, 나의 사랑 나의 생명’(국민북스, 2020)을 출판하였다. 로마 가톨릭의 대륙, 파라과이에서 (7년) 사역하면서 ‘성경은 100% 하나님의 말씀’임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화석화(化石化)된 교리에 찌들려 있는 중남미의 영적기상도의 실상을 보면서 탄식하며 쓴 책이다. 2,000년 교회사에 성경읽기의 최고의 모델로 조지 뮬러와 박희천 은사 목사님(99세)을 이 책에서 소개하였다. 신·구약성경 전체를 매일 읽는 최고의 성경읽기는 ‘맥체인 성경읽기’임을 아울러서 이 책에서 소개하였다.
‘조지 뮬러, 교회와 세상을 잇다’가 종이책/e.book으로 동시에 출판된 것은 한국교회의 희소식이다. 지금까지 조지 뮬러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었지만, 솔직히 이런 책을 없었다. 우리는 조지 뮬러를 잘 모르면서 ‘기도 많이 하라는 예화거리’로 사용했는지 모른다. 그는 “평생 무릎 꿇고” 신구약 성경 전체를 읽었다. 그는 베데스타채플에서 66년간 성실하게 선교적 목회를 감당하였다. 70세(1875) 이후 17년 동안 순회선교사로서 42개국의 3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진정한 ‘선교사적 목회자’였다. 모든 교회지도자와 선교현장의 동료 선교사들에게 본서를 강추하고 싶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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