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현 박사(시각장애인)
허용현 박사(시각장애인)
주일의 빛은 서서히 저물고, 월요일은 다시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예배당에는 기도의 고요가 깊게 내려앉고, 도시는 수많은 사람의 숨결을 품은 채 다시 깨어난다.

닫히는 것은 교회의 문이지만, 그 순간 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무대이다. 직장의 출입문이 열리고, 학교의 종이 울리며, 관공서의 민원창구에는 하루의 불빛이 켜진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자리로 흩어지지만, 그 삶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소명의 자리이며, 성도는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세상에 파송받는다.

그 파송은 비장애인만을 향한 부르심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 역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그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상과 분리된 피난처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도록 세워진 언약 공동체로 부르신다. 복음은 사람을 수혜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부르기 때문에, 교회는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함께 섬기며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예배는 끝났지만, 예배자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예배는 성도를 세상에서 철수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삶 속에서 드러내도록 다시 세우는 시간이다.

예배는 말씀과 성례 가운데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다. 성령께서는 그 은혜로 성도를 새롭게 하신다. 그리고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게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 가운데 성도의 삶을 통하여 세상 속에서 드러난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충만하게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오늘의 세상은 여전히 죄와 그 결과를 깊이 안고 살아간다. 성경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이 멀어졌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신뢰 붕괴와 고립은 타락한 인간의 죄성을 드러낸다.

고독은 죄가 남긴 그림자이며, 관계의 붕괴는 그 그림자가 드리운 흔적이다. 제도는 발전했지만 관계는 메말랐고, 연결은 늘었지만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정부가 발표한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2,412명이던 고독사는 2023년 3,924명으로 약 1.6배 증가했다. 사회적 고립도 역시 상승해,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제도만으로는 이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제도는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서로를 끝까지 기억하고 붙드는 관계까지 대신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자살예방과 고독사 예방의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교회는 복음 안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공동체라는 본래의 사명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복음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신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새롭게 회복하신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문제이며, 관계를 다시 세우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그 책임은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을 향한 관심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고립은 시각장애인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동의 어려움과 정보 접근의 한계, 관계망의 축소는 시각장애인을 더욱 깊은 외로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실제로 자살예방 정책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고립 위험군에 대한 조기 발견과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누가 옳은 말을 하는가”보다 “누가 끝까지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인가”를 묻는다. 최근 정부는 자살예방 정책을 설명하면서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4월 자살 사망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8% 감소했고, 4월 자살 사망자는 1,061명으로 15.7% 줄었다. 정부는 이러한 감소세를 이어가기 위해 국가자살대응실 신설을 추진하고, 자살시도자의 치료·퇴원 후 사례관리와 지역사회 연계를 포함한 전 주기 지원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국가는 제도를 만들고, 지역사회는 안전망을 만들며, 종교계와 시민사회에도 함께 생명을 지키자고 요청하고 있다. 생명존중은 정부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지역사회와 종교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이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붕괴와 공동체의 약화가 드러나는 사회적 신호이기도 하다. 누군가 혼자 무너지고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붙들어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독사 현장을 경험한 전문가들은 삶을 포기하기보다 끝까지 버티려 한 흔적을 자주 발견한다고 말한다. 이는 많은 사람이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교회는 불편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사람을 혼자 두지 말자”고 말하는데, 교회는 정말 사람을 혼자 두지 않고 있는가.

특히 시각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대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동역자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장애인 평생교육과 신앙교육을 이어 가고, 생명지킴이 교육과 지속적인 돌봄을 통해 끝까지 관계를 붙드는 공동체를 세워 가야 한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동료상담과 말벗 활동, 지역사회 봉사에 참여하며 같은 장애를 가진 이웃의 회복을 돕고 있다.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동역자가 되고 있다는 점은 장애인이 복음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한국교회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교인은 많아졌는데 외로운 사람은 줄었는가. 예배는 많아졌는데 절망한 사람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있는가.

성경은 놀랍게도 이 질문을 오래전에 던졌다. 하나님은 창조 직후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홀로 남겨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셨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고,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셨으며, 십자가 곁의 죄인에게도 마지막 희망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기준은 성공이 아니라 생명이며, 경쟁이 아니라 회복이다.

그래서 예배는 현실을 잠시 잊는 시간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세상 가운데 순종하도록 준비되는 시간이다. 예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은혜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음을 다시 기억한다.

우리는 용서받았고, 포기되지 않았으며, 언약 안에서 붙들린 존재임을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은 성도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의 손을 놓지 않는다.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보다 다른 사람의 회복을 먼저 바라본다. 용서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준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흘려보낸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의 백성을 세우며, 언약의 백성은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로 살아간다. 언약 공동체는 서로를 소비하는 관계가 아니라, 약한 지체를 함께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예배는 우리의 눈을 새롭게 연다. 사람을 재는 눈을 사람을 품는 눈으로 바꾸신다.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을 바꾼다.

익숙한 길만 걷던 발걸음은 상처 입은 이웃 곁으로 방향을 바꾸고, 머뭇거리던 걸음은 마침내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복음은 먼저 말씀으로 선포된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린다. 성령께서 믿는 자를 변화시키신다. 사랑과 섬김은 그 변화가 맺는 열매이다.

이 원리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 우리 사회의 여러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일보는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받은 기획기사에서, AI와의 대화가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자살·자해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을 지적하며,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동체와 돌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교회도 이러한 사명을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선교와 재활을 이어 온 한국밀알선교단 은 예배와 제자훈련뿐 아니라 동료상담, 직업훈련, 문화활동, 지역사회 봉사를 통해 시각장애인과 장애인이 복음의 대상을 넘어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곁에 함께 있는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계신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은혜의 통로이다. 말씀으로 생명을 일으킨다. 성례로 은혜를 나눈다. 삶은 복음을 세상에 비춘다.

교회 공동체는 복음의 빛을 품고, 사랑의 온기를 이웃에게 전하는 생명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받은 은혜를 사랑으로 흘려보내며,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섬겨야 한다.

이 사명은 교회 안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직업과 공적 책임의 자리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공무원과 선출직 공직자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로서 공적 권한을 위임받은 신앙인은 무엇보다 자신의 공적 책무 속에서 이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국민은 공직자의 신앙 고백보다 직무 수행에서 드러나는 공정과 청렴, 책임 있는 행정을 먼저 평가한다.

가장 약한 사람을 보호했는지, 공적 권한을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하여 행사했는지, 이해충돌을 경계하며 책임 있게 의사결정했는지를 기억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공직자가 위임받은 권한을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하여 행사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도록 이끈다. 권력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공의와 겸손으로 공직을 감당하게 한다.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일수록 국민 앞에서도 더 겸손해야 한다. 사람들은 교회의 십자가를 보기 전에 교회의 태도를 본다. 설교를 듣기 전에 그리스도인의 선택을 본다.

사람들은 신앙고백을 귀로 듣기보다, 공직자의 결정과 기업인의 경영, 교사의 가르침과 부모의 삶에 새겨진 복음을 먼저 읽는다. 공직자의 신앙은 개인의 경건에서 끝나지 않고, 공정한 행정, 책임 있는 정책 결정, 청렴한 직무 수행으로 검증된다.

그러나 복음의 책임은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공직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도 공동체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리를 요구하는 제도인 동시에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공동의 약속이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권리의 주장만큼 공동선을 위한 책임과 참여를 요구한다.

무관심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작은 관심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문득 걸려 온 안부 전화 한 통, 함께 식사하자는 한마디, 절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시간은 거창하지 않지만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된다. 바로 이러한 작은 실천이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이 세상은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나뉘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교회 역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를 자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일어섰는가를 기뻐하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오래 예배했는가를 말하는가, 아니면 얼마나 오래 한 사람의 곁에 머물렀는가를 말하는가.

교회의 크기는 첨탑의 높이가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고 품어 낸 생명의 깊이로 헤아려져야 한다.

그러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매주 예배를 마친 성도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신다. 예배의 마지막에는 축도가 있다. 그러나 축도는 끝을 알리는 말이 아니다. 은혜와 평강 가운데 성도를 세상으로 보내는 선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은혜를 받은 성도를 파송하신다. 각자의 소명의 자리로 보내신다.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우신다.

가정의 식탁으로, 학교의 교실로, 병원의 병상 곁으로, 기업의 일터로, 공직의 책상으로, 그리고 지역사회의 골목마다 우리를 보내신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과 삶으로 증거하도록 보내신다.

예배는 교회의 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작이다. 우리가 예배당을 떠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첫 번째 위로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름 없는 한 사람을 통해 또 다른 한 사람의 생명을 붙드신다.

오늘도 세상은 교회를 향해 묻는다.

“무엇을 믿습니까?”

아니다. 사실은 이렇게 묻고 있다.

“누구를 끝까지 사랑했습니까?”

오늘도 복음을 받은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누구를 돌보며,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는가.”

허용현 박사(시각장애인)
사회적협동조합 청명자립생활센터 이사장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 제1회 졸업
경영학박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애능중앙교회 출석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허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