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 종교들의 신들의 폭력적인 성스러움의 종언: 종교다원주의의 황혼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옛 해석, 새 해석과 제3해석(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예수 십자가 죽음을 신화로 간주하고 이성적 세계관을 지닌 현대인들에 대하여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관점에 대하여 프랑스의 인류문화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십자가 해석은 정통 기독교와 사복음서의 속죄 해석를 복권시키고 있다. 이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지라르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창세 이후의 무수한 종교가 수행한 은폐된 희생양 제사(scape goat sacrifice)의 거짓을 폭로함으로써 희생양 메카니즘(scape goat mechanism)에 종언(終焉)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는 모든 종교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해석한다.

지라르는 이를 가인과 아벨에 대한 성경 이야기와 로마의 건국신화의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정일권, 『십자가의 인류학: 미메시스 이론과 그네 지라르』, 대장간, 2015, 118.) 성경 이야기는 가인의 동생 아벨 살해를 비판하고 희생당한 아벨의 피의 호소를 신원해주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데 반해서, 로마 신화는 희생당한 레무스의 피에 대해 무관심하고 가인의 정치학으로 유지되는 제국(帝國)을 보여준다. 신화비판 정신을 지닌 성경은 아벨의 피로부터 시작하여 예언자들의 피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에 이르기까지 희생양들, 즉 희생당한 자들의 피와 목소리를 변호한다.

예수의 부활은 폭력적인 성스러움의 황혼을 문명 속에 가져왔다. 지라르는 예수의 부활은 종교다원주의의 황혼을 가져왔다고 해석한다. 판넨베르크가 모든 종교사와 세계사를 참된 하나님에 대한 점진적인 계시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데 반하여 자라르는 모든 종교사와 세계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속에서 황혼(黃昏)에 이르게 된 것을 주장한다. 판넨베르그가 신화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판단을 하면서 신화 속에서 신적인 것에 대한 첫 번째 형태의 계시를 보는 데 반하여 지라르는 신화를 인류 집단의 투영으로 파악하여 종교와 계시의 대립을 강조한다.( Raymund Schwager, “René Girard und Wolfhart Pannenberg: Religionswissenschaft udn Theologie,” Kerygma und Mythos. Zeitschrift für theologische Forschung und kirchliche Lehre 44(1998), 172-192.)

독일 보편사 신학자 판넨베르그는 종교사와 세계사를 그의 신학의 지평으로 하면서 종교사에 있는 계시의 역사와 죄악의 역사와 왜곡된 관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바르트의 신학적 종교비판이 지니는 진리의 요소”를 수용한다.( Wolfhart 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I. (Gö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8), 195.) 이에 반하여 지라르는 바르트처럼 종교들에 대한 교의학적 주장을 제시하기보다는 인류학적인 접근을 하여, 경험적인 가설, 즉 희생양 메카니즘에 기초해서 종교사의 다양하면서도 기괴한 현상을 설명한다.

지라르는 신화의 기원을 엑스타스적인 투영 속에서 발견한다. 종교들의 엑스타스적 광기 속에서 집단적인 폭력의 희생양은 살해되거나 추방된 이후 신성화된다. 그리고 공동체는 그 살해되고 추방된 희생양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한다. 종교들의 공동체는 이런 방식으로 내부의 폭력을 외부로 배설시키고 유출함으로써 자기 파괴와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하고자 했다. 이것이 희생양 메카니즘이다. 지라르는 희생양 메카니즘의 가설을 통하여 종교사의 종교들의 폭력적 성스러움의 가식을 벗겨내고 그의 비진리성을 들추어내었다. 지라르는 “급진적인 신화해석”에 있어서 신들에게 돌려지는 피로 얼룩진 희생제의적 폭력, 성적 방탕과 도착 등을 들추어낸다. 여기서 신화는 한 개인 희생양의 엄청난 죄악들을 들추어내며, 세계 신화의 신들은 거의 디오니소스적인 통음난무(痛飮亂舞) 혹은 오이디푸스적 죄악을 범하는 성범죄자이다. 이 신들이 집단의 희생양이다.

이집트 이시스-오시리스 신화는 살해된 신에 대한 고대 신화의 발전된 형태다. 이시스와 오시리스 여신은 죽음 세계의 신으로서 무덤의 신이요 죽은 자의 신이다. 예수의 부활은 무덤종교의 디오니소스적 영원회귀를 종언시키는 사건이다. 지라르는 “무덤의 메타포”에 관하여 논한다: 인류의 문화는 항상 무덤에서 나온다. 무덤은 희생양 위에 세워진 인류의 최초의 기념비요, 모든 의미내용 중에서 최초의 근본적 지층이다. 무덤 없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고, 문화 없는 무덤도 존재하지 않는다.( René Girard,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Freiburg/Basel/Wien: Herder, 1983), 85.) 무덤은 그것이 은폐하는 시체 주위에 세워진다. 살해는 무덤을 부르고 무덤은 살해의 연장이자 영구화를 의미한다. 무덤종교의 제의는 인류의 첫 공동체에 의해서 성취된 창조적 전이(轉移) 때문에 희생양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René Girard, The Girard Reader, ed. James G. Williams (New York: Crossroad, 1996), 163.) 무덤들은 본래 집단적인 폭력행위들의 희생양들의 시체들을 은폐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라르는 그의 논문 “발생적 희생양 만들기”(Generative Scapegoating)에서 예수는 스스로 대속적으로 고통을 받음으로써 희생양 메카니즘을 극복했음으로 예수의 수난에 와서 희생양 모티브가 변화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René Girard, “Generative Scapegoating,” in Violent Origins: Walter Burkert, René Girard, and Jonathan Z. Smith on Ritual Killing and Cultural Formation, ed. Robert G. Hamerton-Kelly (Standford: Standford University Press, 1986), 43-145.) 예수는 부활함으로써 빈무덤을 남겼고 여태까지 인류의 종교들과 문화 역사의 지하(地下)를 폭로하였다.(René Girard, “Les malédictions contre les pharisiens et la révélation évangélique,” in Bulletin du Centre Protestant d’Etudes 27:3 (1975), 5-29.) 아벨의 피 이후로 인류를 지배해 왔던 폭력이 예수에게도 가해졌다. 예수는 살해된 자로서 그이전의 수많은 희생양들처럼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나 무덤을 스스로 헤치고 나왔다. 막달라 마리아는 직접 무덤을 열었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서 빈무덤의 증인이었다.

성경의 빈무덤 이야기는 이집트 신화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는 폭력과 무덤의 세계에 갇혀있고 폭력과 죽음의 권세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상자를 열어야만 했으나 이집트 신화는 복수자와 구원자로서 등장하는 호루스(Horus)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한다.(정일권, 『십자가의 인류학: 미메시스 이론과 그네 지라르』, 대장간, 2015, 150.)

이에 반해서 성경의 빈무덤 이야기에서는 직접 무덤을 연 자는 마리아가 아니라 천사다. 예수는 처형되었다가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일으킴을 받고 스스로 나왔다. 예수는 예수 자신이 사망에 대한 승리자로서 자신을 배신하고 생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예수는 복수(復讐)하러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 가운데서 용서와 평화의 소식을 전했다. 예수는 무덤의 문을 열고 나와서 부활하셨고 신화들, 종교들, 문화들의 지하세계를 여셨다. 예수는 그의 부활을 통하여 미아라들, 피라미드적인 왕들의 무덤들과 지하적인 신비종교의 은폐된 세계를 해방하였다. 예수는 그의 부활을 통하여 모든 종교들의 신들에 의한 구원의 길에 황혼을 가져왔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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