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의 출발점은 대통령도, 국회도, 사법부도 아니다. 그 출발점은 국민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분명히 선언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은 단순한 헌법 문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존재 이유이며, 모든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다.
대통령도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회도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정부와 모든 공권력 역시 국민주권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다.
따라서 국민의 한 표는 단순한 투표지가 아니다. 그 한 표 안에는 헌법 제1조가 담겨 있고, 국민주권이 담겨 있으며, 대통령과 국회와 지방권력을 세우는 국가권력의 원천이 담겨 있다.
국민의 한 표가 지켜질 때 민주공화국은 바로 서고, 그 한 표가 흔들릴 때 국가권력의 정당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6·3 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거관리 관련 의혹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어느 투표소에서 행정적 혼선이 있었느냐가 아니다. 국민의 투표권이 현장에서 충분히 보장되었는가, 선거관리 절차는 투명하게 운영되었는가,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자료와 증거가 보전되고 공개되고 있는가의 문제다.
국민은 묻고 있다.
왜 투표용지가 부족했는가.
어느 투표소에서 얼마나 부족했는가.
추가로 송부된 투표용지는 몇 장이며,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했는가.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간 유권자는 없었는가.
투표함과 선거 관련 자료는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가.
선거관리 책임기관은 국민이 납득할 만큼 충분히 설명했는가.
이 질문들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위한 질문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질문이며, 국민주권의 질문이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묻는 질문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사실 확인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증거 보전이며, 객관적 검증이다.
만약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관계기관은 자료를 공개하고 증거를 보전해 국민 앞에 명확히 설명하면 된다. 문제가 없다면 검증을 피할 이유가 없다. 떳떳하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민주주의는 의혹을 덮는 방식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사실을 공개하고, 증거를 보전하고, 국민 앞에서 검증할 때 지켜진다.
물론 형사법적으로 특정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는 고의성, 조직성, 실행 행위, 결과 발생 여부 등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사법적 판단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헌법 원리의 관점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국민의 투표권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거나 왜곡한 행위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행정 실수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국민주권의 원천을 흔드는 행위이며, 국가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훼손하는 중대한 헌정질서 침해로 평가될 수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불법적으로 빼앗는 행위가 전통적으로 쿠데타라 불린다면, 국민의 한 표를 의도적으로 막거나 왜곡하는 행위는 그에 비견될 만큼 근원적인 국민주권 침해로 평가될 수 있다. 전자는 이미 형성된 권력을 빼앗는 것이지만, 후자는 권력이 형성되는 원천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 앞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문제의식은 결코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한 표가 흔들렸다고 느끼는 순간, 시민은 당연히 묻고 항의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선동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가지는 정당한 권리이며, 동시에 국가를 위해 감당해야 할 시민적 책임이다.
국회에서 진상조사 절차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국민적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형식적 조사와 정치적 공방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불신과 실망이 커지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절차의 개시가 아니라 진실의 확인이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선관위와 관계기관의 설명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투표용지 인쇄·배정·보관·이송·회수 전 과정, 추가 송부 내역,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 여부, 투표록·개표록·CCTV·참관인 기록 등 핵심 자료를 확보해 국민 앞에 검증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사안은 선거관리기관 자체가 조사 대상이 되는 문제인 만큼, 일반적인 내부 조사나 형식적 국정조사만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국민과 야당이 신뢰할 수 있는 추천 절차를 통해 독립적 특별검사를 임명하고, 그 특검이 증거 확보와 책임 규명은 물론 조직적 개입 의혹의 존재 여부까지 엄정하게 확인해야 한다.
국정조사와 특검이 진상규명의 출발점이 되지 못하고 정치적 봉합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아니라 국민적 분노와 실망을 더 키우는 길이 될 것이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정략의 언어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검, 증거 보전, 수개표, 선거무효 및 재선거 검토는 서로 충돌하는 주장이 아니다. 중대한 절차상 문제가 사실로 확인되고, 그 문제가 선거의 공정성과 결과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선거무효 및 재선거 여부까지 검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재선거 요구를 무조건 정략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민주권의 본질을 회피하는 태도다. 반대로 재선거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모든 절차를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모든 합법적 수단을 열어 놓고, 사실과 증거에 따라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민의 정당한 문제 제기와 의사표현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겁박받을 대상이 아니다. 국민은 협박받을 대상이 아니다. 국민은 주권자다.
정치권과 수사기관, 선거관리 책임기관은 국민의 질문을 불온시하거나 조롱하거나 낙인찍기 전에, 먼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선거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면, 그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국민을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공개하고 책임 있게 답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을 향한 엄중 대처가 아니다. 국민을 통제와 경고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거관리 실패와 참정권 침해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며, 책임 있는 설명이고, 선거관리의 정상화다.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목회자가 왜 정치 문제를 말하느냐.”
“교회는 정교분리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
“그냥 복음만 전하라.”
그러나 정교분리란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거나 간섭하지 말라는 원칙이지, 신앙인이 나라의 불의와 국민의 기본권 문제 앞에서 침묵하라는 뜻이 아니다.
교회가 권력을 장악하자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가 정당 정치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라의 공의가 무너지고, 국민의 기본권이 흔들리고, 진실이 가려지고 있다면 목회자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왕과 권력 앞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다. 신약의 사도들은 위협과 박해 앞에서도 진리를 굽히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죄를 지적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에게도 누군가는 말했을 것이다.
“왜 권력 문제를 건드리는가.”
“그냥 종교 이야기만 하라.”
그러나 성경의 신앙은 진리와 공의를 분리하지 않는다. 참된 복음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울 뿐 아니라, 거짓과 불의 앞에서도 양심을 지키게 한다.
성경은 아모스 5장 24절에서 말씀한다.
“공의를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 말씀 앞에 다시 서야 한다. 교회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목회자가 시대의 분위기에 끌려가며, 성도들이 불의 앞에서 침묵한다면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
특히 이재명 정권하에서 국민의 정당한 문제 제기가 통제와 낙인의 대상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앞에서 기독교는 각성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진실과 공의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침묵해서는 안 된다.
무릎으로 기도했다면 이제 발로 현장에 서야 한다. 입술로 기도했다면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께 공의를 구했다면 이제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시대적 과제는 분명하다. 국민의 참정권이 지켜져야 한다. 선거관리의 전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투표용지 인쇄·배정·보관·이송·회수의 전 과정은 국민 앞에 설명되어야 한다. 투표록, 개표록, CCTV, 참관인 기록, 이의제기 기록, 현장 보고서는 보전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대통령도, 국회도, 정부도, 선관위도, 수사기관도 국민 위에 있을 수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모든 권력기관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하고,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
국민의 한 표는 작아 보이지만, 그 한 표 위에 민주공화국이 서 있다. 한 표가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한 표가 지켜질 때 국민주권도 지켜진다.
그러므로 국민의 한 표를 지키는 일은 특정 정당의 일이 아니다. 특정 진영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일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일이고, 국민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의 의문을 정략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선관위와 관계기관은 더 이상 부분적 해명으로 사태를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진실을 원한다.
국민은 책임을 원한다.
국민은 선거 정의의 회복을 원한다.
선거는 국민의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역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국민의 한 표가 주권이다. 그 한 표를 지킬 때 비로소 자유민주공화국도 지켜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동호 목사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보수교단총연합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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