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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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3–6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복음의 원리를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믿음의 조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아브라함조차 행위나 공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경은 분명히 증언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막연한 신념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떠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말씀을 따라 나아갔다. 믿음은 모든 것이 보장된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사라는 단산하였고, 그들의 몸은 생명을 낳을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이시며 그의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능력이나 현실의 조건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이것은 율법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아브라함은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은혜로 부르시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

바울은 이어서 일하는 자와 은혜를 받는 자를 대비한다.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삯은 은혜가 아니라 보수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 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주님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 없이는 설 수 없는 죄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도 이 은혜의 세계를 보여준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도 한 데나리온을 받고, 마지막 시간에 온 사람도 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이것은 계산의 세계가 아니라 주인의 은총의 세계다. 하나님 나라는 공로의 크기로 서열을 정하는 곳이 아니라, 자격 없는 자를 불러 은혜로 채우시는 나라다.

신앙의 위기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행위와 공로를 앞세울 때 찾아온다. 바울은 자신이 가졌던 혈통과 율법의 열심과 종교적 자랑을 모두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붙드는 것이 바울의 신앙이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하는가. 나의 열심인가, 나의 헌신인가, 나의 경건인가. 그러나 아브라함도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다만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은혜 앞에 선다. 하나님은 오늘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자를 의롭다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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