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수년째 여름 방학이 되면 영국을 방문하곤 한다. 영국의 기독교 유적지를 탐방할 때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있다. 존 번연(John Bunyan)의 고향인 ‘베드포드’(Bedford)이다. 이유는 그가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의 배경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 책은 딱딱한 교리가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쓴 걸작품이다.

『천로역정』은 번연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베드포드를 방문해 보면, 그 책이 그냥 상상력으로 쓴 책이 아니라 번연이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던 고향 마을과 교회와 성을 기초로 해서 상상력을 발휘한 책임을 알 수 있다.

그의 투옥 시기는 1660~1672년이다. 무려 12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허가 없이 설교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당시는 영국에서 국교회(성공회)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던 시대였다. 왕정복고 이후, 정부는 국가가 승인한 교회 밖에서의 설교를 금지했다. 번연은 국교회 소속이 아닌 비국교도(Nonconformist) 설교자였기에 설교할 자격이 없었다.

1660년, 그는 한 시골 마을에서 설교하다가 체포된다. 당국은 그에게 “설교를 그만두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주겠다”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번연의 대답은 분명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설교를 멈출 수 없다. 오늘 내가 감옥에서 풀려난다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일 다시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든지 풀려날 기회가 있었다. 한 가지 조건만 받아들이면 됐다. “설교하지 않겠다”는 약속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당국은 그를 12년 동안 감옥에 그대로 두었다. 번연에게는 집에 눈먼 딸이 있었다. 판사들에게 탄원하며 지쳐버린 아내도 있었다. 몸은 추위에 떨었고, 감방은 축축했다. 몇 달마다 누군가가 찾아와 같은 제안을 했다. 설교를 멈추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번연의 대답은 늘 같았다. “아니”라고.

책상도 없고, 도서관도 없고, 내일에 대한 보장도 없는 그곳에서 12년을 보냈다. 이 얼마나 큰 낭비인가! 순간적으로 타협하고 집에 돌아가 몰래몰래 복음을 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다니!

하지만 그게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었음이 훗날 밝혀진다. 번연은 감옥에서 펜을 들고 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파멸의 도시에서 천성으로 가는 한 사람, ‘크리스천’의 이야기.”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번연이 감옥에서 12년간 투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성경 다음으로 위대한 작품인 천로역정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번연이 현실과 타협해서 투옥되지 않고 숨어서 복음을 전했다면 복음 이야기를 쉽게 써 내려간 『천로역정』이라는 책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수가 있었을까? 한 사람이 두루 다니면서 설교하는 일과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온 세상에 영향 끼치는 일은 족히 비교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번연의 몸은 감옥 속에 갇혀 있었지만, 그가 쓴 『천로역정』이라는 복음 이야기는 결코 갇혀 있을 수가 없었다. 딤후 2: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누구도 붙들어 맬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경우가 그랬듯이, 번연의 경우도 그러했다.

이 놀라운 작품 『천로역정』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위대한 설교자들이 즐비하다. 설교의 왕자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대각성 운동의 대표 설교자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19세기 대부흥 전도자 'D. L. 무디'(D. L. Moody), 20세기와 21세기 초에 걸쳐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 위대한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등이 그 대표자들이다.

차갑고 좁은 감옥 안에서 써 내려간 『천로역정』은 단순한 상상을 넘어 번연의 삶과 복음이 투영된 영적 유산이 되었다. 원수는 번연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을 막으려고 12년간이나 그를 투옥시켰지만, 하나님은 그가 쓴 책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빨리 영향을 미치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는다. 우리의 할 일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그 사실만을 굳게 믿고 오직 복음 전파의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것임을 알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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