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교 철학과 기말시험 날, 교수님은 뜻밖의 행동을 했다. 교실 한가운데 책상 위에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놓은 뒤, 칠판에 문제 하나를 써놓고는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가버렸다.
“이번 학기 배운 내용을 총동원하여 이 의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시오.”
학생들은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배운 철학 이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칸트의 인식론을 인용하고, 플라톤의 이데아를 설명하며, “우리가 보는 것은 참된 실재가 아니다”, “감각은 믿을 수 없다”라는 식의 논증을 길게 써 내려갔다.
그런데 그중 한 학생은 전혀 달랐다. 그는 답안지에 단 두 단어만 적고, 시험 시작 1분 만에 제출하고 교실을 나갔다. 나중에 성적이 발표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학생만이 유일하게 A+를 받은 것이다.
그가 쓴 답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것이었다. “무슨 의자요?” 이 짧은 질문이 왜 최고점수를 받았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철학의 ‘지식’이 아니라, 철학의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제를 보자마자 교수가 제시한 전제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저기 책상 위에 있는 것은 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전제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철학적으로 그 존재를 부정하려고 애쓴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답에는 공통된 한계가 있었다. 문제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한 학생은 먼저 질문해보았다. “저기 책상 위에 있는 물체는 의자가 맞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교수가 말한 ‘의자’는 도대체 어떤 의자인가?” “눈에 보이는 물체인가?” “‘의자’라는 이름이 붙은 개념인가?” “아니면 교수의 문제 속에서만 설정된 가상의 의자인가?”
“무슨 의자요?”라는 질문은 존재를 부정하려는 논증이 아니라, 존재를 말하게 만든 전제 자체를 해체하는 질문이었다. 교수는 그 질문 하나를 통해 이 학생이 수동적으로 ‘철학을 배우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 ‘철학을 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경을 읽는 태도'에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많은 신앙인들은 질문을 두려워한다. 의심이나 의문은 불신앙이고, 질문은 믿음이 약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나는 의문이나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주위 사람들은 자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너무도 확고한 신앙이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던 것을.
성경 역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묻는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편 10:1). 이 질문은 불신이나 불경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믿음의 질문’이다.
욥도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수없이 따져 묻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질문 없이 정답만 말하던 친구들을 꾸짖으신다(욥 42:7).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의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내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의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견고한 믿음으로 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질문 없는 신앙은 쉽게 습관이 되고, 점검 없는 확신은 우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를 ‘부르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깨닫게 되며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3-5).
이때 ‘부른다’, ‘소리를 높인다’라는 표현은 ‘묻고 구하는 적극적 태도’를 의미한다. 성경 연구에서 질문은 말씀을 흔드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말씀을 더 깊이 열어주는 열쇠다.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왜 이 사건은 말이 되지 않아 보이는가?”
“이런 일을 행하시는 의도가 뭔가?”
이런 질문들은 말씀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얕은 이해를 무너뜨리고 확고한 이해와 믿음을 가져다준다.
서두에서 말한 “무슨 의자요?”가 최고점수를 받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답을 회피한 말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사고를 시작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정답을 외워서 말하는 신자보다,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묻고 뒹굴고 씨름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며 이름이 바뀌었듯(창 32:28), 질문은 신앙을 성숙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다.
결국 믿음이란 질문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질문 끝에서 하나님을 더욱 견고하게 신뢰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깊이 묻는 사람에게 더 강하게 열매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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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