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케냐 교회 협의체가 최근 실시한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케냐 사회 전반에 깊게 확산된 절망과 좌절의 정서를 공개했다고 16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해당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가 경제 상황과 정치 지도층에 대한 불신, 그리고 청년 세대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가 동시에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냐국가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Kenya, NCCK)는 지난 4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현재 케냐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어려움이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엘리아스 오티에노 아골라 목사가 이끄는 NCCK는 케냐 전역 9개 권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건의료, 교육, 생활비 급등 문제가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 협의회는 32개 교단과 18개 기독교 단체를 대표하는 연합 기구다.
NCCK는 성명에서 “케냐 국민들은 황폐해진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협의회가 지역별로 진행한 모든 조사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이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공통된 정서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는 국민 개개인의 정서적 상태에서도 심각성을 드러냈다. 응답자의 79% 이상이 우울하거나 불행하다고 답했으며, 약 77%는 1년 전보다 현재의 경제적 형편이 더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서 체감되는 생활고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정치 지도층과 제도권에 대한 불신 역시 뚜렷하게 드러났다. 설문에 참여한 국민의 60% 이상은 지방의회 의원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현직 정치인 누구도 다시 선출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NCCK는 이를 두고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제도와 정치 지도자들이 본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협의회는 이러한 상황을 “정의의 부재가 만들어낸 절망과 분노의 상태”로 규정하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성명은 국민이 스스로 국가를 구하는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국가를 하나로 묶어 온 헌법적·법적 질서마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구약성경 신명기 18장 20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공동체적 책임과 행동을 촉구했다.
지난 2년간 케냐에서는 이른바 ‘Z세대 시위’로 불리는 전국적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젊은 세대의 대규모 참여로 주목받은 이 시위는 생활비 급등과 만연한 부패에 대한 분노에서 촉발됐다. 거리로 나선 청년들은 경제적 불안정과 기회의 상실을 직접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2024년 6월, 정부가 새로운 세금 부과 내용을 담은 법안을 추진하자 청년층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해당 법안은 일자리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생활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인권 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국가가 초법적 살해와 강제 실종 등 과도한 대응을 했다고 보고했으며, 교회 지도자들은 청년들에게 더 나은 지도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포기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NCCK는 성명에서 “인류 역사에서 모든 세대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도전에 직면한다”고 밝혔다. 이어 2024년 6월 청년들이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정확히 진단했고,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체 인구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령 세대가 청년들이 원하는 케냐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래는 청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세대의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됐다. 2025년 아프로바로미터(Afrobarometer) 조사 보고서 ‘AD988’에 따르면,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케냐 청년 중 43%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 연령층은 2022년 케냐 통계청 기준 전체 인구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케냐 교회 지도자들은 케냐의 높은 생활비가 국민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열악한 기업 환경으로 인해 다수의 기업이 케냐를 떠났고, 그 결과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실업은 시민들의 구매력을 급격히 떨어뜨렸고, 이는 다시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 여파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가정의 불안정성이 커졌으며, 우울증과 성별 기반 폭력, 생계를 위한 범죄 증가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NCCK는 정부가 경제 성장을 암시하는 보고서를 반복적으로 발표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식 통계와 보고서가 제시하는 성장 수치와 달리, 실제 국민의 삶은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국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NCCK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 오히려 서민의 삶을 위협하는 법안을 만들어내며 배신의 길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 정당성과 도덕적 권위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한편, 협의회는 교회가 정치와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전국 교회에 보내는 지침을 통해, 정치 참여가 교회의 명성과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새로운 지침에 따라, 예배에 참석하는 정치인은 다른 성도들과 동일하게 대우받게 된다. 정치인이 헌금이나 후원을 하더라도 일반 헌금과 동일하게 처리되며, 공개적인 언급이나 의례는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정치인은 예배 중 회중에게 발언할 수 없으며, 발언을 원할 경우 예배가 끝난 뒤 교회 밖에서 해야 한다. NCCK는 교회가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며, 강단을 정파 정치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명은 미가서 6장 8절의 말씀으로 마무리됐다. 협의회는 정의를 행하고,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이 구절이 오늘의 케냐 사회에 던지는 요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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