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질서인가, 은혜의 질서인가?

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정치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제도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세속 정치라면, 교회를 세우는 질서는 교회 정치입니다. 두 정치 모두 공동체를 위한 것이지만, 그 뿌리와 목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속 정치는 인간의 필요에서 출발합니다. 입법·사법·행정의 제도를 통해 권력을 나누고 질서를 유지합니다.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고 말하며 국가의 권위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세속 정치는 언제나 권력의 유혹 속에 있습니다. 정치인은 사익을 추구하고, 정당은 분열하며, 국민은 책임보다 권리를 앞세우는 현실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세속 정치의 정의는 언제나 불완전하기에, 신앙인은 정치에 참여하되 권력을 우상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 교회 정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은혜의 질서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목사, 장로, 집사)—은 권세가 아니라 섬김의 직분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 20:26)고 하셨습니다. 교회 정치의 본질은 바로 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

감리교의 감독정치, 장로교의 장로정치, 침례교의 회중정치 등 제도는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한 가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있습니다(엡 4:12).

교회 정치가 세속 정치처럼 다툼과 경쟁의 장이 될 때, 교회는 하늘나라의 모형으로서의 신비성과 거룩함을 상실합니다. 교권주의와 형식주의는 교회 정치의 가장 큰 위기이며,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정치가 교황권을 닮아가며 세속 정치 권력을 그대로 본받는 듯하여 매우 서글픕니다. 오직 성령 인도와 오직 성경 말씀의 원칙으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세속 정치가 권력의 질서라면, 교회 정치는 은혜의 질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 정치는 세속정치의 닮은꼴을 정기총회 때마다 목도하게 됩니다.

세속 정치는 인간의 손으로 세운 체제이지만, 교회 정치는 하나님의 손으로 세워진 영적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세속 정치의 언어—이념과 권력의 언어—로 말하면 세상은 교회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의 언어—진리와 사랑의 언어—로 말할 때, 세상은 교회 안에서 하늘나라의 빛을 보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은혜 받은 자는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정의와 사랑, 봉사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야 합니다.

정치의 목적이 권력에 있지 않고, 교회의 정치가 섬김의 질서로 바로 설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진정한 평화와 정의의 길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세속 정치가 혼탁해진 이유를 묻는다면, 교회가 신비성과 거룩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다마스커스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광채에 눈이 어두워져 쓰러지면서 성령의 신비성과 거룩성을 몸소 체험한 뒤에 겸손하게 고백하길 “예수의 신비성과 거룩성을 내가 알고나니 가마리엘의 학문이 수준 이하이며 배설물과 같다”고 외치면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향한 신비성과 이웃을 향한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정치권력을 부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일꾼은 여기 장사되나,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것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하며 죽음을 맞이한 신비의 사람, 거룩의 사람 존 웨슬리처럼 교회의 정치는 거룩한 신앙 위에 서야 할 것입니다.

세속 정치 권력이 개신교 교회 정치에 스며든지는 이미 오래 되었기에 한국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사무엘처럼 세속 정치권력자들을 지도하거나 충언하지 못하고 현재 무시당하며 굴복당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신비하고 거룩한 은혜의 질서를 이땅에 세우기 위해 세상에 임하신 주님, 한국 개신교회가 세속 정치의 권력자를 닮지 않게 하시고 개신교 교단장들이 천주교 교황권(교단의 황제)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언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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