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
강준민 목사
상처는 아픕니다. 상처를 입은 곳에서 피가 흘러나옵니다. 상처는 몸과 마음에 금이 가는 것입니다. 깨어지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상처가 치유된 후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에도 상흔(傷痕)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상흔을 그대로 두셨을까요? 그 신비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한 가지 분명한 이유를 보여 줍니다. 바로 그 상흔이 도마의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심 많았던 도마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전했을 때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도마를 위해 다시 찾아오셔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는 예수님의 상흔을 보고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은혜의 빛이 스며드는 틈이었습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상처의 역설적인 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상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연약한 인간은 매일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상처를 다루는 지혜를 몇가지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상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상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를 흘려보내시는 창입니다. 우리가 완벽할 때가 아니라, 깨어지고 부서지고 금이 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옵니다. 요셉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형제들이 그를 미워하여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아버지가 지어 준 채색옷을 찢었습니다. 그의 꿈을 조롱하고 짓밟았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는 대신 상인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의 젊은 날은 상처가 덧입혀지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그의 상처 위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종살이와 옥살이를 할 때 그와 함께하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결국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요셉 위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요셉은 받은 은혜로 형제들을 용서하고 축복했으며,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창 50:20).

둘째, 은혜의 빛은 상처를 통해 어두움을 밝힙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힐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은혜의 빛이 임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상처는 아름다움으로 변합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그 상처는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변화시킵니다. 안셀름 그륀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치유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상처를 지워버리는 힘이 아니라 그 상처를 빛을 발하는 도구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셋째, 상처는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흔적입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없애지 않으시고, 흔적을 통해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드십니다. 일본의 전통 공예 가운데 ‘긴츠기(金継ぎ)’가 있습니다. 도자기는 충격에 약해 잘 깨집니다. 그러나 ‘긴츠기’는 옻칠과 금박으로 깨진 부분을 이어 붙여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시킵니다. 이 기법은 15세기 아시카가 요시마사 쇼군의 일화에서 유래했습니다. 쇼군은 자신이 아끼던 찻잔이 깨져 찻잔이 만들어진 중국에 보내 수리를 맡겼습니다. 중국에서 수리되지 못한 찻잔은 철사로 엉성하게 묶인 채 돌아왔습니다. 크게 실망한 그는 일본 장인들에게 찻잔을 복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금으로 이어 붙여 오히려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긴츠기’의 철학은 단순합니다. ”상처는 감춰야 할 흠이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이 피어날 자리다.” 금으로 이어붙인 도자기는 원래보다 더 가치 있고 더 빛납니다. 깨어짐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흔적이 오히려 은총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긴츠기’ 공예 예술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덮지 않고, 그 안에 머무십니다. 하나님이 상처 안에 거하실 때, 그곳에서 아름다운 빛이 새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상처를 제거하는 힘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더욱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넷째, 치유된 상처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거룩한 약입니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다. 우리의 상처가 은혜로 치유될 때, 그 상처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을 때, 상처 입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요 19:34). 예수님이 상처를 받으심으로 우리 죄가 용서되고 생명의 샘이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상처는 인류의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처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 상처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으로 깨어진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이어붙이셨습니다. 금보다 귀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상처를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금이 간 도자기 같은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회복시키십니다. 상처를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우리 생을 더욱 아름답게 빚어 가십니다. 상처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 때문에 더욱 빛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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