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빅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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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말기 환자의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려는 ‘조력자살법(Terminally Ill Adults Bill)’이 상원(House of Lords)에서 중대한 반대에 부딪히며 입법 절차에 난항을 겪고 있다. 법안의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법안이 최종 통과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지난 6월 하원(House of Commons)에서 314 대 291의 근소한 표차로 통과됐다. 그러나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상원에 회부된 이후 상원의원 다수는 법안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상원은 헌법상 해당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

법안을 발의한 이는 노동당의 킴 리드비터(Kim Leadbeater) 의원으로, 이는 정부의 공약(manifesto) 사항이 아닌 민간 의원 발의 법안(private member’s bill)이다. 조력자살 합법화는 노동당의 총선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는 찬성표를 던졌지만, 웨스 스트리팅(Wes Streeting) 보건장관은 반대표를 던졌다.

상원에서 열린 첫 번째 심의에서는 발언에 나선 의원 중 3분의 2 이상이 반대 입장을 나타냈으며, 지지 발언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반대 목소리는 당파를 초월해 이어졌다.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전 총리를 비롯해 노동당의 킬리 여남작(Baroness Keeley), 그리고 크로스벤처 의원이자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태니 그레이-톰슨(Tanni Grey-Thompson)도 법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테레사 메이 전 총리는 “이 법안은 ‘조력자살법’이지 ‘조력적 존엄사법’이 아니다”라며 용어의 왜곡을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우리는 자살은 잘못된 것이라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자살 예방 전략을 추진 중이며, 젊은이들이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자살로 유도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특히 “이번 주는 세계 자살 예방 주간이다. 자살은 옳지 않다. 그런데 이 법안은 자살이 괜찮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보내고 있다. 이는 잘못된 메시지이며, 이 법안은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법안 반대 진영은 이번 논의에서 드러난 강한 여론이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터버러의 잭슨 경(Lord Jackson of Peterborough)은 “이러한 심의에서의 강한 반대는 향후 법안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법안 통과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현재로선 모멘텀도 없다”고 분석했다.

스카이뉴스(Sky News)의 정치부 부편집장 샘 코츠(Sam Coates)에 따르면, 한 고위 정부 관계자는 법안 통과 가능성에 대해 “50대 50보다도 낮다”고 평가했다.

기독교 시민단체 ‘CARE’의 정책국장 캐롤라인 안셀이(Caroline Ansell)는 “상원 의원들이 당을 초월해 이 법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또한 “법안은 원칙적으로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초안 자체도 매우 미흡하다”며 “칼라일 경은 이 법안에 ‘D-’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전했다.

CARE 측은 법안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점으로 ▷실행 방식에 대한 불분명함 ▷과도한 행정 권한 위임 ▷의회의 심의 회피 등을 지적하며, “제2차 심의 두 번째 날에 상원이 이 법안을 완전히 폐기하고, 정부가 생명을 긍정하고 진정으로 자비로운 돌봄에 투자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력자살법에 대한 상원의 논의는 오는 19일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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