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교 언어에 익숙하고, 자신이 중시하는 사안을 다룰 때 이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때 세상을 놀라게 했던 생명력 넘치는 성서와 교회 전통의 흐름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언어는 그것을 낳았던 신앙의 세계가 아니라 이 시대가 만들어 낸 틀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그 틀 안에서 그리스도교 언어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성서가 증언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알고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우리 시대에 새로운 놀라움과 갱신이 일어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이미 알아야 할 것은 다 알고 있다는 가정 아래 성서에 바탕을 둔 상상력을 기르지 못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뿌리내린 기대와 새로움을 빚어내는 생명력 있는 전통의 흐름도 익히지 못한다. 재발견이 불러올 수 있는 회복의 가능성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C. 케빈 로우 - 이 놀랍고도 새로운
영적 침체의 궁극적인 원인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 없이 마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그에게 굴복하게 되는 것이며 그의 공격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계속 자신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불신앙을 침묵시키는 것이며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에 매몰되어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믿음은 그렇게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상황에 통제당하지 않겠다. 오히려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하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상황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고 나를 추스르며 통제하는 것입니다. 나를 방치하지 않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 영적 침체
예배란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조성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며, 인간 존재의 이유이자 인간이 살아가야 할 가장 큰 목적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예배하도록 지어진 예배 본능이 있다. 본능이란, 날 때부터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다. 바뀔 수도, 거스를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태생적인 힘이다. 세상에 강력히 구속되었던 강한 결박을 끊어낼 수 있는 더 큰 능력이 바로 예배의 능력이었다. 수십 년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의 습관, 내 고집, 내 편견, 내 관성과 내 틀, 내 판단과 결정의 견고한 진(陣)을 완전히 박살 내고, 하나님께서 펼쳐 가실 전혀 새로운 세계, 새 질서, 새 세상, 새 경험의 세계로 도약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나는 예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예배자들에게는 현장을 돌파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 현장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반대가 많고, 아무리 공격이 거세도 물러날 수 없다. 아무리 적이 강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넘어져도 또다시 일어난다. 바로 이 힘이 강력한 예배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힘이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숨은 신비한 힘이다.
공진수 – 예배가 답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