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주수와 관계없이 수술이나 약물로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여기에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돼 논란이 되고 있다. 교계와 의학계는 “매우 위험한 반(反) 생명 입법 시도”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 법안은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법률안’. 남 의원은 법안 발의 취지로 “여성들이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현실”을 들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지 6년이 경과했지만, 정부 차원의 명확한 정보 제공 부족과 의약품 접근 제한 등으로 여성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는 논리다.
남 의원은 약물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는 근거로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을 권고한 사실을 거론했다. 하지만 인권위 결정문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대체입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의 건강과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내린 권고란 점을 간과한 듯하다. 이를 확대 해석해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의약품 및 수술 등의 의료서비스 제공, 임신중지 의료제공기관 정보 제공, 건강보험 적용 등의 조치를 지체 없이 시행하라”고 한 건 낙태에 찬성옹호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거나 다름없다.
개정안은 기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지’로 용어를 바꾸고,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 안에서 부분 허용했던 낙태 제한 규정을 폐지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 역시 낙태 옹호론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의학계에선 벌써부터 심각한 파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임신한 여성이 원할 경우 언제든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수술이나 약물로 무제한 낙태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지 국민의 대리자인 국회의원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여성의 권익 보호 측면에서 낸 법안 이라도 헌재의 결정 취지를 벗어난 과잉 입법이란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정안대로라면 미성년자도 약물을 통해 얼마든지 낙태가 가능하게 되는데 이건 청소년이 아무런 안전정치도 없이 약물 오·남용을 하도록 등 떠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개정안이 지향하는 지점에 교계와 의료계의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건 헌재 판결로 사문화된 모자보건법 제14조를 완전히 삭제하고 개정안으로 대체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임신 22주 이후 출산 직전까지 낙태를 무조건 허용하라는 의미가 아니란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처럼 헌재 판결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일이 생길까봐 대체입법을 마련하라고 한 건데 6년이 넘도록 직무유기를 하다 이제 와서 고작 생각해 낸 것이 무제한 낙태 입법이라니 이건 무책임을 넘어 생명을 말살하는 범죄에 가담하겠다는 수준이 아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낙태 수술보다 약물이 안전한 것처럼 호도한 부분이다. 의학계는 약물낙태가 더 안전하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미국 산부인과학회가 낙태 수술보다 약물로 낙태하는 것이 합병증과 부작용이 더 크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마치 여성 인권을 위하는 양 약물 낙태를 허용하면 그 피해가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될 것이다.
개정안에 새로 신설한 제14조의 2조항을 놓고도 시끄럽다. 낙태 수술과 약물에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도록 하겠다는 건데 국민 건강을 위한 보험 재정을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낙태 비용으로 쓰겠다는 발상에 말문이 막힌다. 교계는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데 쓰여야 할 건강보험 재정을 태아 살해에 쓰겠다는 거냐”며 입법이 강행되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지닌 그 어떤 문제점도 우리 사회에 초래할 생명 경시 풍조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한국복음주의의료인협회(한복의협)는 지난 17일 발표한 ‘한 생명도 귀한 판국에, 낙태 전면 허용 법안 웬말인가?’ 제목의 성명에서 이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다. 한복의협은 “낙태는 제아무리 완곡어법으로 표현하더라도 본질은 모체 안의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라며 “아무리 수정 몇 주부터가 생명이라고 인위적인 정의를 내린들 결코 변할 수도, 변해서도 안 되는 것이 생명의 가치”라고 했다.
태아의 생명은 수정과 동시에 세포분열을 비롯한 생명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임신의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생명을 한순간에 쓰레기로 취급해 버리는 게 낙태의 본모습이다. 최악의 저출생 문제를 최일선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대한민국 국회가 한 부모라도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태아의 생명을 언제든 죽이는 법을 만들겠다니 이게 말이 되나.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여권 신장이 시대를 앞서가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임신 주수의 제한 없이 무제한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걸 말하려는 거다. 그건 태아의 생명 뿐 아니라 임신부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귄리도 생명보다 우선할 순 없다.
무제한 낙태 허용이 마치 여성의 권리인양 주장하는 이들의 위험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세계 초유의 저출생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점점 더 위태롭게 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교회 뿐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공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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