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성 목사
이춘성 목사 ©한기윤 제공

이춘성 목사(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사무국장, 분당우리교회 협동목사)가 최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현대 사회의 윤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 목사는 “근대적 윤리는 16세기 르네 데카르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윤리가 ‘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데카르트 이후로는 인간의 ‘자아’가 윤리의 중심이 되었다”며 “물론 데카르트 역시 ‘나’의 존재를 가능케 한 절대자, 즉 하나님을 상정하긴 했지만, 그의 하나님은 인간의 사유에 개입하지 않는 이신론적 존재에 가깝다. 흔히 알려진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사유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이라고 했다.

이어 “데카르트는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준거점을 ‘나’에게서 찾는다. 그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곧 ‘의심한다’는 뜻이며, 의심이란 진리를 가려내려는 행위”라며 “그러나 이 모든 사유의 시작점에는 항상 ‘나’의 존재가 놓여 있다.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존재, 바로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한때 칸트의 정언 명령이 ‘너는 해야 한다’고 외쳤다면, 오늘날의 윤리는 ‘우리는 할 수 있다’ 또는 ‘나는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가능성 위에서 논의된다. 그래서 현대 윤리는 실현 가능성과 대중적 만족, 즉 경제적 합리성과 공리주의적 기준 속에서 공동선과 정의, 지속가능성을 재단하게 되었다”며 “그 결과, 오늘날의 윤리는 본성상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변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현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는 ‘실현 가능성’이다”고 했다.

그는 “계몽주의 이래 인류는 헤겔이 말한 절대정신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서사를 살아왔다. 이 진보의 신념은 특히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뒤, 인간에 대한 낙관과 낭만주의적 윤리를 돌아보는 반성과 함께 잠시 멈칫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며 “오히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 혁신과 유전공학의 발전,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닮아가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은 다시 한 번 인간 향상의 이상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특이점(singularity) 즉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미래에 대한 낙관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과학과 교육, 정치의 개혁을 통해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이와 같은 낙관주의는 윤리 담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성의 경계 또한 흐릿하게 하여 인간 스스로 창조된 성을 선택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며 “또한 LGBTQ+와 같은 무한이 많은 성의 공존을 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환경윤리는 탄소 중립이나 신기술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하며, 생명윤리는 인간 수명 연장만이 아니라 병 없는 삶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신’의 자리는 점차 좁아진다”며 “하나님은 더 이상 윤리의 중심이 아니라, 때로는 불필요한 존재로, 때로는 제도 개선의 영적 조력자 정도로 축소된다”고 했다.

아울러 “결국 오늘날의 윤리는 인간 스스로 세운 ‘자기 구원의 설계도’가 되었다”며 “그러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상승이 아니라 자기의 합리화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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