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구약학회(회장 안근조)가 최근 서울 광진구 소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구약성서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제128차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에는 ▲정대준 박사(광신대)가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과연 실패한 선지자인가?’ ▲이정학 박사(호서대)가 ‘구약성서의 전통적 거대동물 모티프를 통한 인간 이해’ ▲임성권 박사(장신대)가 ‘시편 119편과 145편에서 나타나는 절 단위 평행법에 관한 비교 연구’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 실패 아닌 성공한 선지자
정대준 박사는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표면적으로는 명령 불순종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선지자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처음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악행을 두려움 없이 지적하며, 야웨의 명령을 잘 수행하는 선지자의 모습을 보인다”며 “하지만 벧엘의 늙은 선지자를 만난 뒤, 거짓말에 속아 야웨의 명령을 어기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안겨준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그는 전통적으로 실패한 선지자의 전형으로 이해되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처럼 순종과 불순종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겪으며, 강력한 야웨의 메시지를 여로보암과 그 무리, 그리고 오늘날 독자들에게 전달했다”며 “특히 그의 죽음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여로보암이 받을 심판에 대한 경고로서 기능한다”고 했다.
또한 “늙은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에 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다”며 “사자에게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은 실패처럼 보이지만, 야웨께서는 속임이라는 예기치 못한 방법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백성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했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그를 따르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도 유사하다”며 실패처럼 보였던 하나님의 사람의 여정이 실상은 야웨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었음을 강조했다.
◆ 베헤못과 리워야단 모티프 사용,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
이정학 박사는 욥기의 이해에 대해 “욥기가 우리 삶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친숙하게 읽힌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욥과 이들 존재의 관계성을 밝혀가면서, 고통의 문제와 같은 인간의 보편적 고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 박사는 “야훼께서 많은 것들 중에서도 두 거대동물을 통해 욥을 계몽하신 것은, 그 시대 가장 적절한 언어로 보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며 욥기 7장 12절에 등장하는 '혼돈 세력으로서의 자기비유'를 주석하여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했다.
이어 “하나님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모티프를 사용해,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최고의 피조물을 교보재 삼아 메시지를 전달하셨다”며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이며, 욥이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였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이 두 거대동물은 무질서의 상징인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존재하는 피조물로서 인간 존재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욥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교훈을 주는 존재로 확장되었으며, 결국 개인적인 질문마저도 보편성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음을 말했다.
이 박사는 “이러한 깨달음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며, 교육의 최전선에서 인간 이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며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 그 시대에 가장 알맞은 언어로 말씀하시며, 우리는 그 초대에 응답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 시편 19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피조물의 발화 화답
임성권 박사는 “시편 19편은 기본적으로 온 피조세계 가운데 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모든 피조물들이 발화로 화답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찬양시이자 토라 시편”이라고 했다.
임 박사에 따르면, 시편 19편 15절은 이러한 발화의 부름에 시인 자신도 응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내적 발화와 외적 발화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 되기를 소망하며,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인 ‘레브(마음,심장)’로부터 하나님 앞에 ‘생각하는, 곧 발화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는 피조세계에 이미 가득한 찬양에로의 합류를 뜻하며, 그러한 피조물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기를 시인은 고대한다”며 “이는 단순하게 발화만의 합류가 아니며, 데카르트가 철학적으로 사유했던 바,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인식하며 듣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그 근원적 존재감이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존재하고자 갈망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고 했다.
한편, 이 밖에도 이날 일반분과 및 주제발표 순서가 진행됐다. 일반분과 발표에는 ▲김경식 박사(감신대)가 ‘역행하는 예언자: ‘하강 모트프’의 관점에서 본 요나의 여정 이해’ ▲류사라 박사(백석대)가 ‘숨은 신 찾기: 욥기 9장 11절과 23장 8-9절에 나타난 고통의 신학’ ▲양인철 박사(연세대)가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본 다니엘서 1장 해석’ ▲이준혁 박사(목원대)가 ‘스바냐의 시온전승과 사회 윤리적 거룩성’ ▲민경구 박사(에스라대)가 ‘포로 귀환 공동체의 이스라엘 재건’ ▲정미혜 박사(서울신대)가 ‘사사기 17-18장에 나타난 숨겨진 논쟁’ ▲유연희 박사(감신대)가 ‘퀴어-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읽는 예레미야서’ ▲김영선 박사(장신대)가 ‘이슬람혐오(Islamophobia) 속 인종주의에 대한 고찰’ 그리고 주제발표로 김순영 박사(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대)가 ‘전도서의 인간론: 걱정하는 인간, 무위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 문인인 코헬렛의 언어가 주는 메시지
김순영 박사는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 문인인 코헬렛의 언어가 현대인의 삶에 여전히 중요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코헬렛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노동’과 ‘이득’을 중심으로 성찰하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간의 걱정과 삶의 의미를 질문한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적절한 시간’과 ‘제때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한다”고 했다.
특히 “코헬렛의 첫 질문과 ‘무위 찬가’(3:1-8/3:9-15)는 인간이 끊임없이 걱정과 스트레스에 휘말리지만, 동시에 무위의 삶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음을 말한다”며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현대인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철학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코헬렛은 부정적과 긍정적 감정을 넘나들며 과도한 노력과 열정을 지양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의 중요성을 말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노동과 존재, 시간에 대해 철저하게 성찰하며, 오늘날 과도한 성취 지향적 사회에서 과잉 추구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며 “‘노력’으로 성취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코헬렛은 인간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무위’를 통해 찾으려 했다. ‘거룩한 무위’는 시간을 제어할 수 없는 인간 본질을 깨닫고, 일상의 구원을 노래한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 박사는 “결국 코헬렛의 말은 ‘이득’에만 부역하다 휘발되는 인적 자원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저항 지혜”라며 “이 비극적이고 부서진 세계에서 미지와 소박함에 이끌린 기쁨은 지친 인간을 살려내는 길이 될 수 있다. 코헬렛의 질문과 시간에 대한 성찰은 탈기독교 현실 속에서 인간 공통의 문제와 괴로움을 되짚어볼 수 있는 다양한 진리 경험의 통섭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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