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고등학교 학생 생활 규정에서 ‘정치 활동을 하면 징계한다’는 내용을 모두 삭제하도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고교생 참정권 보장을 명시한 법 개정에 따른 것이라지만 미 성년자인 학생들의 무분별한 정치 참여가 가져올 교육 현장의 심각한 후유증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교육청은 지난 17일 최근 한 달간 전체 고등학교 364곳의 학생 생활 규정을 전수 조사해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34개 교에 해당 규정을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고교 재학생 중에 법적 정치 활동이 금지된 나이의 학생들도 있어 일괄적으로 이 규정을 삭제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반론이 나온다.
서울교육청이 고교에 정치 활동 금지 규정을 없애도록 한 근거는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법의 연령 제한 하향 때문이다. 지난 2020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가능 연령이 만 19세에서 18세로, 2022년 정당법 개정으로 정당 가입 연령은 18세에서 16세로 하향됐다. 피선거권 연령도 25세에서 18세로 낮춰졌다.
문제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 따른 연령 제한이 18세, 또는 16세로 서로 상이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3 일부 학생에게 선거·피선거권이 주어지고 정당 가입은 고1 일부 학생부터 가능해지는 등 일괄적이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서울교육청은 법 개정으로 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가능해졌으니 무조건 모든 학교에 ‘정치 참여 금지’ 규정을 없애라고 지시한 것이다. 대다수 학교들이 해당 규정을 수정했음에도 일부 남아 있던 고교까지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모두 고치도록 사실상 압력을 넣은 거다.
그 과정을 들여다볼수록 석연치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서울의 모 여고 학생 167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시국 선언문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 글을 학교 측이 정치 활동 금지 규정을 들어 내리게 한 것이 알려지면서 교육청이 진상 조사에 나서게 됐고, 다른 학교들까지 전수조사로 이어지게 된 거다.
학교 현장에선 서울교육청의 전수조사에 따른 정치 활동 금지 규정 삭제 지시가 현 탄핵 정국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해당 학교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어도 교육청이 똑같이 대응했겠냐는 거다.
교육청이 고교 교칙 상 정치 활동 금지와 징계 조항에 대해 문제 삼은 걸 위법이 할 순 없다. 법이 허용한 범위를 지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모든 학교 현장에 이를 적용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점에서 지시가 강요가 될 소지가 있다.
고교에는 법으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학생들과 할 수 없는 연령의 학생들이 함께 섞여 있다. 예컨대 올해 고1이 되는 2009년생 중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4일 기준으로 정당 가입이 허용되는 학생들은 생일이 1월부터 3월 4일인 학생들뿐이다. 생일이 3월 5일 이후인 대다수 학생의 경우 만 15세여서 정당 가입이 불가하다. 또 선거·피선거권을 갖게 되는 2007년생 고3 학생들도 새 학기 기준으로는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떠한 보완 장치도 두지 않고 해당 규정을 일괄 삭제하면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나올 수 있다.
고교생부터 정당에 가입하도록 법으로 허용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에 뜨거운 감자였다. 고1인 16세 나이면 어느 정도 자아와 가치관이 정립될 나이라 자기 소신에 따른 정치 활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고교 교육과정 중에 정치에 휘말릴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지난 2021년 6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한 학교 모의투표 교육에 대한 불허 입장을 갑자기 뒤집는 바람에 고교생의 정치 활동을 허용 쪽으로 힘이 쏠렸다. 당시 고교 모의투표 교육이 진보 좌파 성향의 교육감들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사안이고 이듬해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선관위 결정이 이 모든 걸 일시에 잠재웠다.
그 후 중앙선관위가 ‘18세 이상’ 정당 가입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낮추는 내용의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를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수용해 21대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법 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당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교원 단체들은 선관위의 고교생 정치 활동 허용에 반기를 들었다. 정당에 가입한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정당 홍보, 정당 가입 권유 활동 등 각종 정치 활동을 하게 돼 교실이 정치판이 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도 침해될 것을 우려해서다.
법 개정으로 정치 활동이 가능해졌음에도 일부 고교 규칙에 관련 금지 조항을 그대로 둔 건 이런 교육 현장의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최소한의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걸 교육청이 나서 해당 학교들을 콕 집어 삭제 지시를 하는 게 과연 교육적인 것인지 의문이다.
지금 대학가에선 기존의 탄핵 찬성 분위기를 깨고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혼란과 마찰을 빚고 있다. 그런데 고교생들이 이처럼 각자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해도 막을 길이 없다. 정치권의 이익에 따라 학생들을 이념과 선전·선동의 ‘홍위병’으로 내모는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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