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
김희보 목사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태복음 27:46)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며 나를 돕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주의 계명을 거역하였나이까? 내가 아직도 주의 자녀이며, 주의 모든 기쁨이 있는 주의 독생자가 아니니이까? 주께서 항상 나의 하나님이시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겠나이까? 주께서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시니, 나를 이 환난에서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주의 얼굴 다시 빛나게 하시리이다.”

십자가 형틀은 원래 로마의 노예에게 행해지던 형벌이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아침 아홉 시에서 오후 세 시까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통을 참고 견뎠다. 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작자 김동리(金東里, 1913-95) 자신이 ‘동리문학(東里文學)’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말한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1953-54)이다.

사반은 武力(무력)이나 폭력을 써서 로마 군을 유대 땅에서 몰아내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려 하였다. 전 8장 구성의 이 소설 중 예수와 사반이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제2장이다. 사반과 예수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다.

“랍비여, 당신은 우리들이 기다리는 그분이오니까?”
“사람이여, 그대의 기다림이 하늘 나라의 것이라면 나를 따를지라.”
“랍비여, 우리는 땅 위에 있나이다. 땅 위에 맺는 것을 땅 위에서 이루게하여 주소서.”
“사람이여들으라. 사람이 땅 위에 있음은 오직 열매를 하늘에 맺기 위함이니라.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맺으면 사람과 함께 멸망할 것이요, 사람과 땅이 더불어 맺으면 땅과함께 또한 멸망할 것이니라. 진실로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귀중한 생명이 오직 하늘에 맺음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음을 누릴지니라.”
“랍비여, 이스라엘은 하늘에 맺은 땅이며 백성이외다. 이스라엘을 땅 위에 서게하소서.”
“사람이여들으라. 이스라엘이 하늘에 맺었기에 하늘에서 이루어질 것이니라.”

이 대화가 있은 후 사반과 예수가 다시 만나는 것은 골고다 언덕에서였다. 사반은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자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고, 예수는 세상 죄를 사하기 위한 신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이다.

예수의 오른쪽에 못 박힌 낯선 도둑은 예수에게 “당신이 그 나라에 가거든 나를 생각해 주우” 하고 간청한다.

그 도둑과 달리 사반은 예수에게 “비겁한 자여, 너의 생명을 버리고서 어디다 낙원을 찾고 있느냐?” 하고 꾸짖는다. 사반은 죽기까지 완고하게 지상에 낙원을 건설하려 한 민족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였다.

예수는 “이제 다 이루었다”(요 19:30)하고 운명(殞命)하였다. 일찍이 예수는 제자들과 세성을 향하여 나는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고 선언한 바 있다.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죽음의 권세에 이겼다는 선언이다. 불평처럼 보이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도움을 청하는 부르짖음과 승리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확신이 담긴 말이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냉담하신 것같이 느껴질 때 실망을 토로할 수 있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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