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기독일보 DB
참된 그리스도인은 철저히 회개한 사람이다. 그런데 회개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크나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때문이고, 이때 회개의 영을 받을 사람을 가리켜 ‘중생(重生)의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2천 년 기독교 역사에 큰 일을 한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철저한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어거스틴, 암부로스, 버나드, 위클립, 틴달, 얀후스, 루터, 칼빈, 웨슬리 등등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꺼꾸러져 회개의 체험을 한 분들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카이퍼 역시도 회개의 체험을 그의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카이퍼는 어린 시절부터 영성이 풍부하고 감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카이퍼가 열 살 때 쓴 글이 있는데 그가 남긴 글 중에 가장 오래된 자료라고 한다.

「저 카이퍼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아룁니다. 내가 저지른 악한 일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 1845년 10월 10일 오후 10시 30분이었습니다. 내가 회개를 하고 악한 것에서 벗어나 착한 일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굳게 결심할 때가 오후 11시 15분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린아이로서 영성에 민감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메모에서 보듯 카이퍼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에 대해 진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그가 어린 시절에 회개했지만, 그의 두 번째 회심은 1863년 3월경으로 카이퍼가 베이스트 교회 담임목사가 된 초기였다. 그때 회심을 하고 난 후 그는 1873년에 회심에 관해 글을 썼는데 「확신컨대(Confidentie)」라는 글에 자신의 회심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회심뿐 아니라, 개혁주의 신앙 노선에 대해 조목조목 잘 정리해 놓았다.

카이퍼는 영국교회의 영성도 깨달았을 뿐 아니라, 디엘 무디(D.L. Moody)가 영국 런던에 천막집회를 할 때도 참모들을 데리고 도버 해협을 건넜다. 카이퍼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의 기독교 강요(Institute)의 첫 문장을 통해 깊은 진리를 체험하게 된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 즉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모두가 두 가지 부분으로 되었으니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지식은 갖가지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중 어느 것이 먼저 오며 또 어느 것이 그 뒤에 결과로 따라오는지를 분간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카이퍼는 칼빈의 신지식(神知識)에 대한 명백한 정의에 붙잡혔다. 카이퍼는 회개를 통해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카이퍼는 칼빈의 메시지 곧 ‘하나님만이 참지식의 근본이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카이퍼는 그의 약혼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지나치게 독선적이며 고집이 셌으며 지나치게 이기적이었기에 너무나도 부족했던 하나님의 어린 자녀였습니다... 나는 내 공부방에서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라고 약혼자 ‘조’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카이퍼의 명작 ‘성령의 사역, Werk van Heilige Geest’이라는 책에는 회개에 대한 몇 가지 명언이 있다. ‘신앙은 즉시 회개에 이르게 한다’ ‘신앙훈련의 결과는 회개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인생의 행로에서 명백히 깨닫게 됨은 은혜의 길이다’ ‘회개는 다만 질병의 치료가 아니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란 하나님을 미워하는 그 심령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받은 자라고 해서 반드시 회개한 자들이 아니다. 때문에 모든 세례 교인들 즉 중생한 자에게도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고 했다. 카이퍼는 회개의 사람이자, 대정치가요, 대설교가이자 대신학자이다. 카이퍼 박사가 교회와 세상을 바꾼 것은 그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건설한 이승만! 그도 회개의 사람이었다. 그가 배재학당에서 서양문물과 영어에만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 한성감옥에서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얻게 된다. 그가 이론적으로 알았던 서양문명이나 성경 지식으로 새롭게 된 것이 아니고, 하루는 그 힘든 감옥 속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비우고 회개기도를 하다가 놀라운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된다. 칙칙한 감옥 안에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찼고, 마음에 평화와 감격이 있었다. 불편한 착고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나무틀에 매여 있었지만, 이승만은 죄수로서의 억눌림과 부자유에서 벗어나 광명한 새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아무것도 가리워진 것이 없고 그 몸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말하자면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하였다. 사실 이승만 만큼 힘들고 어려운 독립투쟁을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를 돕는 사람도 있었지만, 같은 독립운동가끼리 시기, 질투, 탄핵, 온갖 어려움을 겪고 40여 년의 긴 광야 생활을 지내야 했다.

결국 세상은 철저한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죄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다. 그 점에 있어서 카이퍼와 이승만은 서로 닮았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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