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평신도목회 운동은 목회자가 자신이 받은 목회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평신도들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고, 평신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그들을 돕고 훈련하여 그들이 스스로 전임 목회자들과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는 평신도 목회자들을 양성한다는 것이다.”(김상복 목사, “평신도목회 컨퍼런스”에서)

교회는 평신도들의 엄청난 자원과 자질들이 단지 교회에서 ‘봉사’한다는 일차원적 수준에 묶여있음으로 사장되고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목회자들의 고유영역인 목회적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위협으로 생각하기도 해왔다. 가능한한 성도들은 목회자가 시키는 심부름 정도를 ‘봉사’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것이 목회자에게는 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도들이 훈련을 받아 너무 많이 알거나 능력이 확대되면 될수록 목회자에게는 도전이 되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아는 척하는 평신도들 때문에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데 교인들이 목회자처럼 훈련받으면 목회하기에 더 힘이 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목회자들께서 사역이나 교회의 모든 일을 직접 할 때와 평신도들 팀에게 또는 다른 그룹에게 나누어줄 때 자신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즉 ‘하는 것에서 맡기는’ 식인데 결국 리더십의 변화라고 보겠다. 이것은 예전에 혼자해오던 목회자들에게는 참 부담이 된다. 평신도 목회도 여기에서 리더십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니 실패할 확률이 있음을 종종 보게 되었다. 교인들이 잘 모르고 목회자께서 다 해주어야 하는 기간이 수년 지나가다 보니, 이제 교인들은 나름대로 성장했는데 목회자는 과거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진행하려하니 그 갭(gap)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목회에서 동역자라는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지만 지도자가 이런 개념을 가지지 않는 이상 교인들이 먼저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멜빈 목사님께서도 두 번째 책의 주제는 ‘Let them do it’으로 썼는데, 결국 목회자의 마인드에 번화를 요구한 것이며, 그릴 때에 목회자도 변화가 가능해진다는 얘기이다. 물론 변화 없음도 문제이지만 갑작스런 변화도 더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에 이 양면을 어떻게 조화시키면서 소기의 양쪽 변화를 가져오느냐가 관건이다.

목회자는 평신도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는 마음만 보여도 성도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혼자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났다고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도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연구소 시절에 이런 도전에 봉착한 적이 있다. 사도 바울도 평신도가 훈련받아 목회자화 되어 그들이 목회적 사역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엡 4:11-16). “...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구비하여 사역의 일(the work of ministry)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니라”(11-12절).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목회의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은 목사 선생과 훈련받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사역한다는 것이다. 목사는 선생이고 훈련자요 성도는 훈련받아 성숙해지고 있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사도 바울의 목회철학이다. 목사는 성도를 교실에서, 목회현장에서, 또 자신의 삶을 통해 개인적 신앙과 목회적 사역을 가르친다.

사도 바울 이후 이 목회관을 기독교는 거의 2천년 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영적인 사역은 전임 목회자들만의 고유한 몫이고 교인들은 목회자들의 연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성실하게 구경하고 칭찬이나 박수를 보내주는 정도면 된다는 식이었다.

평신도들의 보다 적극적인 사역은 20세기 중반 1960년대에 와서야 사도 바울의 목회관을 재발견하면서 평신도목회자화운동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목회관은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발전을 보았고 체계화 되었으며 오늘에 와서는 신학자들과 목회연구자들의 많은 저서들을 통해서 21세기의 목회철학이라 확언을 하고 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다른 수 많은 일들도 있지만 말씀 선포와 말씀 교육이다. 목사 선생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사역을 맡아 있다. 이 때 ‘온전케 한다’는 의미는 훈련한다는 뜻이다(equipping). 즉 군인에게 전쟁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떤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여 적을 무찌르나를 이론과 실제로 가르쳐 훈련하여 전쟁에서 적을 이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목사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 영적으로 훈련하여 성도들이 ‘사역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때 ‘봉사의 일’이란 뜻은 ‘사역의 일’(the work of ministry)이다. 단순하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봉사 정도가 아니다. 교회를 위해 하는 일이 목회적 사역이라는 것이다. Ministry를 하는 사람을 minister라고 한다. Minister는 우리말로 목사라고 번역한다. 여기에서 평신도 사역자라는 말이 만들어 진 것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