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선교의 한 목표로서의 ‘하나님의 영광’ 의 기여점

1. 전통적인 복음화 중심 선교의 한계점 극복에 기여

안승오 교수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하나님의 영광이 성도의 본분이요 선교의 최종 목적임을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목적이 실제 선교에 있어서 어떤 기여를 하는지 좀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은 전통적인 복음화 중심 선교의 한계점을 극복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인 선교는 ‘회심’과 ‘교회 개척’을 주된 목표로 삼은 선교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교의 목표들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는 이와 같은 선교 목표의 성취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성도들의 헌신으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성도들은 세계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신 선배 신앙인들의 그 고귀한 헌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역시 이 귀한 사역을 잘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일에 다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듯이 전통적인 복음화 중심 선교 역시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부작용이 함께 나타났다. 이것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선교의 목표가 잘못 된 것이라기보다는 선교를 수행하는 인간의 죄성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나타내어 생색내기를 좋아하고, 여러 가지 좋은 구호와 명분들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그 깊은 속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심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인간의 죄성으로 오염되는 선교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첫째, 잘못된 동기로부터 시작되는 선교이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목회자의 경우 교회의 체면을 위한 선전용으로,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해외여행을 위한 구실로, 친분 있는 후배 목회자의 사역지를 열어주기 위한 방안으로 선교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교지의 필요보다는 선교하는 교회나 선교사의 필요에 따라 선교지와 선교사역형태가 결정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게 된다. 또한 선교 자체가 잘못된 이기적 동기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임순삼은 퇴색된 선교 동기로 인해 잘못 나가는 선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한국 교회가 선교 붐을 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은 모든 것에 ‘선교’를 붙이고 있다. 심지어는 이민 가는 사람도 선교사라고 붙이고 대학 떨어져 미국에 공부하러 가면서도 선교사라고 한다. 또 그들을 관리하러 가는 사람도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보낸다. 제가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알마타에 가니 이런 경우가 있었다. 대학에 떨어진 학생들을 모집해서 유학을 보내 놓고 ‘선교단’이라고 해놓았다. 또 그 관리자는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브로커 역할을 하고 벤츠 몰고 다니며 돈을 번다. 정말 이런 어이없는 일들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1) 해외여행 경험을 위해, 2) 경력을 쌓기 위해, 3) 미국 입국을 위한 과정으로, 4) 목회지가 없어서, 5) 현실 도피, 6) 식견을 높이기 위하여, 7) 저개발국의 개발, 8) 영웅심과 탐험심, 9) 공부의 기회를 갖기 위해, 10) 가난한 민족에 대한 감상적 동기, 11) 영어 습득, 12) 이성문제, 13) 더 좋은 자녀 교육의 기회를 갖기 위한 동기 등이 잘못된 선교 동기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기적인 동기로부터 시작된 선교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선교로 전락되기 쉬운 것이다.

둘째, 위와 같이 잘못된 동기로부터 시작된 선교는 자연스럽게 성과위주와 업적자랑식의 선교가 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속한 시일 내에 열매를 거두려는 조급함”, “프로젝트 위주의 사역”, “인적 물적 자원의 중복 투자” 등의 문제가 배태된다. 어렵지만 장시간 동안 눈물로 복음의 씨앗을 뿌려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버리고 빠른 시간 내에 뭔가 눈에 드러나는 결과를 보여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마음에서 가능한 한 눈에 쉽게 보이는 건물이나 프로젝트형 사역을 많이 하고자 한다. 아직 교회를 짓거나 신학교를 세울 만한 조건이 아닌데도 무리하게 건물을 지어서 선교 업적 자랑을 하려는 경우가 많다.

파송교회와 후원교회의 선교동기가 잘못되면 선교사에게 그런 업적 결과 중심의 선교를 은근히 기대하고 요구하게 된다. 즉 파송단체나 후원교회들이 선호하는 실적 위주의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되면, 현지에서도 어쩔 수 없이 차분하게 사역자를 키우고 훈련하기보다는 돈을 주고 사역자를 고용하여 단기간에 많은 교회를 세워서 역량을 과시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되어 소위 말하는 ‘돈 선교’ 즉 돈으로 현지인 사역자를 고용하여 대리로 교회사역을 하면서 업적을 부풀리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 현지인 사역자 역시 진정으로 복음에 감동되어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돈맛을 알게 되어 좀 더 많은 돈을 주는 선교사를 쫒아 철새처럼 옮겨 다니다가 타락한 사역자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업적위주의 과시형 선교동기로부터 생겨나는 부작용들인 것이다.

셋째, 잘못된 동기로부터 시작되는 선교는 결국 지나친 경쟁과 분쟁으로 이어지는 선교로 타락하기 쉽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는 동기보다 자신의 명성이나 이익을 위한 동기가 더 큰 작용을 할 때 그 선교는 대부분 다른 선교보다 더 빠른 업적을 내고자 하는 경쟁적인 선교가 되기 쉽다. 이러한 문제는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후원하는 교회도 그렇고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선교사 역시 쉽게 범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신경림 외 2인이 공저한 『한국선교 긴급점검』에는 한국선교의 경쟁과 분열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현지인들은] 다른 나라 선교사들과 한국 선교사들을 비교해 봐도 한국 선교사들은 특히 서로 협력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I 국의 현지인 신학교 교수는 ‘한국 선교사들이 저마다 신학교를 따로 세워 재정과 노력을 낭비한다’고 지적한다. 조금 과장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선교지에 한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들이 한 개 이상 만들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경쟁적인 선교를 부추기는 것은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 자체가 빠른 업적과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선교사가 그런 방식으로 선교를 진행하는 측면도 있고, 후원교회들의 직접적인 기대와 요청이 없다 할지라도 선교사 자신이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하여 심한 경쟁을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과 분열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적인 선교는 결국 불필요한 중복 투자로 이어질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피와 같은 귀한 헌금이 낭비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경쟁으로부터 시작된 갈등과 분열은 현지인들 역시 연관된 선교사에 따라 또 갈등하고 분열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선교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심, 이기심, 시기심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문제들은 몇 가지의 전략이나 정책 등으로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원칙 하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대원칙이 될 수 있다. 타인이 판단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참으로 자신이 하는 선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교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기적인 목표를 위한 것인지를 늘 반성하고 점검하고 교정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영광은 복음화를 바로 잡아주고 복음화를 넘어선 가장 마지막 최종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안승오(영남신학대학교 교수, 선교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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