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 1주기인 지난 29일 주일에도 여야는 서로를 비난하기 바빴다. 야당인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핼러윈 참사 1주기 시민추모식이 아닌 영암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린 것을 트집 잡아 비난하고, 여당인 국민의 힘은 민주당을 향해 참사를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지난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식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야당 정치인들이 다수 참석했다. 그러나 국민의 힘에서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일부 당직자만 참석하자 야당의 비난이 윤 대통령과 여당에 쏟아졌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지난 31일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후 악수를 청하러올 때 “‘이제 그만두시라’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시정연설도 교회 가서 하지 뭐하러 국회에 오나요”라고 썼다. 이런 식의 비아냥이 지지자에겐 통쾌할지 모르나 스스로 예의와 품격 을 떨어뜨리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야당이 여당 대표 등 지도부가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문제를 제기할 순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시민추모대회 대신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린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을 향해 “시정연설을 교회에 가서 하라”는 표현은 대통령뿐 아니라 기독교와 교회를 얕잡아 조롱하는 투로 느껴져 불쾌하기 짝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광장 추모식 대신 영암교회 추모예배에 간 이유 중 하나는 시민추모대회가 사실상 민주당이 주최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유가족협의회 이름을 내세웠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민노총 등이 뛰어들어 정치집회로 변질시킨 탓도 있다. 국민의 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그 자리에 갔다가 일부 참석자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함께 모욕을 당했다. ‘윤석열 탄핵’, ‘검찰 독재 타도’ 등 온갖 정치적 구호가 담긴 깃발이 서울광장 도처에 나부끼는 이런 주객이 전도된 정치집회에 대통령이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서해를 수호하다 전사한 장병 55명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2002년 ‘제2연평해전’과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에 희생당한 국군장병을 추모하는 기념식에 대통령이 아무런 이유 없이 참석하지 않는데도 당시 여당인 민주당에선 뭐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적이 없다. 그런 민주당이 핼러윈 참사 1주기 추모대회에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안 왔다고 비난을 쏟아낼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추모 행사를 놓고 비방하기 바쁜 여야가 정작 중요한 안전사고 방지 법안을 국회에서 1년 동안이나 방치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국민의 비난이 폭주할 일이다. 핼러윈 참사 직후 국회에 안전 대책 관련 법안이 48건이나 발의됐다. 하지만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는 바람에 다중 군집 시 정부가 통신사에 데이터 등을 요청할 수 있는 법안 단 한 건만 통과됐다. 정부의 ‘재난 안전법’ 등 정작 시급히 처리해야 할 47건의 법안이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건 뭐라 설명할 텐가.

그런데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시민추모대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신속히 처리해 진실을 밝히고 권력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원내 다수를 점한 거대 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독 처리가 가능한 법안을 1년이나 묵혀두다가 이에 와서 신속 처리하겠다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할 일을 하지 않는 사이에 안타까운 인재(人災)는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여름 호우 때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과 여야 정치권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정작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정치적 태만과 안전 의식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핼러윈 참사는 아직도 국민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아있다. 참사 1주기를 맞는 시점에 희생자를 기리고 유가족의 아픈 가슴을 위로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함께하는 진정한 추모의 자리를 만들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하지만 여야의 정치적 셈법에 좌우되는 추모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추모식이라는 형식보다 중요한 건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안전 대책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여당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리고 국회는 아직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안전 관련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국민의 불안감을 더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당도 정부·여당에 대한 ‘발목잡기’로 국민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내로남불’은 야당의 특권이 아니다. 마차가 바퀴 하나로 굴러갈 수 없듯이 여야가 함께 협력하고 공조해야 국민이 안심하고 사는 사회가 이룩된다.

윤 대통령은 추모예배 추도사에서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며 “불의의 사고로 떠나신 분들을 사랑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라고 했다. 책임이란 말이나 행동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물론 종교인과 시민 사회, 그리고 국민 각자가 그 책임을 다하는 게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진심으로 보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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