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진영의 파열음이 심상치가 않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주축 교단 중 하나인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연회가 잇따라 NCCK 탈퇴 결의를 하는 와중에 총무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중도 사임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와 기감 행정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장 통합 총회에선 NCCK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며 탈퇴해야 한다는 헌의가 줄을 이었다. 교단은 하는 수 없이 대책위를 구성했다.

기감 행정총회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이 철 감독회장이 중재에 나서 대책위를 구성한 후 다음 총회 때 조사한 내용을 보고한 후 다시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러나 속개된 연회에서 NCCK 탈퇴 건이 연이어 가결되면서 교단 전체로 불이 옮겨 붙는 양상이다.

기감 교단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중부연회가 WCC와 NCCK 동반 탈퇴를 결의한 건 교단 내의 달라진 분위기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비록 지 연회 차원의 결의가 총회 결의를 대신하는 건 아니지만 총회를 압박하는 카드라는 점에서 교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중부연회는 지난 9일 열린 연회 실행부회의에서 NCCK와 WCC 탈퇴 안건을 재결의했다. 정기 연회에서 다루지 못한 미진 안건을 다루기 위해 모인 실행부회의에서 연거푸 동일 안건이 결의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연회 당시 정족수 문제 등 논란의 소지를 차단하고 다시 결의과정을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지 알 수 있다.

연회가 그 어떤 결의를 해도 총회 결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동일한 사안을 연이어 결의했다는 사실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연회 관계자는 NCCK 탈퇴를 결의한 이유에 대해 “NCCK가 매년 감리교회에서 지원하는 헌금으로 유지되는 교회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유익하게 하지 않고 변질이 되어 동성애를 지지하는 차별금지법 재정연대에 인권상을 주며 교회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NCCK 이홍정 총무가 중도 사퇴라는 결단을 내렸음에도 그 카드가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원 교단 내의 일부 강경 기류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점점 더 NCCK를 옥죄는 모양새다.

이런 위기감은 창립100주년을 앞두고 ‘리더십 교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NCCK의 진로 모색을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이 지난달 30일에 마련한 토론회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선 NCCK 실행위에서 이홍정 총무의 사임이 받아들여질 경우 곧바로 새 총무를 선임하기보다 한시적으로 비대위를 운용하는 방안까지 나왔다. 사실 NCCK가 총무 한 사람 공석이 됐다고 위기감을 토로할 정도의 연합기구는 아니다. 그런데도 비대위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라면 에큐메니칼 진영의 고민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창립 100주년을 앞둔 NCCK가 주축 회원교단의 이탈 등에 발목이 잡혀 임기 중 총무가 중도 사임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NCCK와 에큐메니칼 진영을 휘감고 있다는 뜻이다.

이홍정 총무는 사임에 앞서 기감 연회 감독들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NCCK 창립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NCCK와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향방을 가르게 될 의제를 더 깊은 숙고의 과정을 통해 거쳐 논의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겼다. 그러나 총무가 사퇴하며 남긴 당부의 말이 NCCK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전환점이 될지 복잡한 처지에 놓이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 총무도 언급했듯이 향후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에 있어 NCCK 내부에 대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장기적 연구 과정을 거쳐 한국교회와의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되면 모를까 NCCK에 확실한 변화가 담보되지 않으면 주요 교단의 멀어진 마음을 붙잡긴 어려워 보인다.

사실 회원 교단들이 NCCK에 손절하려는 그 모든 책임이 총무 한 사람에게 있다곤 말할 수 없다. 오랜 세월 NCCK를 둘러싼 기류에서 총무는 결코 자유로운 위치가 아니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가 회원 교단 내에서 불거지기 전부터 한국교회가 지향하는 방향과 다른 길을 가는 문제로 논란이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감 등 일부 회원교단 내의 격앙된 분위기는 내년 100주년을 앞둔 NCCK의 흔들리는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약 기감과 예장 통합 등이 총회에서 NCCK에 등을 돌린다면 NCCK는 향후 100년의 새로운 출발이 아닌 당장 존폐의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처지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NCCK가 내부적으로 휘청하는 모습은 한국교회 연합기관 전체의 시각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NCCK가 오늘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달라져야 하고, 그 전에 NCCK를 이끌어온 에큐메니칼 인사들이 먼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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