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요즘 영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출간 첫날인 지난 1월 10일, 무려 40만 부가 팔린 대박 난 책이다. 비소설 부문 역대 1위 기록도 갱신했다고 한다. 바로 해리 왕자가 쓴 『스페어(Spare)』다.

영국 왕자가 쓴 책이기에 많이 팔린 걸까? 아니다. 그 책의 인기 비결은 엄청난 내용의 폭로가 실렸기 때문이다. 왕실의 생활은 일반인들에게는 가려진 부분이 많다.

과거에 현 찰스 국왕의 배우자였던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와 90년부터 5년간 밀애를 나누어 온 승마교관 제임스 휴이트와의 사랑에 관한 내용이 1994년 『사랑에 빠진 왕세자비』라는 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그때도 그 책은 세인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하지만 이번에 해리 왕자가 쓴 책은 자신의 성생활이나 마약 경험뿐 아니라 아버지인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의 재혼이나 형 윌리엄 왕세자와의 물리적 충돌 등을 상세하게 담았다.

주로 왕실 가족에 대한 공격적 내용이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제목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잡을 수 있다. ‘스페어’(Spare)는 ‘대체재’ ‘예비재’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한때 승마교관 휴이트의 아들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던 해리 왕자는 자신의 존재가 형 윌리엄의 비상시를 대비한 대체품 같은 대우를 받고 자랐다고 토로했다.

장자 상속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왕족이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장남이 아니면 스스로 기회를 창출해야 했다. 사제가 되어 종교계의 지도자가 된다거나 아니면 신대륙이나 신제품 발명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서아프리카 연안 항로를 개척해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엔리케도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래도 근대 이전엔 ‘스페어들’에게도 기회가 적잖았다. 예를 들어,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정상적으로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를 찾아보자.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달 등으로 장자의 사망변수가 적어지자 장자 외에 왕위가 돌아가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또 이젠 과거처럼 한 개인이 종교계나 신대륙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해리 왕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가 왕실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팔아서 부를 창출하는 스페어로서의 현대적 모델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해리 왕자는 형 윌리엄 왕자나 왕실과의 불화로 인해 왕실 은퇴를 선언하고선 현재 LA에 거주하고 있다. 똑같은 왕자로 태어나 형과 차별화 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Spare’란 제목의 책으로 인해 다소간의 부를 누렸을 진 모르지만, ‘긴급한 상황에서만이 활용될 수 있는 스페어 타이어’와 같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마저 내보인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프다.

세상의 주목과 관심과 존경과 명예는 형 윌리엄 왕자에게 다 빼앗긴 채, 혹 있을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만 땜빵질 하는 인생으로 태어났다면 나 역시 죽을 맛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 속 한 사람이 떠오른다. ‘야곱’ 말이다. 차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은 형 에서에게 다 빼앗긴 채, 늘 부엌에서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마마보이로 살아야만 했던 동생 야곱의 마음도 비슷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의 케이스’를 통해 장자만 선호하시는 게 아니라 차자나 다른 자식들도 사랑하고 복 주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확실하게 보여준다. 야곱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화에서 장자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가 누리는 혜택은 엄청 컸다. 때문에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자식의 입장에선 억울하고 원통하게 생각했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장자가 아닌 자녀들이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에 빠져 살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놀랍게 다가온다. 비록 자신이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기죽어 살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스페어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왕실의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에도 일평생 ‘스페어 인생’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해리 왕자와 같이 불쌍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살자.

‘스페어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 그리고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존귀한 신분을 가진 이가 바로 우리 자신들 아니던가!

해리 왕자처럼 더는 자기연민에 빠져 어깨 축 늘어뜨린 채 소망 없이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답게 지금부터 멋지고 당당하게 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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