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회개의 두 가지 측면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여기서 잠깐 회개에 대한 신학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입장과 죄인의 입장을 나누어서 보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죄인들을 향해 계속해서 회개를 요청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여러 가지 행동이나 의식으로 하나님의 요청에 반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금식을 하거나, 베옷을 입거나, 재 가운데 앉아 슬퍼하거나, 통곡하거나 하는 것들이 회개에 대한 죄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는 의식적인 애가를 부르거나, 속죄제나 속건제 등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요청에 응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나팔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백성들을 향해 죄에서 완전히 떠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목소리를 먼저 듣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니나니”(욜 2:12~13)

특별히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의 회개 요청은 너무나 간절하고 강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렘 4:1~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26:3)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겔 18:21)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겔 21:6)

신약시대에 와서도 이러한 회개의 요청은 여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 요청에 응하고 세례를 받고 회개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오늘 소개한 마 4:17의 선포가 대표적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회개하라는 요청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되라”면서 회개의 실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 등입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요청을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교회사에서 수도회의 양대 산맥인 프랜시스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를 설립한 프랜시스와 도미니크 둘 다 청빈을 신념으로 삼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프랜시스(1181~1226)는 27세 때 아침 예배시간에 마 10:7~10(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의 말씀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확신하고 당장 값진 옷을 버리고 맨발로 다니면서 ”나는 청빈과 결혼했다“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도미니크(1170~1221) 수도사는 죽을 때까지 자기 재산을 소유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죽을 때에도 남의 침상과 옷을 빌려 입은 채였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에 대해 인간의 반응은 어떤 것입니까? 비록 모든 회개를 수납하시고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은 인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뿌리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고 실제적으로 마음을 돌이키고 행동으로 지난날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의 대전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회개를 위한 간청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리며 자신이 죄를 버리고 완전한 회개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소개한 다윗의 간구를 다시 듣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2~7)

정리하면 늘 강조하듯이 신학적인 차원에서 늘 두 가지 차원의 일이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전개되면서 주 안에서 절묘하게 하나로 연결되어지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신비로움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에 의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행하도록 하시지 않고 우리 열심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의 은혜를 스스로 가구고 노력함을 통해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인간적인 차원의 노력과 정성을 다한다 해도 스스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과 참여와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원하십니다. 이 두 가지 차원의 일을 이해하실 때 두 가지 상호 대립되고 상충되는 요소들이 결합되고 연합되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요청을 받은 한 사람의 죄인이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께 돌아온 실례들을 소개합니다. 특히 바울 사도의 복음전파 사역에 의해 인생이 완전히 바뀐 사례들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사람들을 향해 회개를 요청하자 무려 삼천 명의 사람들이 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8, 41)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회개에 응하였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6~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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