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가?
도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가?」

누구나 복된 소식은 필요하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나약하고, 미숙하고, 불행하지만은 않다. 이들 중에는 강하고, 성숙하고, 행복한 자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윌리엄 윌리몬 교수(미국 듀크 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우리의 복음은 억눌린 자, 소외된 자, 마음이 상한 자, 불행한 자에게만 맞춰진 듯하다. 특히 요즘 설교자들은 이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적절한 임무 수행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꼭 연약함과 불행 속에 있어야만 복음을 만날 수 있을까?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도 복음을 듣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고 경험해야 한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 힘을 회복하여, 우리를 유린하는 각종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동참할 때”라고 했다.

이 책은 저자가 다년간 목사와 신학교 교목으로 설교의 자리에 선 경험을 바탕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참된 복음을 어떻게 전할지 고심하여 집필했다. 또한 교회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구제와 위로의 사역에 집중하느라 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소외시켜 버린 상황을 재치 있게 꼬집으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나는 이 책에 어떤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한 젊은 설교자의 침착하거나 단단한 학문적 준비가 아니라, 나같이 자격 없는 사람들을 붙들어, 심지어 그들이 인식하지도 못하고 준비도 형편없음에도, 선한 목적에 사용하시는 무모한 하나님 덕분이라 믿는다. 아마도 내가 이 책에서 위험 감수와 소명에 대해 많이 얘기하는 이유는, 임직 받아 사역하던 3년 동안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 가운데 나를 택하셨다는 충격에 내가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구 목사로서 나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자주 만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부유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사업이나 전문직에서 유력한 지도자도 있고, 일부는 드러나지 않는 역할로 자기 소명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말하는 이 사람들에게는 성숙과 인격적 힘이라는 공통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통합적이고, 지혜롭고, 균형 잡힌 유형의 사람들인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신학은 힘 있는 사람들을 불편한 장애물이나 믿음의 위협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힘 속에서 믿음을 받아들이는 합법적 수령인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능력과 힘, 성숙, 자기 훈련, 자유가 기독교 신앙을 살아 내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또한 이타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선물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개신교 예배는, 말은 너무 많고 행동은 너무 적다. 개신교 예배는 주로 설교자와 성가대의 공연으로 구성되어, 회중은 여흥을 즐기거나 꾸중을 듣기 위해, 열을 올리거나 야단을 맞기 위해 온다. 기도는 모호하고 공허한 어구와 무의미한 상투어로 가득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밍밍한 찬송이 가끔 냉랭하고 딱딱하고 비인격적인 분위기를 파고든다. 참회와 죄 고백의 어조는 무겁고, 찬양의 어조는 약하다. 최근 기독교 예배에 진정한 개혁이 있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꼭 무언가 새롭고 ‘특이한’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 아니라(일부는 그러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의 유서 깊은 느낌을 회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경험”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어 “우리가 힘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윤리적 책임은 규범과 규율에 대한 부담을 벗어난다. 단순한 율법주의적 규범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규범은 무책임을 키운다. 일단 우리가 법을 준수했다면, 우리에게 다른 책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책임 윤리에는 종착역이 전혀 없다. 책임 윤리는 하나님께 무한한 책임을 갖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눅 12:48하).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것 같은 윤리적 대담함을 요구하는 대신, 기독교 도덕을 개인행동에 관한 쩨쩨한 개별 규범 안에 집어넣다니, 우리는 얼마나 좀스러운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곧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갖는 반감은 교회가 그 본연의 실재가 되지 못했다는 실망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그 본연의 실재가 되는 데 성공했다는 불만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단지 교회가, 그 존재 자체의 특성상, 지난 세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 얄팍하고, 이기적이고, 반항적인 가치관에 도전한다는 이유에서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으로 모험을 감행했는데, 이는 그들이 신뢰에 근거하여 여행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신뢰하신다고 느꼈던 까닭에, 하나님을 신뢰했다. 아이도 없고 겉보기에 생식 능력마저 상실한 늙은 아브라함은 한 민족의 선조가 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약속을 믿었다. 그가 믿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를 믿으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윌리엄 윌리몬 교수는 미국 감리교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며 워포드 대학에서 공부한 뒤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에모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4년간 조지아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목회를 한 뒤 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 교수 겸 듀크 대학교 교목실장으로 20여년 간 활동했으며 현재 듀크 대학교 실천신학 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작은 교회의 설교와 예배>, <오라, 주님의 식탁으로>, <누가 구원받을 것인가?>,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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