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 크로스비가 일생동안 사역하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윌리엄 브래드베리(William Bradbury, 1816-1868)다. 로웰 메이슨이 크로스비의 음악적 기초를 다지고, 조지 루트와의 동역이 크로스비를 대중적인 인기인으로 만들었다면, 브래드베리는 그녀를 본격적인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끌어낸 인물이었다. 브래드베리는 패니 크로스비가 본격적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의 진정한 동역자였다.

1860년대 찬송가는 변화의 시기였다. 엄숙하고 무거운 찬송가는 생기 있는 밝은 곡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음악을 작곡하고 편곡하던 브래드베리는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이 좀 더 영적인 감정을 가지기를 바랐다. 브래드베리는 패니 크로스비를 소개받았을 때, 매우 기뻤으며 크로스비의 깊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시에 매력을 느꼈다.

윌리엄 브래드베리
패니의 동역자 윌리엄 브래드베리(William Bradbury) 작곡가 ©가진수 교수 제공

매우 마르고 엄청난 검은 턱수염을 지닌 브래드베리는 1816년 10월 6일 메인의 요크에서 태어났다. 찬송가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은 브래드베리를 “예수 사랑하심을”(찬송가 563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찬송가 282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찬송가 364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찬송가 488장)의 작곡가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래드베리는 노래도 잘했으며 작곡가 이상의 매력을 소유했다.

그는 보스턴 음악학교에서 로웰 메이슨의 지도 아래 음악을 공부했으며 메이슨이나 루트처럼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오르간을 미국 교회에 소개했고 메이슨과 일하면서 유럽 거장들의 음악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의 스타일은 변하기 시작했고,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예수가 거느리시니,”(찬송가 390장) 그리고 “이 몸의 소망 무엔가” 같은 밝은 멜로디에 노래 부르기 간단하고 기억하기 쉬운 것을 더 좋아했다. 함께 동역하기 위한 첫 만남에서, 패니는 브래드베리를 비록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좋은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맹인들처럼, 패니는 초자연적으로 정확하게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패니 크로스비에게 새로운 동역자를 주셨다.

“패니, 난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난 당신이 좋은 찬송가를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나님께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후에 브래드베리와의 만남을 인생의 위대한 일이 막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패니 크로스비는 브래드베리와의 첫 만남 이후 그에게 가지고 갈 찬송가를 쓰고자했다. 그녀는 시를 쓸 때마다 자신의 아기가 죽은 이래로 종종 환상을 보아왔다. 그 환상은 최근에야 멈추었지만, 윌리엄 브래드베리에게 줄 찬송가를 쓰기 위해 영감을 찾자 그 환상이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땅에서 끌어올려져 매우 밝은 별의 영혼에 이끌렸다. 계속 위로 올라가 수백만 개의 별들을 지나 마침내 하늘의 강가에 도착했다. “내가 이대로 계속 가면 안 되나요?” 패니는 별의 영혼에게 묻자 그 영혼이 대답했다.

“지금은 안 됩니다. 당신은 땅으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가기 전 문을 조금 열어드리겠습니다. 영원한 음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패니가 귀를 기울였을 때,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곡조의 합창이 들렸다. 그리고 그 기억이 그녀를 전율케 했다. 그 이후 그녀는 영감이 필요할 때마다, 하늘로의 여행을 생각하곤 했다. 이후에 패니 크로스비는 1864년 그녀의 나이 44세 되었을 때를 인생의 가장 큰 분기점으로 삼았다.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동역자 브래드베리를 만났으며, 비록 그녀가 전에도 많은 시를 썼지만 환상을 체험한 후 자신이 써야할 시의 진정한 목적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였고 그 영광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시였다.

크로스비는 브래드베리와의 첫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에 첫 번째 찬송가를 들고 다시 브래드베리의 사무실에 왔다. 4연 중 첫 두 연에서, 그녀는 자신이 체험한 환상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간다네, 우리는 간다네.
하늘 너머 집으로,
들판이 아름다움을 두른 곳,
그리고 햇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샘이 흐르는 곳
계곡은 푸르고 아름다우니,
우리는 사랑으로 함께 살 것이며
그 곳엔 이별이 없을 것이니.

   브래드베리는 그 시에 재빨리 곡을 붙이고 곡목을 “우리는 간다네.”로 했다. 그가 나중에 출판한 성가집에서는 곡목을 “하늘위의 밝은 집”으로 바꾸었다. 브래드베리가 사무실을 비운 사이에 패니는 그 곡을 세 번 연주했다. 패니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피아노 연주자는 놀랐다. 그리고 놀란 그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가사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그 곡에 그런 가사를 쓰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브래드베리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크로스비의 시에 이미 빠져있었다. 그녀는 브래드베리의 테스트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 이후 4년 동안 패니는 브래드베리 옆에서 일했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곡조를 고르고 그의 음악에 가사를 정했다. 그녀는 종종 하루에 6-7편의 찬송가 시를 썼다. 그동안, 브래드베리는 3개의 찬송가 앨범을 발표했고, 각각의 앨범에 패니의 시가 30편에서 40편 포함되었다.

브래드베리는 그녀에게 다른 음악가들과 출판업자들을 소개했는데, 그들 중에 신시내티의 필립 필립스(Philip Philips, 1834-1895)가 있었다. 그는 “저 뵈는 본향집”(찬송가 239장), “아름다운 본향”(찬송가 241장)의 작곡가였다. 1865년에 필립스는 크로스비에게 40개의 곡을 보냈고 가사를 부탁했다. 필립스는 그 시의 대부분을 ‘노래하는 순례자’라는 제목의 성가집으로 발표했다. 필립은 크로스비의 시에 매우 만족했으며 같은 방식의 또 다른 시 40편을 요구했다. 필립이 다시 40편의 시를 받았을 때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해서 단 하나의 시도 순서나 배열이 틀리지 않는 것인가요?”

그때 크로스비가 대답했다.

“나의 마음은 마치 커다란 서랍이 있는 창고와 같습니다. 그곳에 수많은 시들이 보관되어있습니다. 그 곳엔 완성된 시, 완성되지 않은 시, 그리고 거의 완성되어가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들은 주제별로 또는 완성도에 따라 정확하게 각 서랍에 보관되고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게 만든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브래드베리와 함께 일하는 동안 브래드베리는 결핵으로 아프게 되었다. 1867년 가을에 그는 그녀를 불러 말했다.

“크로스비, 당신을 만난 후 나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곧 죽게 될 것 같아요. 나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하나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곳의 강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패니는 그의 곁에 앉아서 슬픔에 잠겨 말했다. “내가 그토록 아꼈던 우정을 잃어야 하나요?”

“아뇨, 내 평생의 사역을 맡으세요, 내가 그 사역을 놓으면, 비록 당신과 내가 떨어져있다고 해도 우리의 우정을 잃을 필요는 없는 것이에요. 오히려, 당신은 우리의 사역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일을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패니는 눈물을 닦고 그에게 약속했다.

1868년 1월 7일 윌리엄 브래드베리는 뉴저지의 몽클레어에서 52세의 나이로 부인과 4명의 딸, 아들 하나를 남긴 채 죽었다. 특별히 준비된 마차가 크로스비를 그의 장례가 열리는 몽클레어의 장로교회로 인도하였다. 어른들은 중앙 홀을 채웠고 아이들은 2층을 채웠다. 다섯 명의 성직자중 토마스 헤이스팅스의 아들이 연단을 장식했다. 헤이스팅스의 회상이 시작되자 모인 사람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작아졌다. 관은 브래드베리가 오르간에 앉아 찬송을 인도하던 그 소중한 자리에 놓여 있었다. 가까이 자리 잡은 크로스비는 관을 만지며 브래드베리의 찬 손을 잡았다. 그의 장례식에서 찬양대가 패니의 첫 찬송가를 불렀다.

“우리는 간다네, 우리는 간다네, 하늘 너머 집으로, 장미는 결코 시들지 않는, 그리고 햇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브래드베리는 그렇게 원했다.

장례식 동안 패니는 관 앞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비록 엄숙하게 진행되는 장례식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녀에게 마치 용기를 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분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회중 가운데 들려오는 것 같았다.

“패니야, 브래드베리가 남긴 일을 해라, 버드나무로 하프를 만들고, 네 눈물을 마르게 하라.” 그 목소리는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한 사람을 알 수 없었다.

패니는 브래드베리의 일을 그녀 혼자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그녀에게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녀는 항상 가난 속에 살았지만, 지난 브래드베리와의 4년 동안의 삶은 그의 배려로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형편이 많이 좋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난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그녀와 남편 밴을 위해서는 아주 작은 것만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브래드베리가 “내가 출판사를 가지고 있는 한 당신은 늘 나와 함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패니에게 말했을 때, 그는 죽어서도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였다. 두 동업자, 실베스터 메인과 루시우스 비글로는 1868년 브래드베리가 죽은 후 그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브래드베리의 장례식에서 버드나무로 하프를 만들라고 패니에게 말했던 목소리는 이제 그녀의 손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회사는 두 명의 옛 친구를 함께 데리고 왔다. 35년 전 패니 크로스비가 리지필드로 이사 왔을 때, 실베스터 메인은 패니의 친구였고 이웃이었다. 그는 16세 나이에 노래 교사가 되었고 최근에는 뉴욕 노퍽 스트리트 감리교회의 합창단 단장이 되었다. 그는 1860년대 초반 출판 사업을 시작했고 브래드베리의 사무실에서 패니 크로스비를 만났으며 이제 옛 우정을 다시 새롭게 했다.

루시우스 비글로는 지역 상인이었고 많은 해 동안 사업을 하고 있었다. 브래드베리는 비글로와 메인을 둘 다 잘 알았고, 그가 죽기 전에 그들과 동업을 맺어 자신의 일과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했었다. 패니에 대한 약속 때문에 브래드베리의 목적은 자신이 말한 것보다 더 컸다. 비글로나 메인 누구도 출판업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찬송가 만드는 일을 회사의 시인과 음악가들에게 맡겼다. 이렇게 해서 패니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장 탁월한 시인으로 인정받게 됐고, 이후 50년 동안 찬송가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새 회사의 다른 멤버는 실베스터의 아들 허버트 메인(Hubert P. Main, 1839-1925)으로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과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의 편곡자였다. 패니는 그를 1866년에 브래드베리의 사무실에서 만났었고 그가 훌륭한 작곡자라고 생각했다. 그의 찬송가 음악에 대한 지식은 뛰어났으며 몇 년 후면, 당시 패니의 작품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1873년에 실베스터 메인이 죽었고, 회사의 상급자인 루시우스 비글로가 30년 더 사업을 계속이어 나갔다. 허버트 메인은 동역자에서 하급 동업자가 되었고, 일을 하는 그 많은 해 동안, 패니는 아주 작은 오해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비글로 & 메인 출판사와 일하는 동안, 패니 크로스비는 전 세계에 알려졌고 특별히 영국에서 더 유명했다. 뉴욕을 방문하는 모든 유럽의 작곡자들은 비글로 & 메인 출판사 사무실에 들렀고 여러 주 동안 머물렀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많고 훌륭한 찬송가를 쓴 맹인 여류 시인에 대해 들었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들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음악을 가지고 왔고 그녀의 음악을 느끼는 능력과 시를 쓰는 속도에 놀랐다. 곡을 가지고 오지 않은 이들에게, 패니는 종종 찬송가를 써 주고 그들로 하여금 나중에 음악을 작곡하도록 배려했다.

패니는 시 쓰기 작업의 대부분을 마음속에서 했다. 그녀는 쓰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기억력이 아주 좋아 그때그때마다 쓸 필요가 거의 없었다. 비글로 & 메인 출판사는 종종 두 명의 서기에게 그녀의 말을 받아쓰도록 했다. 패니는 처음 서기에게 한 찬송가의 두 행을 암송해 주었고, 그러고 나서 다른 시의 두 행은 두 번째 서기에게 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두 행을 첫 번째 서기에게 받아쓰게 했다. 거의 단어를 바꾸지 않았지만 찬송가가 완성되었을 때, 그녀는 다른 시로 다시 시작하곤 했다.

사람들은 패니가 찬송가를 연달아서 그리고 동시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해서 말하는 능력에 놀랐다. 그러나 이 특별한 능력을 그들이 칭찬하려고 하면, 그녀는 그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억력을 주시지만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름으로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로우리
패니의 동역자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 작곡가 ©가진수 교수 제공

윌리엄 브래드베리가 살아있을 때, 그는 패니에게 40년 이상을 함께 일하게 될 많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중의 한사람이 목사인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 1826-1899) 박사로 우리 찬송가에는 그의 찬송가 11곡이 실려 있다. 그는 시를 선택하기 전에 음악을 쓰는 브래드베리와 달리, 음악을 쓰기 전에 시를 부탁했다. 패니는 로우리와의 일이 즐거웠는데 왜냐하면 시를 쓸 때 박자의 억압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첫 번째 찬송가 중의 하나인, “모든 길에서 나를 이끄는 내 구세주”(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는 그들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불려진다. 30년 후 로우리 박사는 그녀의 가장 훌륭한 시와 찬송가를 뽑아 만든 “저녁 종소리”라는 제목의 책 발간을 도왔고, 그 책은 현재 그녀의 가장 훌륭한 찬송가 모음집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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