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한국교회정론 온라인 줌
송병기 박사 ©온라인 줌 캡쳐

송병기 박사(뉴욕장로회신학대 전 학장, NYTS 박사)가 18일 온라인 줌(Zoom)으로 진행된 한국교회정론(대표 소기천 교수) 제6차 포럼에서 ‘세기의 대통령 한국의 이승만 그리고 그의 신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송 박사는 “1875년 생인 이승만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1910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선각자적인 저서를 남겼다. 대표적으로 1941년 청일전쟁·러일전쟁 등에서 드러난 일본의 야욕이 미국 침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적극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본 내막기'라는 책”이라며 “이승만 박사는 청년시절 독립협회 일원으로 민주적 대통령제를 주장하다 고종에게 사형언도를 받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배운 신앙을 기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며 칼을 쓴 채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 살려주신다면, 내 생명을 드리겠다. 우리 조국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옥중에서 기도했다”며 “이 때 회개의 영이 임해 이승만은 당시 미국 선교사들을 미워했던 죄를 고백했다. 이후 5년 7개월 간 감옥에서 성경 읽기와 기도에만 전념해 그의 복음전도로 믿게 된 신자는 총 43명이었다”고 했다.

그는 “도미한 이승만 박사는 1905년 1월, 뉴욕타임즈에 일본의 조선침략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해 조지워싱턴에 입학, 이후 하버드·프린스턴 대학을 거쳐 1910년 박사학위를 받게 됐고 그해 대한민국에 들어온 뒤 이승만을 통해 개신교로 개종한 이상재의 제안으로 서재필 등과 함께 YMCA 청년운동에 참여했다”며 “그러나 일제의 공작으로 날조된 105인 사건에 연루된 이승만은 1912년 다시 도미, 본격 유랑생활에 돌입했다”고 했다.

송 박사는 “이승만 박사는 1919년 임시정부 창설에 참여하기 위해 하와이에서 감시망을 뚫고 윌리엄 보스윅을 통해 관짝에 실려 상하이에 도착했다. 거기서 외교를 통한 독립투쟁론을 주장했지만, 무력 항일투쟁론자들에 밀려 탄핵된 뒤 미국 하와이로 돌아갔다”며 “그럼에도 이 박사는 독립운동 자금을 끊임없이 보냈다”고 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자 입국한 이승만 박사는 1만 명이 모인 군중 앞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그의 경쟁자로 박헌영은 토지 무상배분 등 사회주의 주장을 펼쳐 국민 75% 이상이 동조했다”며 “그럼에도 이승만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겠다고 공언한 뒤 1948년 유엔의 개입 하에 김일성을 중심으로 이미 공산당이 세워진 이북을 제외한 이남 지역의 단독 정부를 건국했다”고 했다.

특히 “그해 5월 31일 열린 제헌국회에선 이승만 대통령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대한민국은 건국될 수 없었다’며 감사기도를 제안했다. 이에 감리교 목사였던 이윤영 국회의원이 하나님께 드린 감사기도문은 대한민국 국회의 제1호 속기록으로 남아 있다”며 “이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세워진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제6차 한국교회정론 온라인 줌
한국교회정론 포럼의 주요 참석자들©온라인 줌 캡쳐

아울러 “1948년 12월 8일, 파리에서 열린 만국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독립국 인정 여부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소련 등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의 방해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 세계로부터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북한의 독립국 지위 인정 안건은 부결됐다”며 “이후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남한에 잔류했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만류 요청에도 불구, 조약에 따라 1949년 6월 30일 철수하기로 했다. 약 1년 뒤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다”고 했다.

송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에서 참모진의 반대에도 불구,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지시했다. 왜냐면 5천 분의 1의 확률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이후 53년 휴전협정에서도 이 대통령은 통일을 위해서라도 휴전을 끝까지 반대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승만 제거 작전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휴전을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 측에 제안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사됐다. 이 대통령은 이 조약을 향후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한 기틀로 봤고, 지금까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이 담겨 있었다”며 “동란 이후 이 대통령은 국가발전을 위해 교육을 강조했다. 국민학교, 국비장학생 제도 등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썼고, 그 결과 전 국민 문맹률은 이승만 대통령이 부임한 48년에는 80%대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60년은 10%대로 떨어졌다”고 했다.

또한 “포항제철소 등을 세우려 독일·미국 등지로 인력을 파견했다. 토지개혁을 실행해 농민들의 지주세 부담을 철폐했다. 산림녹화 사업, 탄광개발, 원자력 발전소 개발 등에도 뛰어들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하나님만이 완전하기에 하나님을 버린 나라는 승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빌려 하나님이 부여한 천부권으로 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정신을 회복하면 진정한 자유·보수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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