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라
임화라 권사가 자작곡 4곡과 피처링 1곡을 담은 인생 첫 앨범 ‘아름다운 소식’을 발표했다. ©임화라 권사 제공

임화라 권사(61)가 자작곡 4곡과 피처링 1곡을 담은 인생 첫 앨범 ‘아름다운 소식’을 최근 발표했다. 임 권사는 불교집안에서 기독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처음 신앙을 갖게 되어 가족들과 친척들을 전도하며 찬양인도자의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예배와 큐티가 좋아 매일 새벽을 깨우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임 권사를 서울 옥수동 자택 인근에서 만나, 환갑을 넘긴 나이에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임화라 권사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여년 동안 온누리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고 있는 평범한 가정 주부입니다. 불교집안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며 예배와 큐티에 흠뻑 빠져있던 저는 40대에 광주 서울장신대 예배찬양사역대학원에서 찬양인도학을 전공했습니다. 김명식 교수가 저희 학교 3기이고, 저와 같은 1기 졸업생 중에는 이천, 안성진, 김영표 같은 분들이 유명하시더라고요(웃음). 어려서부터 합창을 많이 해서 그런지, 함께 찬양하며 하모니를 이루는 게 기뻐서 지금까지 교회 성가대를 해오고 있습니다.”

-70년대 중반 정신여고 노래선교단을 통해 2년 동안 전국 투어와 방송출연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셨나요?

“교회에서 가스펠을 부르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우리나라 최초로 가스펠송을 보급한 곳이 정신여고입니다. 그 당시 순회공연도 많이 다녔습니다. 교도소, 소년원, 군부대 등 소외된 지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는데, 너무나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정신여고는 당시에 체벌이 없었고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너무나 잘 지도해주시는 선생님들이 많은 훌륭한 학교였다고 생각합니다.”

-임 권사님은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혼자 교회를 다니시며 가족 전도를 하셨다고요.

“저희 집이 아주 독실한 불교집안인데 제가 크리스천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입학해서 선배님들의 선교단 찬양 ‘시편 23편’을 듣는데 천상의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고 너무 황홀한 마음이 들어 이 찬양단에 꼭 들어가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때부터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였지만 제가 영성 훈련을 받고 성령체험을 하면서 삶이 바뀌고 착해지는 모습 때문인지 교회 다니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간통행금지가 있을 시대에 연습하다가 밤 12시에 들어오곤 했음에도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불교집안에서 자란 저를 하나님께서 강하게 이끄시려고 하셨던 건지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 영적인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기억에 가장 남는 체험은 학교에서 찬양 연습이 끝나고 강당 기도실에서 멤버들과 함께 기도할 때 다른 친구들은 다들 은혜받으며 울며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만 혼자 기도도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 벽에 걸려있던 예수님 초상화에서 예수님이 제 앞까지 나오셔서 제 눈을 한참 쳐다보시고 들어가시는 것 같은 체험을 했어요. 그 이후로 연습하고 찬양할 때마다 눈물이 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체험은 저의 연약한 신앙을 붙잡아 주는 데 한계가 있었나 봅니다. 78대학가요제를 계기로 다니던 교회를 안 나가게 됐습니다. 15년 동안 교회를 안 나가다가 결국 몸이 아프면서 박종호 씨의 찬양을 통해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안 나가는 동안 몸 이곳 저곳이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많이 불안할 때였습니다. 차에서 우연히 박종호 씨 CCM 테이프를 듣는데 시편 8편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는 찬양이 흘러나왔고 저는 목이 매이고 눈물이 쏟아지며 다시 교회를 찾게 됐습니다. 박종호 씨가 다닌다는 온누리교회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하용조 목사님의 시편 설교말씀을 들으며 영적인 쇼크를 받을 정도로 큰 충격과 깨달음을 얻어 지금까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큐티를 강조하셔서 저는 그 때부터 말씀을 묵상하고 공유하는 습관을 갖게 되어 지금도 매일 큐티하며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곡들도 모두 큐티하면서 저에게 주시는 감동을 담아 만든 것들입니다.“

-찬양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찬양은 질병도 치유케 하고 영을 회복시키기도 합니다. 마음에 평강과 기쁨을 주기도 하죠. 제가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된 것도 찬양을 듣고서입니다. 그렇게 다시 교회에 갔을 때는 인생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다녔고 부모님과 친척까지 다 전도해서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저에게는 찬양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독실한 불교신자이셨던 어머니를 어떻게 전도하셨나요?

“어머니가 보살이셨는데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 제가 모시면서 대소변을 다 받아냈어요. 머리의 반이 막혔는데 매일 기도해드리고 예배 드리면서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러면서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게 되셨습니다. 입이 돌아갔는데 안수기도를 하면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버지가 눈 앞에서 목격하시고 아버지도 하나님을 믿으셨어요. 어머니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보지 못해서 절에 다니셨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예수님을 알았다면 진작 믿었을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는 성경을 보시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셔서 성경책 두께가 두 배 가까이 불었어요(웃음). 책상에 손수건도 아닌 수건을 옆에 두고 성경을 보세요. 새벽에 일어나셔서 1시간 이상 예배를 드리시고 성경필사와 기도를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계세요. 친언니는 65세에 레바논 선교사로 떠나셨고요.”

임화라
매일 큐티하며 은혜받은 곡들을 앨범으로 발표한 임화라 권사의 첫 EP앨범 ‘아름다운 소식’ 앨범재킷

-이번에 발표하신 네 곡의 자작곡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어떤 계기로 작곡을 하게 되셨나요?

“40대 후반에 갱년기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을 때 이사야 53장 3~7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말씀을 보면서 큰소리로 기도하니 머리 위로 억누르고 있던 나쁜 영 같은 것이 나가는 것을 느꼈어요. 그 뒤로 머리가 너무 상쾌해졌고 우울증이 사라졌어요. 그때 그 말씀을 가지고 만든 곡이 ‘오 할렐루야’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선교하시는 한 권사님은 ‘오 할레루야’를 들으시면서 25년간 못했던 회개를 하셨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현지 이스라엘 선교사님이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히브리어로 번역해주셔서 이것을 녹음해 10월 중순 쯤 히브리어 앨범이 나올 예정이예요. ‘Set me free’라는 곡은, 캐나다에 처음 도착한 날 낯선 곳에서 같이 있던 아들이 감옥 같다고 했던 때에 시편 142편 7절 말씀과 상황이 일치가 되면서 지은 곡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시편 23편을 통해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나임을 깨닫고 그 은혜를 ‘만족’이라는 곡으로 표현했습니다.”

-끝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60대는 자녀들도 다 키웠기에 하나님만 믿고 따를 수 있는 좋은 나이고 선교하기에도 좋은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이에 세상에서는 세계여행을 다니기도 하는데요, 저는 순회 선교사로 살고 싶고 다른 분들도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지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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