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2008년 12월 14일, 이라크를 깜짝 방문하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느닷없이 신발이 날아들었다. 29살의 이라크계 기자가 자기 신발을 벗어서 던진 것이다. 그는 신발을 던지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이라크 사람들이 보내는 굿바이 키스다. 이 XXX야!” 그리고는 연이어 나머지 한 짝도 벗어 던지면서 “이건 이라크의 과부와 고아, 미국에 살해당한 이라크 사람들의 몫이다.”라고 외쳤다.

[2] 두 번째 던질 때는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신발을 피해서 단상 밑으로 숨는 초라한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뜻으로 벌인 행위였다. 이 일로 그는 징역 12월을 선고받고 9개월의 감옥신세를 져야 했지만, 아랍권에선 영웅으로 떠올라 이라크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3] 아랍권에서 신발은 ‘발바닥’을 상징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발바닥을 보이거나 신발을 던지는 행위는 ‘내 더러운 발바닥만도 못한 놈’이라는 뜻이다. 큰 사업 계약서를 작성하다가 발을 꼬고 앉아 신발 밑바닥을 보였다는 이유로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들도 자주 있다고 하니, 신발을 던진 행위가 얼마나 큰 모욕을 주는 행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4] 그동안 국가 원수나 권력자들을 향해 신발을 던지는 행위들은 국가를 가릴 것 없이 종종 발생했다. 2010년 9월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가 아일랜드 더블린의 시내 한 서점에서 반전 시위대로 부터 계란과 신발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한 적이 있다. 그 해 10월에는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가 TV 생방송 도중 한 방청객으로부터 두 짝의 신발 세례를 받았다.

[5]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2012년 2월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방문했다가 2명의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신발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2013년,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도 정부의 정보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가결되자 방청석에서 신발을 던지며 항의한 일이 있었다. 2014년 4월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무장관이 ‘고철 재활용 산업협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연설 도중 ‘구두 공격’를 받기도 했다.

[6] 최근 국회 개원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50대의 한 남성이 자기 신발을 벗어 던진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는 ‘가짜 평화주의자, 가짜 인권주의자, 빨갱이 문재인을 자유대한민국에서 당장 끌어내라.’고 외쳤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대통령에게 부끄러움을 주려고 그렇게 했다고 진술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대통령이 부끄러움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7] 성경에도 신발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우선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모세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신발을 벗으라는 말이다. 여기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밟아서 더러워진 것을 벗는다는 의미이다.

[8] 고대 중근동에서는 고귀한 자의 저택이나 텐트, 혹은 신전이나 왕궁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게 되어 있고, 지금도 그런 관습이 남아 있다. 이것은 그 장소의 주인에 대한 존경과 복종의 표시이다. 세례 요한이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상대방의 신발보다 못한 존재라고 자신을 아주 낮추는 표현이다.

[9] 그만큼 신발은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또 전쟁 포로들이나 노예들은 자기 신발 없이 맨발로 다녔다. 도망을 치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신은 신고 두벌 옷도 가지지 말라(막6:9) 하셨는데, 신발을 신으라는 것은 노예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이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른 그의 신을 신겨 준 것도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에 갖고 있던 권리를 회복시켜 준 의미이다.

[10] 신발을 벗는 행위가 법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룻기 4:7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실 때 신발을 가지고 지적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11]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암 2:6)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란 표현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둘이 하나님께서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하신 사람을 단 돈 몇 푼에 또는 형편없는 신발 한 짝에 팔아넘길 정도로 무가치하게 여겼다는 것을 부각시켜준다.

[12] 실로 본문은 북이스라엘이 탐욕을 채우고자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음을 잘 부각시켜준다.

신발과 관련된 성경에 나오는 각기 다른 의미 내용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신발은 더럽고 추하고 형편없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권리의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에 때 묻은 신발 같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걸맞는 하나님이 신겨주시는 거룩한 신발 같이 차별화 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