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파운틴 작가
제프 파운틴 작가. ©solas-cpc.org/jeff-fountain/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제프 파운틴 작가의 기고글인 ‘전쟁의 때에 기독교 윤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Considering Christian ethics in the time of war) 1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프 파운틴 작가는 슈만 유럽 연구 센터(Schuman Centre for European Studies)의 창립자이며 1990년부터 YWAM 유럽의 이사로 재직하며,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변화된 정치 환경에서 활동해왔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러시아의 잔혹한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어려운 도덕적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필자는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8일간의 방문 일정 가운데 절반을 보내고 있다. 이번 방문은 YWAM 사역자들과 현지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동료인 딕 브라우어와 울라 브라우어, 그리고 아내 롬키와 함께 현지를 방문하며 우리는 유럽이 얼마나 우크라이나인들의 희생과 회복력, 그리고 헌신에 빚지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목회자와 신학자, 역사학자, 군인, 군목, 교육자,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 그리고 평범한 신자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이론적으로만 논의해 온 문제들을, 우크라이나 신자들은 지금 현실 속에서 몸으로 씨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는 폭격을 받고 있는데도 신자는 계속 평화주의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가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력이 필요할 때, 그리스도께 충실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는 정치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 사회는 혹독한 공격과 매서운 겨울을 겪으면서도 혁신과 유머, 연대, 그리고 끈질긴 인내로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다. 오히려 억압 속에 놓인 우크라이나는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군사 혁신, 디지털 행정, 시민 동원, 사회적 회복력 등에서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격동하는 국제 정치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살아남고 적응하는지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크라이나가 세계 교회를 위한 윤리적 실험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논의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 가운데 한 사람은 역사학자 야로슬라우 흐리차크(Yaroslav Hrytsak)이다. 그의 핵심 주장은 분명하다. 폭력적인 폭정 앞에서 절대적 평화주의는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흐리차크는 평화가 모든 도덕적 사회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평화를 수동적 태도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강력한 침략자가 한 나라를 파괴하고 그 정체성을 지우려 할 때, 저항을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불의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전쟁을 단순한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과 억압, 제국적 지배 위에 세워진 체제,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체제에 맞서 도덕적 질서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이해한다. 만약 이러한 침략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단지 우크라이나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질서에서 진리와 자유가 중요하다는 원칙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는 지금 유럽과 서구 세계의 영혼을 둘러싼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다.

희생적 보호라는 개념

이제 질문은 단순히 “폭력이 잘못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간인을 보호하지 않는 것 자체가 도덕적 실패가 될 수도 있다. 도덕적 순수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폭력에 내버려 두는 사회는 평화를 사실상 무관심의 또 다른 형태로 바꿔 버릴 위험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우크라이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깊이 공명하고 있다. 최근까지 일부 개신교 공동체는 아나뱁티스트 전통과 소련 시대의 군국주의 경험의 영향으로 평화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침공을 경험하면서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군 복무를 민족주의적 공격이 아니라 희생적 보호의 행위로 이해한다. 그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교회는 평화주의자들을 정죄하지 않는다. 대신 넓은 도덕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군 복무로 국가를 지키고, 다른 이들은 군목 사역, 인도적 지원, 난민과 과부, 참전 용사들을 돌보는 일로 섬긴다. 이 두 가지 모두 이웃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중요한 경고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교회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을 분명히 해 주었다. 교회는 결코 정치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신자들은 종교적 언어가 제국적 야망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러시아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은 이 전쟁을 “신성한 기독교 문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민족주의와 신앙의 위험한 결합인 ‘루스키 미르(Russky Mir)’나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험은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기독교가 특정 정치 프로젝트와 동일시될 때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는다. 권력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크라이나 이야기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전국의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은 놀라운 수준의 시민 봉사 중심지가 되었다. 신자들은 난민 보호소를 운영하고, 의료 지원과 트라우마 상담을 제공하며, 대규모 인도주의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앙은 더 이상 개인적 영성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 책임으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 교회에 주는 메시지

우크라이나에서 나타나는 윤리적 성찰의 가장 깊은 통찰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도덕적 순수성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논쟁에서 이기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세계 속에서 책임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고통스럽고 완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교회에 중요한 진리를 상기시키고 있다.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와 진리, 그리고 약자를 보호하는 질서가 존재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평화는 때로 격동의 한가운데서도 추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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