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느헤미야 2장 1~10절

똑같은 에너지를 투입하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하는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근심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긍정의 근심이 되기도 하는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의 근심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근심에 대해 하라고 말하는가 하지 말라고 말하는가? 99%가 ‘근심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유는 일반적으로 근심은 ‘죽이는 근심’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언 15:13) 그러나 반대로 성경에서 ‘근심하라.’고 하는 근심도 있다. 이 근심은 1%의 근심인데, ‘살리는 근심’이기 때문이다. 이 근심을 ‘거룩한 근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은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근심을 보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고대 근동에서 왕 앞에서 신하가 근심을 보인다는 것은 사형 감으로 즉결심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근심을 보였다. 그는 도대체 어떤 근심이기에 한낱 이방인인 신하가 대페르시아 제국의 왕 앞에서 근심을 보였는가?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근심’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느헤미야의 신분이 어떠했느냐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비록 포로로 끌려 왔지만 왕궁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포로라고 하면 노역(奴役)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실력과 재능에 따라서 왕궁에서도 관료로도 봉직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는 후자의 경우로 왕궁에서 일하면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고국, 이스라엘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는 그때부터 근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까. 윗사람에게 아첨이나 해서 진급이나 할까. 금고에 보물을 쌓을까 근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러한 근심에 몰두하지 않았다. 오직 이스라엘 성벽이 무너진 것에 대해서 근심하였다. 성벽은 하나님이 통치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오로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다시 세울까 하는 근심으로 사무쳤던 것이다.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근심의 수준이 결정된다. 어떤 사람은 허구한 날 백화점 정기세일이 언제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어떤 사람은 허구한 날 남의 집 가정사에 고민이 많다. 어떤 이들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걱정이 많다. 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확장해 갈까 근심한다. 민족에 무너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어떻게 다시 세울까 근심한다. 죽어져 가는 영혼들을 어떻게 구원으로 초대할까 고민한다. 여러분들은 살리는 근심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죽이는 근심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사역하고 있는 한성교회에 사역한 지 6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도전을 받았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교회는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걱정하고 기도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개인주의, 개교회주의가 팽배해 있냐면 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이다. 우리 성도만 잘 되면 되고, 우리 교회만 부흥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온 강물과 시내가 오염되었는데, 우리 집 우물만 깨끗하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을의 댐이 무너졌는데, 우리 집 담장만 튼튼하다고 안전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가 무너져 가는데, 내 신앙, 내 교회만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는 함께 고민하고 근심하며 세워가야 한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살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사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비전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비전을 따라 살면 죽이는 근심이 아니라 살리는 근심, 거룩한 근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가? 나의 유익을 위해서 기회만 엿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살리는 근심을 하길 바란다. 최근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법안이 발의되었다. 우리는 지금 근심하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이 민족을 바라보며 근심하며 기도할 때 그 근심은 살리는 근심이 되어 하나님의 비전으로 바뀔 것이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이스라엘의 성벽을 보면서 근심할 때 성벽재건이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계, 경제계, 사회계, 교육계를 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살리는 근심을 하여,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비저너리(visionary)가 더 많이 세워지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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