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온나라가 비상입니다. 때아닌 감금에 일상은 점점 단조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읽을 만한 책 없나 검색해 봅니다.
와!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의 개봉에 발맞춰 출판사들이 소설 '작은 아씨들'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제 눈에도 이 책이 뜨였습니다. 위노나 라이더가 주연한 영화 '작은 아씨들'(1994)을 너무나 재밌게 봤던 터라, 또 이번에 개봉한 '작은 아씨들'의 소녀 감성 물씬 풍기는 스틸컷들이 제 마음을 사로잡은 터라, 이 영화의 원작소설 <작은 아씨들>(원제 'Little Women', Louisa May Alcott 저)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책이 배송되기까지의 행복한 기다림을 즐기고 있노라니, 이튿날 문앞에 조그만 박스가 도착해 있네요. 열어봅니다. 와, 꽤 두껍습니다. 1천 1백 페이지에 달합니다. 어린이용 편집본과는 차원이 다른 두께인 거죠. 이후 며칠 동안, 참 행복한 시간들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작가 올컷의 이 소설은 19세기 중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화목한 '마치(March) 家'의 사랑스러운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지요. 이 네 주인공들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유머 있게 펼쳐지는 가운데, 그들이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고 때로는 열정적으로 꿈을 쫓는 모습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남성적인 캐릭터의 '조'가 문학으로 넘치는 어린 시절을 거쳐, 도시로 떠나고, 결국 작가로서 성공하는 성공담이 흥미진진했지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기독교적인 소재와 배경입니다. 주인공들은 성경에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여정을 그린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을 가지고 연극을 꾸미는 것을 어린 시절의 최대 재미로 꼽지요. 크리스마스에는 이웃을 향한 나눔을 실천하기도 합니다. 또 가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는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선물 받던 날, 네 자매는 저마다의 성경을 가지고 도란도란 둘러 앉습니다. 첫째 메그가 동생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엄마는 우리들이 이 책을 읽고 아껴서 항상 마음에 새겨 두기를 바라시니까, 당장 시작해야겠어. 난 내 책을 여기 테이블 위에 놓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조금씩 읽도록 하겠어."
말괄량이 둘째 조도 보기 드문 조용한 표정을 띠고서 성경 읽기에 합류합니다. 그러자 이번엔 셋째 베스가 막내동생을 어르며 말합니다. "에이미, 이리 오렴. 우리도 읽자꾸나. 어려운 단어는 가르쳐 줄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언니들이 설명해 줄 거야." 참으로 따뜻한 풍경이 아닐 수 없지요. 힘들 때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의 품을 떠나 도시로 갔을 때에도, 주인공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마음을 정돈합니다.
기독교 소설 '천로역정'에 나오는 온갖 영적이고 재미난 상상들에 사로잡히기도 하지요. "너희들이 어렸을 때 했던 연극 '천로역정'을 기억하니? 너희들은 등에 내 작은 자루 가방을 메고 내 모자를 쓰고 내 지팡이를 짚고 종이뭉치를 들고 '파멸의 도시'인 지하실에서 차츰 올라와 집 안을 여행하면서 '옥상으로 올라가, 올라가' 하며 좋아했었지. 그곳에서 너희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온갖 사랑스러운 물건들을 가지고 '천국'을 꾸몄잖니."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는 어려운 와중에도 이웃을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이 감동을 줍니다. 소설의 배경 중 하나는 미 남북전쟁인데요,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 계시고, 아버지를 대신해 어렵게 집안을 꾸려나가는 어머니를 도와 딸들도 어린 나이에 일터에 나가게 되지요. 이런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만찬은, 정말 오랜만에 맛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별안간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옵니다. "멀지 않은 곳에 금방 아기를 낳은 가난한 엄마가 살고 있는데, 불을 피울 형편이 못 되어 여섯 명의 아이들이 한 침대에 엉켜서 추위를 잊으려고 애쓰고 있더구나. 그곳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가장 큰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모두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못 견디겠다고 도움을 청하는 거야. 그러니 우리 예쁜 아가씨들, 너희들이 먹을 오늘 아침 한 끼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들에게 주지 않으련?"
자매들은 한마음이 되어 만찬 때 먹으려 했던 모든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이웃에게로 향합니다. 음식만 갖다주고 온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가져가 불을 피우고, 외투를 벗어 깨진 유리를 틀어막았죠. 산모에게 죽을 떠먹여주고, 갓난아기에게는 자기 아기에게 하듯 정성스럽게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음식을 먹여주고, 웃고 떠드는 시간도 가졌더랬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지 않나요?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재 중에도 꿋꿋이 힘든 시절을 견뎌 온 딸들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어린 순례자들에게는 힘든 여정이었겠지. 그래도 너희들은 씩씩하게 지내왔다. 이제 무거운 짐은 곧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 곧이어 가족은 피아노 주위에 둘러서서 셋째 베스가 만든 찬양을 감상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하느님이 그를 안내하네- 마음이 겸손한 자는 항상 신을 길잡이로 받드네-"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밝은 정서를 잃지 않으며 선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아갔던 마치 가 사람들의 모습은, 소설 발간 당시 전쟁의 상처로 얼룩져 있던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였지요.
이제 보니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건넨 위로 뒤에는 주인공들이 가졌던 신앙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들이었기에, 쉽게 절망하지 않고 밝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도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가까워지고,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돌아보았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 글 속 인용문은 동서문화사의 <작은 아씨들>(우진주 역)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이지수 / 직장인 / 서울 안디옥교회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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