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암미선교회 대표 김영애 선교사
외국인노동자 암미선교회 대표 김영애 선교사. ©김명혁 목사 홈페이지

[기독일보]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가 14일 오전 명성교회(원로 김삼환 목사)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라는 주제로 10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다음은 김영애 선교사(외국인노동자 암미선교회 대표)의 암미선교회 사역 보고 전문이다.

1. 사역의 계기

나는 21년 전인 1995년도에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엘이라는 필리핀 형제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주민선교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늘 복음주의협의회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표어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인데 당시 노엘이라는 한 사람 외국인근로자를 만난 것이 내게는 획기적인 사역의 전환 내지는 생애전환기가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 형제는 임금체불 문제로 여러 공장을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건강 문제로도 고생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사역의 공백 기간을 갖고 있던 때여서 자연히 그 형제가 나의 모든 관심사가 되었다. 계속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해 결국 교통비조차 없어서 교회출석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차 남양주시 진접읍 소재의 노엘 공장을 찾아갔다. 그 때가 1995년 12월 초였는데 처음으로 공장지대를 방문하며 긴장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노엘을 위로하고 주변 교회에 연결해 주려는 의도로 그를 찾아갔을 때, 두 가지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하나는 노엘이 있는 주변이 공장지대여서 외국인근로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과, 또 하나는 외국인근로자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아무 교회도 그들에게 손길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주말에 가서 노엘과 주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고,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라도 갖자고 제의해서 5명의 외국인들과 주일 오후에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첫 모임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게 된다. 성탄 의미의 노엘이란 이름을 가진 필리핀 형제를 따라가 성탄 이브에 모임을 가진 것이 암미선교회(이하 암미)의 시작이 된 것이다.

2. 사역의 내용

요즘은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인권의 사각지대여서 그들에게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모른다. 선교라고 해도 그저 그들의 긴급한 현실적 문제를 돕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성인 내가 3D 업종의 거친 남자들 속에서 그런 문제들을 대하는 일은 너무 버거웠다. 악덕 기업주들뿐 아니라 질이 나쁜 외국인들도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래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선교가 자리를 잡아가더니 지하 50평의 공간이 생겼고, 10년 후에는 선교센터도 짓게 되었다. 2012년부터는 이주노동자들 외에 다문화가정들이 생겨나면서 암미 다문화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주민들(이주노동자 및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면서 암미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주관의 사회통합 프로그램(KIIP) 일반 운영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KIIP는 주말에 50-60의 이주민들이 참가해 한글교육과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암미에서 선교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또 상담, 의료진료, 이,미용 봉사, 스포츠 행사 등을 통해 그들이 건강하게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주일 예배는 11시이며 현재 필리핀 등 7개국 90여명의 다국적 이주민들이 예배와 국가별 소그룹을 통해 믿음을 키우고 있다. 필리핀과 남미(페루, 온두라스) 그룹은 자체적인 토요 기도모임도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암미를 통해 130여명의 많은 다국적 외국인들이 세례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는 선교가 지극히 어려운 이슬람권(이란, 방글라데시)과 힌두교권(인도) 출신이 15%가 된다. 사역자도 페루, 인도 등지에 5명이 나왔다. 페루의 한 자매는 속만 썩이는 남편을 버리고 한국에 돈을 벌러 왔다가 복음을 듣고 가정을 세우고자 다시 돌아가 남편을 주님께 인도했는데 그 남편이 목사가 된 일도 있다.

사실 나는 89년 초에 터키에 갔다가 선교의 도전을 받아서 이주민선교를 시작하고부터 이 선교를 통해 회교권 선교 열매를 하나라도 얻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동안의 사역을 통해 이란인들 6명과 방글라데시 한 명이 세례를 받았다. 비록 세례는 받지 않았어도 복음에 열린 마음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 선교사역에서 헌신된 사역자들이 나오는 것만큼이나 회교권선교의 열매들을 볼 수 있었음이 내게는 큰 기쁨이요 보람이었다.

여기서 이슬람권 선교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힘쓰고 있는 이슈 중에 이단문제, 동성애 문제와 더불어 이슬람확장 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고려해 볼 점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슬람권 선교가 어려워도 이주민들 가운데 이렇게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데 한국교회가 나서서 이슬람 확장저지 운동을 펼 경우, 그나마 이주민선교까지 위축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가 이슬람확장 저지를 계속 부르짖는다면 이슬람선교는 더 어려운 현지에서나 해야 하는 선교인지 묻고 싶다.

이슬람확장이 테러위험을 가져올 수 있어서 걱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책임질 일이다. 교회로서의 첫째 사명은 선교적 사명인 것임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히려 이슬람에 대해 선교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열심히 연구하며 이슬람 선교의 기회를 포착해야 해야 옳다. 이런 점에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이 문제를 연구주제로 삼아 발표를 해줄 것을 이 자리에서 제안하고 싶다.

나는 이주민선교를 하면서 오늘의 주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신 마25:40의 말씀을 항상 실감하고 있다. 아무리 인간이 죄인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관심이 있으시다. 오래전 남양주시 진접읍 시골 동리에 나의 발걸음을 간섭하셔서 그곳의 곤고한 외국인 나그네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닿도록 일하신 것을 보라! 암미선교의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아도 중요한 선교의 인프라가 거기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사역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바, 하나님은 소외된 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른다. 불법신분의 외국인들이 단속에 걸려 외국인보호소에 붙잡혀 들어가는 일들이 있어서 남양주에서 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얼마나 많이 갔는지 모른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외국인 자매가 이혼을 당하고 방황하다가 유치장에 가고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있어 돕고 있다. 그럴 때마다 갇힌 자를 돌보는 발걸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숙연해지고 한편으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인데 외국인 나그네들과 함께 살면서 결혼한 사람들 못지않게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온 것 같다. 이 달 마지막 주간에 페루 귀국자 선교여행을 다녀 올 계획인데, 페루에는 10년간 사역을 같이 해서 꼭 아들과 같은 선교사가 있다. 이처럼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각국에 많이 있다. 이란의 한 형제는 “어머니, 이란에는 언제 오세요?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또렷한 한국말로 카톡 문자를 보내오곤 한다.

암미의 특징 하나는 초교파 선교단체로 책임있는 후원처 없이 주로 협력선교로 동참하는 교회들와 개인 후원자, 그리고 소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협력선교의 모델이 되고 있는 점이다. 이렇게 이주민선교를 통해 더욱 협력운동(연합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 암미가 20주년을 마지한 지난해 12월 그동안 쓴 칼럼들을 책으로 펴냈다. ‘이주민선교 현장 리프트’라고 부제를 달았고 책 제목은 “말은 안통해도 선교는 통한다”이다. 이 책이 한국교회가 보다 이주민선교를 이해하고 이 선교를 위해 교회들이 협력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한다.

21년 전, 어떤 선교계획도 없이 단지 노엘이 처한 어려운 형편에 관심을 좀 가져준 것 뿐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일을 계기로 이렇게 선교 역사를 일구어 내신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과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한 케이스라 하겠다.

/글=한복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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