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제1차 포럼.   ©이동윤 기자

[기독일보 이동윤 기자] 2015년 북한인권 자유통일주간 제4일차 '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제1차 포럼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다사랑 카페에서 개최됐다.

기념사업회는 북한정권에 의한 순교 발굴 및 업적 정리, 북한정권에 의한 순교자 기념사업 추진, 북한정권에 의한 순교자들을 위한 연구, 정책제안을 위해 정기적인 포럼을 개최키로 하고 6.25 전 순교한 고당 조만식 장로를 조명하는 제1회 포럼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념사업회는 "6.25 전쟁 전 조만식 장로, 전쟁 중 손양원 목사, 전쟁 후 김동식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크리스천이 북한정권에 의해 순교했다.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것은 한국교회 성도들의 당연한 일임에도 북한정권에 의해 순교당한 이들에 대한 추모는 그동안 너무나 미미했다"며 "이에 그동안 북한인권운동에 앞장섰던 기독교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북한정권에 의해 순교당한 분들을 기념하는 사업회를 출범케 됐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고환규 목사(생명과인권디아코니아 대표)가 개회사를 박문희 목사(서울중앙교회)가 축사를 전했고, 강사근 대표(대한민국미래연합)를 좌장으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의 발제를 전했다.

박명수 교수는 '해방 70주년과 고당 조만식 장로의 위치'라는 발제에서 "조만식 선생은 해방 직후 북한 지역의 최고 지도자이면서 온갖 유혹에 빠지지 않고 소련군과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의 박해 가운데서도 북한을 떠나지 않았고 1950년 10월 평양근교에서 사살됐다"고 조만식 선생의  삶을 조명했다.

박 교수는 "해방 후 북한 특히 평안도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었고, 그들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며 "이 중심에 조만식이 있었다. 조만식은 개혁적인 민주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북한사회를 일거에 바꿔 놓은 것은 소련군의 진주였다"고 했다.

당시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에서 자신들의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에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을 공산주의에 대한 반동세력이 되는 것을 막고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고, 이러한 과정 중 소련당국과 조만식이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은 바로 신탁통치 문제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전했다.

박 교수는 이때 소련은 친소, 반일정권이 북한에 들어서기를 원했지만 조만식은 소련군정의 잘못을 비판했고 친일파 청산에 있어서도 무법적인 보복은 반대했고 결국 소련은 조만식을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조만식이 시작한 민족통일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꿈은 북한에 공산주의를 이식하고 친소정권을 수립하려는 소련의 정책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꿈은 좌절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맘속에 남아있다. 많은 이들이 북한에도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길 소망하고 있다. 이 점에서 조만식의 꿈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조만식, 그는 일제의 억압에 항거하면서도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도덕을 지키고 실력을 양성해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민혁명을 바라는 공산당의 움직임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조만식이 가졌던 꿈이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에 기초하면서도 어려운 약자를 배려하고 보통사람들이 꿈을 꾸는 사회, 그런 성숙한 민주주의가 확립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조만식이 가고자했던 길을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제 후 김규호 목사(선민네트워크 대표)·문국환 대표(북한인권국제연대)·이요나 목사(갈보리채플 서울교회)·이재흥 대표(선민교육학부모연합)가 토론을 진행했고, 질의응답에 이어 이광우 목사(예장통합서울동노회 인권위원장)의 폐회사로 이날 포럼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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