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유실로 존재의 근거가 없어졌다. (...) 책 속에 길은 없는 것 같다. 길은 바닥에, 인간이 걸어가야 길이 있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훈 작가는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대강당에서 '일산에서 살기'라는 주제로 특강했다. 이날 김 작가는 그가 글을 쓰는 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강연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

김훈 작가가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대강당에서 '일산에서 살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박성민 기자

그는 이날 주제에 따라 '일산'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특강을 진행해 나갔다.

그가 처음 일산으로 올 때는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편의 시설도 없었다. 원래 김 작가는 서울 토박이다. 그의 모친이 자주 쓴 '사대문 안 사람'이었다. 그의 가족은 가난해 북촌의 셋방에 살았지만 자신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그런 프라이드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일산으로 와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일산에 오지 않았으면 집이 없었을 것"이라며 "땅값이 제가 살던 때보다 올랐다. 속된 말로 일산에 와 부동산 재미를 봤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김 작가가 처음 자전거를 탄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의 심정을 "깜짝 놀랐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이후 그는 아내에게 자전거가 너무 좋아 자전거만 타고 살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아내는 그의 이런 말에 그가 배달업을 하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김 작가는 이 자전거를 통해 '자전거 여행'을 쓰며 자전거로 먹고 살겠다는 아내에게 한 약속을 결국 지키게 된다.

김 작가는 '남대문'에 대한 애틋한 정과 또 화재로 불 타 유실된 남대문 사건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나는 남대문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대문이 불 타 버렸다. 저녁에 불을 질렀는데, 밤새 일하느라 새벽에 신문으로 알았다. 놀라, 아침 6시에 택시를 타고 갔다. 잿더미가 돼 있었다. 소방차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 진짜 한심했다. 서울의 중심이며 자랑, 존재의 근거가 없어졌다."

남대문에 불을 지른 이는 70대 노인이었고, 일산에 사는 사람이었으며 김 작가의 옆 동네 사람이었다.

일산 원주민이었으며 신도시를 만들게 되며 취소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이였다. 이 노인의 주장은 시가가 4억이었다. 수용 거부를 했더니, 정부에서 공탁금 1억을 주고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이 노인은 고양시와 청와대, 언론사, 인권위원회 등을 포섭했지만 아무도 그의 얘기를 귀 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이 노인은 농사를 지으며 철학관을 운영한 경력이 있었다. 때문에 그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하기가 힘든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의 억울함을 알리려 버스에 불을 지르려 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사람이 죽으니, 그래서 기차에 불을 지르려 하다 결국 남대문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김 작가는 사실 정부는 모든 일을 법에 맞게 처리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토지를 수용할 수 있고, 이에 거부하면 공탁을 걸고 강제 집행을 할 수 있다. "100% 적법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나는 노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의 말을 분석해 봤더니, 우선 내 땅에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보상은 필요 없고 살던대로 살겠다는 것이었다"며 "정부가 책정한 가격에는 미래에 있을, 노인이 오래 살게 됐을 때의 막대한 가치가 포함이 안 됐다. 그가 자기 땅에서 살겠다는 소망이 인정되지 않았고, 그래서 불을 지른 것이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내가 어렸을 때 삶의 지표가 된 남대문이 불이 났다"며 "나는 일산에 와 부동산 재미를 봤다. 근데, 이 노인은 그것 때문에, 너무 억울해 내 고향 남대문에 불을 지른 것이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이 노인은 10년 형을 받았다.

이후 남대문을 다 지어 놓고 대들보를 올리면 '상량식(上樑式)'이라는 것을 한다. 어떻게 불이 났고 몇월 몇일에 짓는다는 것을 대들보에 적어 놓는 것이다. 문화재청 공무원이 이것을 써서 "글 쓰는 분이시니 우리가 쓴 것을 보고 고쳐달라"며 김 작가에게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는 "난 너무 슬펐다. 고문 당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김 작가는 "남대문에 가한 모욕이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로 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남대문을 지으며 목재를 빼돌린 것이었다. 현실적 삶의 모욕이라는 것은 한도, 끝도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인과 남대문 사이에 얽혀진 슬픈 사연이다"라며 "이후 남대문을 다 만들고 파티에 참석한 대통령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떤 슬픔이 깔려 있는지를 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일산의 지형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일산은 산이 하나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했다. 일산은 한강 하구가 물이 넘어와 범람한다고 한다. 김 작가에 따르면 일산 지형의 특징은 '민자'라고 했다. 그는 "땅이 아무런 표정을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수평과 수직으로 구성됐다. 지역에서 오는 소속감이 없다"며 "땅의 용도는 건물과 도로를 만들기 위한 대지로서의 용도 외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일산에 40년 만에 천지개벽할 신도시가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생겼다고 뉴스위크지에 나오기도 했다. 김 작가가 20년 전에 왔을 때는 신도시가 없었고 구획 정리만 돼 있던 시절이었다.

이런 일산이 세속 도시가 됐다. 그는 "밤에 정발산에서 내려다보면 캬바레, 러브 호텔, 교회가 섞여 불야성을 이룬다"며 "교회에서 핸드 마이크를 가지고 와 러브 호텔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회개하라. 종말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도 봤다"고 했다.

그는 일산의 원주민은 보상 받고 흩어졌고 외지 사람이 들어와 신도시를 이뤘다고 말했다. "일산 신도시는 어느 누구의 고향도 아니다. 만인의 타향"이라며 "일산 타향화 현상이 급속도로 벌여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향'을 언급하며 일산에 필요한 것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고향에 기어코 간다. 그래서 나는 고향은 도대체 어디인가 생각한다. 타향 같은 이 일산에 고향을 건설하지 못하면 고향이 없는 것이다. 고향을 고향으로 만들어야만 떠돌이가 아닌 것"이라며 "사람이 있어야 마을이고 고향 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마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없다. 시급히, 꾸준히 정착 시켜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한강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강물은 멋대로 흐르는 게, 갈 길을 가는 게 자연스럽다"며 "한강을 보면 큰 짐승을 잡아서 우리에 가둬놓은 것 같다. 댐을 만들어 흐름이 별로 없다. 내가 어릴 때는 출렁출렁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도시를 통과한 강의 운명이 저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표현했다.

김 작가는 고양시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우두산 전망대'를 꼽기도 했지만 이 곳에 가면 슬픔 또한 느끼게 된다고 했다. "우두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장엄한 모습이 보인다. 자유롭게 굽이치는 강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서 "남·북 사이를 흘러가는 것을 보면 너무 슬프다. 강 주변은 그야말로 적막이다. 인기척이 없다. 아주 절망적인 적막 사이를 강이 흘러가는 것을 전망대에 가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산에 살면 좋은 것으로 노을과 자유로운 강의 모습이라고 했다.

"해 떨어질 때 새빨간 해가 강물에 잠긴다. 엄청난 장관"이라며 "노을이 아름다운 건 일산이 최고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강이 우리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고양시에서 사는 큰 기쁨 중 하나"라며 "만인의 타향으로 바뀐 것도 있지만, 여기에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질문 시간이 있었다. 한 참석자는 많이 알려진, 글을 쓸 때 왜 연필로 쓰는지에 대해, 또 문장력이 아버지를 닮았는지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는 "연필로 쓰는 건 낙후된 것이다. 그러나 내 스타일대로 할 수 밖에 없다"면서 "연필 끝으로 내 육체의 힘이 들어간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불안해져 글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소설을 쓰셨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며 "집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오셨다. 아버지를 보고 저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랬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참석자는 살아오며 내면의 성장, 얻게 된 지혜 등 어떤 성장이 있었는지, 또 정도전의 통찰력에 대해 질문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었지만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길은 없는 것 같다. 책 속의 길일 뿐이다. 길은 땅바닥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걸어가야 길이 있는 것"이라며 "책 보다는 얼굴, 강의 표정 같은 사물을 들여다보며 공부한다. 한 점을 보는 게 아닌 사물과 사태가 처해있는 주변 전체를 생각하는 게 진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도전의 통찰력에 대해서는 "대단한 인물이다. 고려 때 불교와 유교를 바꿔놓은 엄청난 사람이다. 현대 사회에서 약간의 의견과 가치관을 조정하기가 어렵고 불가능 할 때가 있는데, 관념에서 현실로 바꿔놓았다"면서 "이성계의 군사력이 필요했지만, 세상을 전환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갖고 있던 이였다"고 평가했다.

고전에서 무엇을 얻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동양 고전을 좋아한다. 공자의 논어를 보면 재미있다. 문장이 너무 단순하다. 예를들어 공부하면 기쁜 것이다 라는 말에 대해 왜 그러냐고 물어볼 수가 없다"며 "이런 단순, 명료한 것들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것을 읽으면 책 읽는 자로서의 행복감이 있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국내 대표적인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으로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생애를 실존적 고뇌자의 삶으로 묘사한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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