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사랑을 갈구했고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다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작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이 화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비극의 화가, 괴팍한 화가, 아니면 불운의 화가로 기억되고 있을까.

지난 달 22일부터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서양 미술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반 고흐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반 고흐가 권총으로 자살한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동생 테오 반 고흐는 형을 위한 유작전을 열고자 한다. 아내 요한나의 만류에도 유작전을 강행하는 테오는 형과 주고 받았던 편지와 그림들을 정리하면서 그와의 기억을 더듬어나간다.

살아생전 그가 남긴 700여편의 그림과 수백여통의 편지에 담긴 반 고흐의 불꽃같은 열정의 시간들이 이야기가 되어 노래로 펼쳐진다.

반 고흐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가 이 작품을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심경이었으며 어떤 것을 상상했는지를 무대 위에 펼친다.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의 방' 등 반 고흐의 대표작들이 현대적인 해석과 화려한 영상기법이 더해져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지는 것도 볼거리다. 이번 작품을 맡은 김규종 연출가는 영상 부문에 대해 '제3의 배우'라고 표현했다.

중극장 무대에 2인극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음악과 무대 장치만으로도 불운했던 사나이 '고흐'의 진심을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은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기존의 웅장하고 화려한 뮤지컬 음악과 달리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가 중심이 된 음악들은 적재적소에서 고흐의 심경을 대변해준다.

반 고흐는 생전에는 자신이 남긴 2000여개의 작품 중에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였다. 그럼에도 그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작품은 이 이유에 대해 파고든다.

그는 노래한다. "난 많이 배우지 못했고, 잡다한 일들을 하며 떠돌아 다녔지만 목표가 있었고. 묵묵히 나의 길을 걷는다는 걸. 가족들의 걱정처럼 나약하지 않아. 한심한 인간이 아냐. 나도 꿈이 있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그 꿈을 찾으려 해."

동생 테오는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간 테오는 고흐의 예술적 동반자, 친구, 가족, 금전적, 정신적 지지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테오의 삶을 '~지지자' 정도로 정의 내리기엔 동생의 서포트는 굉장한 것이었다. 고흐가 보낸 편지 속에서 그림의 가능성에 힘을 보탠 것은 테오였고 그에게 조언해준 예술적 조언자도 테오였다.

  ©박성민 기자

반 고흐는 전도자를 꿈꿨었다. '영혼의 순례자'의 저자 캐슬린 애릭슨은 고흐가 미치광이가 아니라 간질과 심한 우울증을 앓은 환자였을 뿐이며 광신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다.

고흐는 목사인 할아버지·아버지를 따라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신학대학교에 가려고 공부했지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탓인지 입학하지 못한다. 하지만 목회자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다. 정식 학교가 아닌 전도사 양성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몇 개월 교육을 받고 20대 중반의 젊은 청년 반 고흐는 전도사로 어려운 이웃이 모여 사는 보리나주 탄광촌으로 간다.

반 고흐는 이곳에서 어려운 사람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가난한 이가 더욱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돌보는 것을 보고 더욱 헌신하게 된다. 하지만 전도사협회가 그의 지나친 열정과 헌신을 '광신'으로 보고 전도사직을 박탈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는 말한다. "난 오늘 탄광 촌을 떠난다. 너도 알다시피 난 신학에 관심이 많았어. 난 늘 구원에 이르는 궁극적인 방법을 찾고 싶어 했었지. 그래 구원. 그 답을 찾아서 가난한 사람들에 전해주고 싶어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지만, 이 선교에 까지도 나를 거부하고 말았어."

이어 고흐는 노래한다. "내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하던 지난 날.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광산으로 갔지만 신학자에게 중요했던 건 믿음보다는 이유, 진심보다는 권위있는 학벌의 신학생."

실의에 빠진 반 고흐는 27살에 화가의 길로 뛰어들게 된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의 위안을 전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노래한다.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림 속에서 찾아지는 생명. 영혼을 담아내는, 생명을 담아내는. 교감하는 예술. 날 구원해 줄 그림을 그리겠어. 그림을 그리는 거야.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는 거야. 그것이야말로 나를 결정적으로 만들어주는 천사. 그림을 택하겠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어. 그것이야말로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꿈. 이제 알아. 그림만이 내 인생의 탈출구. "

그의 마지막을 보면 1889년 5월, 그는 스스로 요양원으로 간다. 그는 노래한다. "요양원에 도착한 이후 계속된 발작, 우울증.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 테오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에게 짐 같고. 그렇게 내 스스로를 체찍질하며 자학할 뿐. 다 사라져가. 가끔 행복하기도 했고, 가끔은 희망도 가졌지. 애정어린 가족들, 세상의 온정과 인정을 난 가질 수 없는가봐. 살아보려 했는데. 세상은 나에게 가질수 없는 것들을 쥐어줘 놓고. 빼앗아가네. 다 사라졌네. 용기 따위, 희망 따위…"

병원에서 나온 반 고흐는 1889년 12월 심각한 좌절을 겪었다.

"테오야. 밀밭으로 그림을 그리고 나왔어. 작렬한 태양 아래에서 밀을 베어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밀밭에서 나는 죽음을 봤어. 그래도 슬프지 않아."

1890년 7월 27일, 37세의 나이.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가서 권총으로 그의 가슴을 겨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노래한다. "그림을 위해 생명을 걸겠어. 그림 때문에 난 많이 아팠고. 사람들은 날 미친 놈이라 기억하겠지만 아무래도 좋아. 계속 그릴거야. 내 그림을 위해 생명을 걸었어. 내 삶에 절정. 그림을 완성하리. 그림으로 인해 행복했었으니. 아무래도 좋아. 그림으로 인해 꿈을 꾸었으니, 아무래도 난 좋아. 내 그림을 위해 내 생명을 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서 치열했던 고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엔 인간 고흐가 있다. 인간 고흐에 축복을, 그리고 예술혼에 경의를 표하게 하는 작품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오는 4월 27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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