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제10차 총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 벡스코(BEXCO) 내 마련된 마당의 WCC 부스.   ©장세규 기자=공동취재단

1982년 이후 32년 만에 공식 발표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선교문서'는 지난달 30일부터 8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WCC 총회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지난 4일 발표된 선교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 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는 제목처럼 21세기의 급변하는 글로벌 선교 상황 가운데서 선교 주체의 변화, 새롭게 일어나는 선교운동 등을 인식하고 전세계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회들이 나아갈 선교 방향의 지침을 제시한 문서라는 데 의의가 크다.

특히 성령의 선교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기독교의 중심축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고 오순절 및 복음주의 교회들이 비서구권에서 약진하고 있는 선교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했을 뿐 아니라 이들과의 협력의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내용은 대부분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으로, 이번 문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복음주의에서는 '균형 있는 접근을 했다', 에큐메니칼에서는 '중도적이다'고 평가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선교문서 작성을 위해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신학위원회 등과도 공동 작업한 사실은 복음전도를 통한 개인의 영혼구원이 사회구원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에큐메니칼 선교가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에큐메니칼 선교 및 전도 현장과 학계에서 실제적인 변화나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추진 의지와 구체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WCC도 우선 4년 간 이번 선교선언을 기초로 선교 운동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2017년 세계선교대회에서 논의한다고 밝혔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구원 영역, 곧 선교 영역을 교회 중심적 사고에서 교회 밖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20세기에 등장한 신학이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닌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활동 영역도 교회 안이 아닌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로 확장되면서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총체적 선교활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인식을 일깨워주었다. 이로 인해 사회구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교회의 사회 참여는 활발해진 반면 개인의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약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국선교연구원 문상철 원장   ©기독일보 DB

문상철 한국선교연구원 원장은 "이번 WCC 선교문서는 21세기 초 글로벌 선교 상황을 염두에 둔 선교학적 숙고의 포괄적 표현"이라며 "이 선언이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내용과 표현에 있어 대담하면서도 이전보다 신중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새로운 선교운동에 따른 변화된 선교 주체들에 대한 의식, 선교와 교회의 관계, 이민 및 다문화 목회와 선교 등 새로운 선교적 이슈들을 현실적이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한 흔적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 원장은 "특이한 것은 불의한 제도에 대해 변혁적 노력을 영적 전쟁의 차원으로 보고 이를 선교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둘의 관계를 연관 지은 것은 하나의 진전이지만, 영적 전쟁이 어느 영역에 국한된다면 이 역시 서구 계몽주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신학적 표현이다"며 "영적 전쟁의 이슈는 보다 광범위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선교'의 포괄적 선교 정의는 영혼구원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고 영혼구원 사역에 대한 열정과 격려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며 "같은 맥락에서 타종교인의 회심을 위한 설득 노력도 더 분명히 강조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부족한 강조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국교회가 서구교회 선교에 영향을 주어야 할 과제"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최형근 서울신대 선교학 교수는 이번 선교 문서와 관련 "기존 WCC의 입장에서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점은 성령론적으로 선교를 접근한 것으로, 오순절 진영에서는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나 종교간 대화 부분에서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형근 서울신대 교수   ©기독일보 DB

최 교수는 또 이번 선교 문서에 복음주의에서 쓰는 제자도, 온전한 복음 등의 용어가 등장했지만 같은 용어라도 신학적 차이에 의해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에서 해석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령 안에서 생명 경험은 생명을 충만하게 맛보는 것' 등의 표현들도 복음주의 진영에서 말하는 진정한 영적체험과 변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 '생명'에 대해서도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론, 구원론적 이해와 달리 자연신학적, 일반계시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지 않은지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음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복음전도의 긴박성 등은 이번 선교선언에 언급되지 않았다"며 "'십자가'를 강조하긴 했으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볼 때 성령의 선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심의 선교 이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는 선교', '주변부로부터의 선교', '공동체의 선교' 등의 개념은 복음주의의 선교적 교회론과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결론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성 등 성경과 복음에 대한 명확한 주장이 나타나지 않는 점, 그리스도인과 교회 정체성을 소외된 사람으로 제한시킬 수 있는 점, 교회 문제에 대해 해방신학, 민중신학의 주장과 일치하는 점, 약자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지만 죄의 문제를 단순히 사회구조적 문제로 축소시키는 점 등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또다시 의구심을 만들고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초월적 지평을 간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30년 전에는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도 해외 선교, 미전도종족 선교 활동이 나타났는데 지금은 거의 약화됐다"며 "성령론 자체를 영성적으로 설명하거나 생명, 창조 등에 대한 강조는 창조신학 중심적 선교로 구속신학 자체가 약하기 때문에 앞으로 WCC 선교 방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일 장신대 교수   ©기독일보 DB

한국일 장신대 선교학 교수는 "기존 에큐메니칼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 패러다임에 서 있다면 이번 선교 문서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서 성령의 역할과 관점이 강조됐다"며 "이는 기존의 '하나님의 선교'에서 성령의 역할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선교'가 인간중심적 이해에 집중됐던 것을 전 피조세계로 확대하면서 세상 안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고, 성령의 관점에서 선교를 새롭게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함께 생명을 향하여'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선교 활동에서 생명이 강조했는데 이 생명은 한국교회의 전통적 이해인 영혼구원의 좁은 구원론과 생명의 개념을 넘어 전 피조세계를 포함하고 지탱하는 포괄적 의미의 생명이 선교의 내용과 목표가 돼야 한다고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의 선교'가 강조된 것에 대해 그는 "어디가 중심이며 어디가 주변인가에 대한 토론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19~20세기의 기존 선교가 문명국에서 비문명국으로, 부자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일방적으로 나아가는 선교였다면, 소위 주변이라고 간주되었던 가난하고 연약하며 소수자가 기독교를 믿는 지역들이 선교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주체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실 때 당시 중심에 있는 유대인과 지도자들과 함께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주변에 속한 세리, 창기, 가난한 사람들, 불치환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세우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실천하셨던 모범을 다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일 교수는 또 "이번 선교 문서에서 선교는 포괄적 활동인데 비해 전도는 복음전파라는 구체적 활동을 가리키고 있다"며 "포괄적 활동인 선교와 함께 복음주의에서 주로 강조하는 전도활동도 언급, 강조된 것은 에큐메니칼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 이해가 서로 많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문서가 다른 WCC 문서에 비해 교회론이 강화되고,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할이 강조된 것도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서구교회는 선교를 주로 교회 밖의 선교단체나 총회 안의 선교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지역교회는 직접적으로 선교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지역교회 중심으로 선교를 수행해 왔다"며 "이런 점에서 지역교회가 선교의 가장 중요한 참여적 주체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은 서구교회를 향해서는 지역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며, 한국과 같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교회들을 향해서는 지역교회의 역할을 재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내용이 선교선언에는 있지만 총회에서는 직접 언급 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현곤 장신대 세계선교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82년 WCC 선교 문서가 처음 나온 이후 지난 30여 년 간 선교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며 "이에 따라 새로운 전도, 새로운 선교에 대해 논의한 것이 뜻 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WCC와 WEA가 선교 문서 작성을 위해 협력한 것과 통일된 선교 문서가 한국에서 통과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선교 문서는 성령의 역사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며 "북미, 유럽 등 서구 중심의 세계선교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비서구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비서구 지역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그 동안 인간 중심, 이성 중심의 신앙을 해 온 비서구교회가 열린 마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선교 흐름은 비서구 지역 교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교회를 다스리는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님과 함께하는 선교가 될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선교'와 연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연결돼 있으나 성부 하나님 위주의 선교는 창조세계의 보존을, 성자 예수님 위주의 선교는 기독론을 강조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성령의 역동적 선교, 곧 다이나믹한 은사와 능력이 선교의 큰 특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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