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국민과 관련 진료비가 늘고 있지만, 입원이 필요한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병상과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재활·주거·고용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가 7일 공개한 자료와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 평생유병률은 2011년 24.7%에서 2021년 27.8%로 상승했다. 2011년 이후 연평균 0.4%의 증가세를 보였다. 스트레스와 우울감 등 정신건강 문제를 지난 1년간 경험했다는 응답 비율도 2022년 63.8%에서 2024년 73.6%로 높아졌다.
정신질환 진료비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5년 4조1000억원이었던 진료비는 2021년 6조5000억원, 2023년 7조2000억원을 거쳐 2024년 7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정신건강 관련 기관 3051곳…중증 입원치료는 부족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료를 보면 국내 정신건강증진기관과 관련 시설은 총 3051곳이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263곳과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63곳, 정신재활시설 366곳, 정신요양시설 59곳, 정신의료기관 2300곳 등이 운영되고 있었다.
상담이나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은 늘었지만, 중증·응급 환자가 입원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설은 충분하지 않았다. 수도권 정신의료기관 165곳 가운데 폐쇄병동이나 개방병동 입원이 가능한 기관은 110곳에 그쳤다.
의료 인력 배치 수준에도 차이가 있었다. 일반병원에서는 통상 의사 1명이 환자 20명을 담당하는 데 비해 정신전문병원은 의사 1명당 환자가 6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급성기 환자를 치료하려면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확보할 별도 공간과 지원 인력이 필요해 운영 부담도 컸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우울증이나 불안 치료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고 의원도 많아져 약물치료와 상담, 증상 관리는 비교적 나아졌다”며 “입원이 필요한 중증 치료와 정신재활 프로그램 등의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립정신병원 전문의 충원율 49.1%
전문 인력 부족은 국립정신병원에서도 확인됐다. 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국립정신병원 5곳의 종합감사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이들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원율은 49.1%에 머물렀다.
급성기 정신질환자는 행동 조절이 어려운 상태에 놓일 수 있어 일반 진료보다 많은 인력과 공간이 필요했다. 반면 정신건강의학과는 검사나 처치에 따른 수익을 내기 어려워 병원 입장에서는 중증 입원치료 시설을 유지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 교수는 “급성기에는 행동 제어가 어려울 수 있어 인력과 공간이 필요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검사가 많지 않아 병원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으로 갈수록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병원도 병상을 줄이는 경향이 있어 급성기에 입원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치료 인프라를 확충하려면 병상 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의와 간호사, 정신건강전문요원 등 필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지원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물치료 넘어 재활·고용·주거 지원 필요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치료 방식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치료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재활과 쉼터, 동료지원 등의 서비스가 함께 제공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치료 인프라가 마련돼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들이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약물치료만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 재활과 쉼터, 동료지원 같은 선택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률에서도 격차가 나타났다. 전체 장애인의 고용률은 37.2%였지만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4.8%에 머물렀다. 근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인 동시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신건강 위기를 겪은 당사자가 일정 기간 머물면서 동료지원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료지원쉼터는 전국에 7곳뿐이었다. 당사자들은 병원 치료를 마친 뒤 곧바로 기존 생활로 돌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만큼 회복을 돕는 중간 단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신응급 필수의료 지정…치료 병상 확대
정부도 중증·응급 정신질환 치료와 지역사회 회복을 위한 인프라 확대에 나섰다. 지난 7월 28일 국무회의에서는 정신응급을 필수의료 분야로 지정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 통합돌봄은 2단계가 시작되는 2028년부터 중증 정신질환자를 지원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을 통해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 17곳과 공공병상 180개, 합동대응센터 18곳을 확충하기로 했다. 급성기 집중치료실 병상은 2000개까지 늘릴 계획을 세웠다.
지역사회 회복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동료지원쉼터를 17곳으로 늘리고 정신질환 당사자를 위한 주거 100호를 지원할 방침이었다. 동료지원인 300명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했다.
지난 7월에는 제1기 2차 급성기 정신질환 집중치료병원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지정 기관은 38곳, 집중치료 병상은 789개로 늘었고 정신응급 병상 130개도 확보했다. 당사자의 신청이 없더라도 명백한 위기 상황에서는 개입해 예방과 치료로 연계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보건지출 중 정신건강 예산 비중 2.9%
정신건강 예방과 치료, 회복 인프라를 지속해서 확대하려면 관련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 전체 보건지출에서 정신건강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9%였다. 주요 선진국의 비중이 5%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1명당 지역사회 정신건강 예산은 8710원이었다. 지역사회 정신건강증진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도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했다.
대통령 직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 부위원장이자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을 맡은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장기 입원 중심의 시스템이었지만 현재는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며 “예산을 확충하고 외래·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해 치료가 필요할 때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신속하게 작동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의 가족·지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와 SNS 상담 서비스 ‘마들랜’을 통해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109는 2024년부터 통합 운영됐으며, 마들랜은 메신저와 문자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상담을 제공했다. 자세한 내용은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상담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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