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법과 제도인가, 첨단기술인가, 아니면 인간의 마음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안전은 기술과 제도로 시작할 수 있지만, 사람의 안전인성(Safety Character)으로 완성된다. 아무리 정교한 안전관리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생명을 경시하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으면 안전은 문서 속 구호에 머문다. 반대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만 있고 법과 원칙이 없다면 선의는 있어도 지속 가능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결국 안전은 제도의 견고함과 안전인성의 따뜻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필자는 이를 수평적 가치와 수직적 가치의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수평적 가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Empathy), 배려(Consideration), 연대(Solidarity)다. 나의 안전만이 아니라 동료와 이웃, 나아가 다음 세대의 안전까지 함께 생각하는 태도다. 수직적 가치는 개인과 조직이 지켜야 할 원칙과 책임(Accountability), 생명존중의 윤리, 그리고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향한 자기성찰이다. 수평이 공동체를 연결하는 관계의 축이라면, 수직은 그 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책임의 축이다. 수평 없는 수직은 권위주의가 되고, 수직 없는 수평은 책임 없는 온정주의가 된다. 두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안전은 규제를 넘어 문화가 된다.
이러한 철학은 히브리어의 두 개념,‘미쉬파트(Mishpat, משפט)’와‘츠다카(Tzedakah, צדקה)’를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미쉬파트는 정의와 공정한 판단, 공동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뜻하며, 츠다카는 정의로운 책임과 적극적인 배려를 실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현대 안전의 언어로 풀어내면 미쉬파트는 법규·안전기준·표준작업절차(SOP)와 같은 안전의 하한선(最低基準) 이고, 츠다카는 위험에 놓인 사람을 먼저 살피고 취약한 이웃을 보호하며 규정의 빈틈까지 고민하는 안전의 더 높은 지향점이다. 다만 츠다카는 규정을 무시한 무모한 희생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책임을 확장하는 실천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드러난다. 법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안전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선의를 내세웠다는 이유로 절차를 무시할 수도 없다. 미쉬파트 없는 츠다카는 기준을 잃고, 츠다카 없는 미쉬파트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다. 안전은 규정을 준수하는 데서 출발하되, 규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위험까지 발견하고 개선하는 데서 성숙해진다. 이것이 안전인성의 핵심 원리이다. 이 원리는 기업의 안전경영과 ESG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ESG에서 안전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이해관계자의 신뢰, 조직의 책임 있는 의사결정과 직결된다. 경영자가 안전을 비용으로만 보면 위험은 현장으로 전가(轉嫁)되지만, 안전을 지속가능한 경영의 기반으로 인식하면 투자와 예방, 교육과 소통이 조직의 일상에 자리 잡는다.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 작업 전 안전점검(TBM), 사고·아차사고(Near Miss) 보고, 개선조치의 환류는 미쉬파트의 실천이다. 작업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위험을 제기한 사람을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며, 취약한 노동자와 협력업체까지 안전의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츠다카의 실천이다. 이 두 가치가 결합할 때 안전은 경영진의 선언을 넘어 조직 구성원이 함께 만드는 안전문화(Safety Culture)가 된다.
더 나아가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역시 이러한 방향과 맞닿아 있다. SDG 3은 건강과 웰빙, SDG 8은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포함한 양질의 일자리, SDG 11은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도시와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는 안전이 소방이나 산업현장만의 과제가 아니라 보건·노동·도시·환경·교육을 관통하는 사회적 책무임을 보여준다. 특히 위험에 더 취약한 사람을 먼저 보호하는 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正義)의 문제이다. 한자성어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은 먼저 자신을 바로 세우고 타인과 공동체를 이끌라는 뜻이다. 안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가 안전을 말하면서 생산실적만을 보상하고, 관리자가 위험을 보고한 직원을 질책하며, 시민이 자기 편의만을 위해 공공의 안전을 외면한다면 어떤 제도도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 안전인성은 타인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부터 실천하는 데서 시작한다. 위험을 발견하면 알리고, 잘못을 확인하면 개선하고, 타인의 생명을 나의 책임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이다.
이제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수직의 원칙으로 위험을 통제하고, 수평의 공감으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안전의 혜택 또한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고르게 미쳐야 한다. 이것이 국민안전인성이 안전경영과 ESG를 연결하고, 다시 SDGs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확장되는 길이다. 결국 안전의 수준은 보유한 장비의 수나 매뉴얼의 두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위험 앞에서 얼마나 원칙을 지키는지, 타인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얼마나 책임 있게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수평으로 서로를 살피고, 수직으로 책임의 기준을 세우는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의 High Tech와 인간 안전인성의 태도인 High Touch가 함께 작용해야 한다. 그곳에서 안전은 명령이 아닌 습관이 되고, 경영은 이윤을 넘어 생명을 존중하며, 지속가능성은 선언이 아닌 실천이 된다. 안전은 미쉬파트로 기준을 세우고 츠다카로 책임을 확장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것이 국민안전인성이 지향해야 할 철학이며,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안전한 사회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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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