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7일 “어떤 도전에 직면하더라도 사법권의 독립은 지켜져야 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른 재판과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 개회사에서 첫 세션 주제인 ‘사법부의 역할’을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사법권 독립에 대해 사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사회적 분쟁이 갈수록 법원으로 향하고 국민의 기대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법관들에게는 어떠한 난관에서도 두려움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할 용기가 필요하다며, 각국 대법원장에게도 법관들이 이러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입법·행정부와 협력하되 사법부 독립 보장돼야”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 사이의 관계에서도 상호 존중과 협력을 강조했다. 사법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국가기관 간 협력이 필요하지만, 각 기관의 고유한 책임과 사법부 독립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협력이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의 발언은 대법관 후보 재제청 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사법부가 긴장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나왔다. 국제 사법회의 무대에서 사법권 독립과 함께 입법·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상호 존중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예정된 시간을 크게 넘긴 약 30분간 개회사를 이어가며 한국의 법치 전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고조선의 홍익인간 정신과 포항 중성리 신라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등을 소개했다.
‘나·너·밥·법’으로 설명한 상호 존중과 법치
조 대법원장은 한글의 ‘나’, ‘너’, ‘밥’, ‘법’을 활용해 상호 존중과 법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상대방에게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한다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방치할 경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도덕과 사회 규범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아·태 대법원장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법부 수장들이 모여 각국의 사법제도와 사법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이 개최국을 맡은 것은 1999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회의에는 40개국 사법부가 참여해 1985년 회의 창설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 등 13개 국제기구도 참여했다.
사법권 독립·AI 활용도 주요 의제로
사법권 독립 문제는 이날 ‘사법부의 역할: 각국의 다양한 관점’ 세션을 비롯해 18일 열리는 ‘법원에 대한 인식 제고: 언론과의 소통,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사법부 부패 척결과 독립 수호’ 등의 세션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인공지능(AI)도 이번 회의의 주요 논의 주제로 꼽혔다. 조 대법원장은 AI가 사법 접근성을 높이고 절차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반면, 신뢰성과 책임성, 사법적 판단의 온전성과 관련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법 정의의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AI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개회사 말미에 각국 사법부와 국제기구 참석자들에게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0대 시절 작성한 자작시를 소개했다. 이어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현장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이어진 기조 발표에서는 권영준 대법관이 세종대왕의 법치주의 정신을 주제로 훈민정음 창제와 세법 제정, 검시와 3심제 등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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