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아니 콜 박사의 기고글인 '미국에 정말 부흥이 일어나고 있나?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Is there a revival in the US? The real data says no)를 8월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아니 콜 박사는 행동연구자이자 ‘백 투 더 바이블(Back to the Bible)’의 최고경영자(CEO)이며, 미국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위치한 성경말씀 체화센터(Center for Scripture Absorption)의 소장이다. 그는 ‘2025 미국 기독교 현황(State of Christianity in America)’ 연구의 책임연구자이며, 성경말씀 체화와 삶의 변화를 측정하는 검증된 도구인 ‘SALT 지수(Scripture Absorption & Life Transformation Index)’를 개발했다. 이 지수는 23개국 이상에서 150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활용됐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 20년 동안 필자는 사람들이 자신이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측정해 왔다. 또한 성경 참여(Scripture engagement)를 돕는 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감격할 사람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필자다. 이하의 내용을 읽을 때 이 점을 먼저 염두에 두길 바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현재 부흥기에 있지 않다. 2026년 여름을 기준으로 볼 때, 기독교 전통에서 역사적으로 사용해 온 기준이나 현재 데이터가 뒷받침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에 비춰보면 아직 ‘부흥’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 심상치 않은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약 20년 동안 이어져 온 쇠퇴가 멈추기 시작했고, 청년 남성들의 종교적 관심이 높아졌으며, 기독교 신앙과 성경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관심의 상승을 따라갈 만큼 ‘영적 형성(spiritual formation)’이 함께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부흥을 둘러싼 대중적 논쟁의 상당 부분은 사실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부흥이라는 말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를 둘러싼 의미론적 논쟁이다. 역사적으로 복음주의권에서는 이를 세 단계로 구분해 왔다. 갱신(Renewal)은 개인에게서 일어나고, 부흥(Revival)은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다시 깨어나는 것이며, 각성(Awakening)은 더 넓은 사회와 문화에까지 변화가 확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신학적 구분은 의미가 있지만 수치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조작적 정의를 사용하고자 한다. “부흥이란 그리스도로 인해 삶이 눈에 띄게 변화한 사람들의 수가 인구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의 삶이 변화하도록 돕는 현상이다.”
이 정의를 기준으로 할 때, 오늘날 미국이 부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할 근거가 동시에 존재한다.
부흥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들
먼저 가장 분명한 변화는 장기간 이어져 온 쇠퇴가 멈추고 있다는 점이다. 퓨리서치(Pew Research)의 종교 지형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 가운데 기독교인의 비율은 약 62%로 나타났다. 2007년의 78%와 비교하면 크게 낮아졌지만, 2019년 이후에는 하락세가 상당히 둔화됐다. 수십 년 동안 증가해 온 무종교인의 비율 역시 29% 안팎에서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협동선거연구(CES)에서는 무종교인의 비율이 2024년 34%에서 2025년 31%로 떨어져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30년간 계속돼 온 세속화의 흐름이 적어도 더 이상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 셈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현재 ‘부흥’을 주장할 때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방어 가능한 근거다.
두 번째 신호는 청년 남성들의 종교적 관심 증가다. 2024~2025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갤럽(Gallup) 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자신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18~29세 남성은 42%로 나타났다. 2년 전 28%에서 1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월 1회 이상 예배에 참석한다고 답한 비율도 7%포인트 오른 40%를 기록해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약 25년 만에 처음으로 ‘종교의 중요성’이라는 지표에서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을 앞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별도의 조사를 진행하는 바나(Barna) 그룹의 자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찰됐다. 전체 데이터를 살펴볼 때 이 같은 청년 남성층의 반등은 특히 눈에 띄는 변화다.
세 번째는 교회 공동체 규모가 오랜만에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하트퍼드 연구소의 EPIC 프로젝트에 따르면 대면 예배 참석자의 중간값은 70명으로 늘었다. 팬데믹 이전 65명, 2021년 45명과 비교하면 분명한 회복이다. 연구진 역시 결과를 다시 검토할 만큼 예상 밖의 변화였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교인의 비율도 2021년 15%에서 40%로 크게 증가했다.
네 번째는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뚜렷하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2025년 성경 판매량은 20여 년 만에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2019년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했다. 미국성서공회(ABS)의 조사에서는 성경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깊이 참여하지는 않는 이른바 ‘유동적인 중간층(movable middle)’이 미국 성인의 28%를 차지했다. 2024년 25%보다 증가한 수치로, 인구로 환산하면 수백만 명 규모의 변화다. 더 중요한 것은 일부가 이전에 성경과 단절돼 있던 집단에서 이 중간층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던 사람들이 적어도 성경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부흥’이라 부르기 어려운 데이터
문제는 긍정적인 신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부흥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도 상당히 강력하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 참여도의 급등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25년 미국성서공회는 전년도보다 성경을 읽는 미국인이 약 1,100만 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남성과 밀레니얼 세대에서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났고, 상대적으로 세속화된 지역에서도 상승세가 포착됐다.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이것을 영적 회복의 분명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26년 다시 측정했을 때 그 상승분의 상당 부분은 사라졌다. 성경 참여도는 다시 2024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고, ‘성경에 깊이 참여하는’ 인구 비율 역시 약 17% 수준에 머물렀다.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일시적인 급등(spike)에 가까웠다. 다만 상승세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던 기관이 이후 하락세도 동일하게 공개했다는 점은 연구의 신뢰성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다른 대규모 조사에서도 뚜렷한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PRRI의 미국 종교 인구조사에서는 기독교인 비율이 66%, 무종교인 비율이 28%로 전년도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주간 예배 참석률 역시 26%로 큰 변화가 없었다. PRRI는 미국인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청년 남성의 종교적 회귀 현상 역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퓨리서치는 성별 격차가 좁아진 원인을 젊은 남성의 신앙심 상승에서만 찾기 어렵다고 본다. 일부 지표에서는 젊은 여성들의 종교성이 더 빠르게 하락하면서 남녀 간 격차가 좁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과의 연관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우리가 목격하는 현상의 일부는 청년 남성들이 순수하게 ‘그리스도’를 찾아 돌아왔다기보다 자신들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에 맞는 공동체를 찾은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갤럽 자료에서는 예배 참석률 상승이 특히 공화당 성향 청년층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공화당 성향의 젊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상승 폭이 컸던 반면, 민주당 성향 청년층에서는 변화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Z세대 부흥’이라는 표현도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18~24세 여성 가운데 자신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또는 무종교인이라고 규정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Z세대 전체가 신앙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단정하면, 실제로는 성별과 정치적·사회적 집단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변화의 모습을 가려버릴 수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부흥’보다 ‘해빙’에 가깝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수치가 하나 있다. 2024년 2월에는 미국인의 18%만이 미국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2026년 4월에는 그 비율이 37%로 크게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교단 소속 비율이나 예배 참석률, 기도 빈도, 종교가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등에서는 그만큼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실제 종교 활동보다 ‘종교가 다시 영향력을 얻고 있다’는 인식이 훨씬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부흥 그 자체만큼이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필자의 단체가 2025년 미국 성인 6,0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역시 이 점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다는 응답은 70%, 부활을 믿는다는 응답은 64%,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61%에 달했다. 믿음의 언어는 여전히 넓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삶의 실천 단계로 내려가면 급격한 좁아짐이 나타났다. 매주 성경을 읽는 사람은 35%에 불과했고,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릴 만한 경우는 40%에 머물렀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다른 사람을 멘토링하거나 제자로 양육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31%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필자에게 가장 우려스러웠던 결과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들의 멘토링 비율과 스스로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율 사이에 기대만큼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신자들조차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을 ‘사역자나 다른 누군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부흥’보다는 ‘해빙기(thaw)’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수백만 명이 문 앞까지 걸어왔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기 시작했고,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열매가 맺힌 것은 아니다. 해빙이 곧 추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해빙 없이 추수도 시작될 수 없다.
진정한 부흥을 말하려면 필요한 세 가지
필자가 보기에 앞으로 진정한 부흥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적어도 세 가지 변화가 확인돼야 한다.
첫째, 현재의 ‘유동적인 중간층’이 실제 성경 참여와 회심의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지금처럼 성경에 관심을 갖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무관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말씀을 읽고 믿으며 삶을 변화시키는 단계로 넘어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2027년 이후의 지표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면 매우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다.
둘째, 청년 남성에게 나타난 종교적 관심 증가가 정치 일정과 상관없이 지속돼야 한다. 현재의 상승세가 선거 국면을 지나서도 유지된다면,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집단화나 문화적 반작용을 넘어선 영적 변화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셋째, 영적 형성의 지표가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신앙에 대한 개방성과 관심은 몇 년째 높아지고 있지만, 성경 읽기와 기도, 순종, 제자훈련, 다른 사람을 양육하는 삶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 지표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관심의 증가는 결국 문화적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나타난다면 그때는 보다 자신 있게 ‘부흥’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몇 년간의 현상은 일시적인 문화적 관심의 상승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더 안타까운 시나리오는 교회가 이 귀중한 기회를 실제 제자훈련과 복음 전도로 연결하지 못한 채, 이것이 부흥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만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관심의 증가가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희망을 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무너져 내린 것 가운데 상당 부분은 깊은 영적 헌신이라기보다, 애초에 신앙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적으로만 기독교와 연결돼 있던 명목상의 종교적 관습이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기도와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핵심적인 태도는 여전히 상당 부분 남아 있다. 가지치기는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미국인의 신앙을 측정해 온 20여 년 동안 지금처럼 가능성이 열린 환경을 본 적은 드물다. 동시에 그 기회를 실제 추수로 연결할 준비가 이토록 부족한 교회의 모습 역시 좀처럼 본 적이 없다.
부흥은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실제로 달라지는 것이 부흥이다. 지금 미국에는 전자의 조짐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아직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판단하는 데만 있지 않다. 전도와 제자훈련을 ‘다른 누군가가 할 일’로 넘겨버리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역시 돌아봐야 한다. 교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 곁에 누가 앉아 성경을 함께 읽을 것인가. 누가 질문을 들어주고 기도하며 삶을 나눌 것인가. 누가 다음 사람을 다시 제자로 세울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신앙을 나누고, 자신도 실제 제자로 살아가며 또 다른 제자를 세우기 시작할 때 지금의 ‘해빙’은 비로소 풍성한 추수의 계절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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