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2부: 신약 성경에 나타난 배신자를 향한 그리스도의 눈물과 보혈 (12가지 강해)

김정부 목사
김정부 목사(찬송하는교회 담임, 한국교회법학회 이사)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의 선지자들이 대변했던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과 인격을 통해 이 땅에 완전하게 성육신(Incarnation)되어 나타난다. 주님은 자신을 향해 대못을 박을 인류의 배신을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13) 마태복음 23장 37절 - 돌을 던지는 자들을 품으려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심정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강해 주석: 예루살렘은 과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살해했고, 이제 곧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마저 십자가에 못 박아 배신할 영적 간음의 도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도시를 바라보며 진노의 불을 내리시는 대신, 비참하게 멸망할 그들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리신다. 포식자가 엄습할 때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암탉처럼,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을 끝까지 품어 안으려 하셨던 주님의 절절한 모성적 사랑의 심정이 투영되어 있다.

(14) 마태복음 26장 50절 -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를 향한 "친구여"의 외침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 강해 주석: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주님의 동궤를 맡으며 동고동락했던 제자였으나, 은 30에 스승을 팔아넘기기 위해 대제사장들의 군대와 함께 군호(입맞춤)를 짜고 다가왔다. 예수님은 유다의 추악한 음모와 배신을 이미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해 분노의 저주를 퍼붓지 않으시고 도리어 "친구여(Friend)"라고 부르신다. 십자가로 걸어가시는 그 마지막 파멸의 순간까지도 유다에게 양심의 가책을 통한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셨던,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주님의 비통하고도 온유한 사랑의 극치다.

(15) 마태복음 26장 31~32절 - 다 버리고 도망칠 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시는 심정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 강해 주석: 십자가의 고독한 죽음을 불과 몇 시간 앞둔 밤, 주님은 호언장담하는 제자들이 비겁하게 자신을 홀로 버려두고 모두 도망칠 것을 예견하셨다. 배신당할 것을 아는 자의 마음은 쓸쓸하고 시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섭섭함과 서운함을 뒤로하시고,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 있겠다"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고, 우리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던 그 갈릴리에서 다시 기다릴 테니 낙심하지 말고 찾아오라는 주님의 선행적 배려와 끝없는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16) 누가복음 15장 20절 - 전 재산을 탕진하고 배신한 아들을 매일 기다리는 아버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강해 주석: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엄연히 살아계심에도 유산을 요구하여 먼 나라로 가 배신하고 탕진했다. 고대 유대 사회의 '케차차' 관습에 따르면, 가문을 배신하고 이방인처럼 산 아들은 마을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거나 호적에서 파내어 외면당해야 맞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아직도 거리가 먼 동네 어귀'에서 먼저 알아보고 체통을 버린 채 달려간다. 매일 밤낮으로 배신한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아버지의 타들어 가는 심정과, 돌아오자마자 죄를 묻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는 신적 사랑의 시각화다.

(17) 누가복음 22장 61~62절 - 배신의 순간, 베드로를 바라보신 주님의 시선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강해 주석: 수제자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며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바로 그 결정적 순간, 새벽닭이 울었고 예수님은 고개를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그 시선은 "네가 내 호언장담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정죄나 원망의 시선이 아니었다. "베드로야,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 했으나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단다. 낙심하지 마라" 하시는 긍휼과 아픔이 서린 눈빛이었다. 그 사랑의 심정이 베드로의 완악한 심장을 찔렀기에, 그는 절망하여 유다처럼 자살하지 않고 밖에 나가 통곡하며 위대한 사도로 회복될 수 있었다.

(18) 누가복음 23장 34절 - 못 박는 자들을 위해 변호하시는 십자가의 사랑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 강해 주석: 자신을 채찍질하고, 온갖 조롱과 침 뱉음을 일삼으며, 마침내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높이 매단 로마 군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올리신 첫 번째 가상칠언(架上七言)이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극치 속에서도 주님은 저주의 번개를 내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몰라서 저러는 것"이라며 하나님 앞에 그들의 죄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신다. 배신의 극점인 십자가 위에서 터져 나온, 인류를 향한 용서와 사랑의 심정이다.

(19) 요한복음 13장 1절 - 자기를 버릴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심정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강해 주석: 여기서 주님이 언급하신 '자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잠시 후 자기를 은 30에 팔아넘길 가룟 유다, 저주하며 부인할 베드로, 그리고 뿔뿔이 도망칠 제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제자들의 이 비겁한 배신과 연약함을 눈앞에 뻔히 두고도 주님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철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며 성찬을 베푸신다. 여기서 '끝까지(To the end)'는 단순히 시간적인 끝을 넘어,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분량(To the uttermost)까지 다해 사랑하셨음을 뜻하는 절대적 사랑의 심정이다.

(20) 요한복음 21장 15절 -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와 차려주신 조반과 치유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 강해 주석: 예수님을 배신했던 베드로는 죄책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 다시 옛 직업인 어부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몽둥이나 정죄의 책망을 들고 찾아오지 않으셨다. 밤새 한 그물질로 지친 배신자를 위해 친히 바닷가에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구워 조반을 먹이신 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신다. 베드로의 세 번의 배신(부인)을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치유하시고 덮어주시는 주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회복의 심정이다.

(21) 로마서 5장 8절 - 여전히 죄인 되었을 때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강해 주석: 인류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각기 제 길로 갔던 본질상 반역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완벽하게 회개하여 돌아왔을 때 비로소 사랑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죄를 지으며 그분을 배신하고 있던 '바로 그 타이밍'에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셨다. 배신자를 위해 자기의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이 진짜임을 우주 앞에 증명(확증)하는 유일한 증거다.

(22) 로마서 10장 21절 - 거스르고 말 안 듣는 자들을 향해 종일 벌린 손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 강해 주석: 사도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의 길로 간 완악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앓이를 대변한다. 하나님의 손은 심판의 몽둥이를 들기 위해 올라간 손이 아니다. 돌아오는 자식을 무조건 안아주기 위해 가슴을 활짝 열고 "종일 벌리고 있는 손"이다. 거스르고 배반하는 자들을 향해 끝까지 닫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포용력과 자비의 심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23) 디모데후서 2장 13절 - 우리는 배신할지라도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는 사랑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언제나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 강해 주석: 여기서 '미쁨이 없다'는 것은 신실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신의를 저버리며 배신한다는 뜻이다. 반면 '미쁘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신실하시다는 뜻이다. 인간은 연약하고 이기적이어서 수시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신앙의 지조를 저버리지만, 주님은 우리를 향한 구원의 약속과 사랑을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주님의 본질 자체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신적 본성을 스스로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배신보다 주님의 신실하심이 언제나 더 크다.

(24) 요한계시록 3장 20절 - 문 밖에 서서 애타게 두드리시는 주님의 심정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강해 주석: 이 말씀은 불신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주님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세상과 타협하여 배신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주님은 그 교회의 당당한 주인이심에도 불구하고, 배신자들에 의해 문밖으로 밀려나 계신다. 그러나 주님은 하늘의 권능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와 진노하시는 대신, 문 밖에 서서 인격적으로, 애타게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십니다. 상처받으신 주님이 도리어 문밖에서 서성거리시며 다시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기를 갈망하시는 애절한 사랑의 심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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