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을 ‘특별한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롬 1:1, 딤전 6:12, 딤후 1:9) 그 특별한 사명은 하나님과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를 섬기는 것이다. 그런 사명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종은 본래 주인의 소유로 주인의 명령에 따라 주인과 자녀와 집안을 섬긴다. 하나님의 종도 그렇다. 고린도후서 11:16-33에서 교회를 위한 바울의 수고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을 본다. 그리고 모든 교회를 날마다 사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종은 바울의 교회와 형제들에 대한 이런 사랑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그런 사랑을 아신다.(고후 11:11)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참된 사도,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고백하는 것이다.(고후 11:23, 12:12) 바울을 통해 참된 종의 모범을 본다. 하나님의 종은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정순혁 – 영광의 길 비천한 삶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을 돌아봅시다. 제대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참으로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할게”, “기도할게요”라는 말입니다.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기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김없이 기도하겠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주 좋은 신앙인의 태도이긴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고 하는 말입니까? 그냥 상대가 원하는 것을 그와 함께 간구하는 것이 기도일까요? 그런 기도를 하면서 기도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요? 그러면 제대로 하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그냥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해도 된다는데, 제대로 하는 기도는 또 무엇일까요? 이런 지점에 다다르면 기도가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쉬운 것 같았는데, 조금씩 깊어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고형진 – 신앙의 재해석
염려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공존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 이상, 우리는 염려할 수 없다. 우리가 염려를 수용한다면 우리 영혼에서 염려는 믿음을 토막 내고 소망을 해체한다. 수많은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놓자. 문제 해결이 속히 임하지 않을지언정,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즉각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할 것이다. 그 놀라운 사랑의 붙드심을 믿고 믿음의 팔을 뻗어라. 아버지께서 평강으로 응답하실 줄 믿는다. 우리 인생을 향한 주님의 유일한 관심도 이와 같다. 우리가 얼마나 남기며 살고, 무엇을 얼마나 탁월하게 하는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신다. 오직 주님을 향한 신실함 하나만 보신다. 주님을 향한 충직함 하나만 평가하신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응답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 그분을 얻는 것이다. 인생의 결핍을 채우는 것도, 고통에서의 해방도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로, 그분을 위한 삶으로, 새 노래로 그 앞에 서는 것이다.
원유경 - 믿음이 넘어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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