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의 수고와 인내를 아십니다. 그들의 눈물, 고통, 부르짖음, 신음, 한숨, 그 모든 것을 아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도 백성들의 그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듣고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 부르짖음을 듣고 아셨습니다(출 3:7), 그렇습니다. 고달프고 외로운 세상에서 남몰래 감당하는 삶의 무게도 주님이 아십니다. 참 기막힌 심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아 계신 분들의 내밀한 사정까지도 주님이 아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힘겨운 삶의 무거운 짐들 모두 주님이 아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칭찬이고 격려입니다. "수고"는 어떤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뜻합니다. "네가 그것을 얼버무리거나 적당히 하지 않았구나. 네가 그 일에 얼마나 분투하고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고 순종하고 행동했는지 내가 안다"라는 칭찬입니다.
송태근 - 공동체를 살리는 7가지 진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걸으신지 18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건들과 같지 않습니다. 다른 사건들은 지나가 버리고 역사가 되고 맙니다. 그때 먼 과거처럼 사라지고 잊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의 그분의 현존(presence)은 결코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따라서 점점 더 멀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서 믿음이 발견되기만 한다면이야 그렇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분이 사셨다는 것은 오래 전의 사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가 존재하는 한, 바로 이 사람은 그렇기 되기 위하여, 그분과 동시대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분의 현존과 동시대에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고 및는 자로 틀린없이 동시대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 믿음의 조건입니다. 더 날카롭게 정의하자면, 이것이 믿음입니다.
쇠렌 키르케고르 - 그리스도교의 훈련 – 상
많은 목회자들이 ‘효율’이라는 단어를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을 꺼립니다. 효율은 왠지 세상 기업의 논리 같고, 목회는 ‘우직함’과 ‘미련함’으로 하는 것이라 배웠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뚫어야지, 무슨 기술을 쓰느냐”는 질책이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봅시다. 사역에서의 효율화는 단순히 일을 빨리 끝내고 쉬기 위함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일에 내 생명을 쏟기 위해, 덜 중요한 일에서 에너지를 아끼는 지혜’입니다. 행정을 줄여야 기도가 삽니다. AI는 탁월한 비서입니다. 자료를 찾아 주고 문서를 정돈해 줍니다. 하지만 비서가 회사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의 모든 서류와 메시지에 찍히는 ‘최종 결재 도장’은 반드시 목회자가 직접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도장을 찍는 행위’란, 모니터를 끄고 성경을 펴고 오랜 시간 이어지는 치열한 묵상, 이단 사상을 걸러 내는 신학적 검증, 그리고 “주여, 이 말씀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땀방울 섞인 기도입니다.
이석진 -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AI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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