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사건의 다섯 가지 특징
4. 예수 십자가 죽음을 대속사건으로 증시
넷째,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라고 증시한다. 당시 혁명 지도자들의 많은 반란이 있었고, 이들은 로마군에 의하여 진압되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며 죽어갔다. 이들의 십자가 죽음은 정치적 징벌이었다. 이들은 다시 살지 못했다. 예수도 이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런데 예수는 죽은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났다. 예수가 다시 사시지 않고 무덤에서 머물었다면 그의 죽음은 한 의인의 죽음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가 다시 사심으로 그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대속 사건으로 이해되어 진다. 그의 부활 사건은 그의 십자가 죽음이 대속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선언한다.
루터교 설교에서는 “십자가의 언어가 선교의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으로 부활의 메시지는 배후로 물러가 있다.” 루터교 전통에서는 십자가의 사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것은 균형을 잃는 것이다.
부활 사건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루터교 학자 불트만은 “부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십자가의 의미성의 표현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고 실존론적 의미만을 강조하고 있다. 불트만은 부활 자체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십자가가 의미하는 바, 즉 죽음의 무력화를 말하고 있음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부활 사건을 부인하는 것으로 십자가의 왜곡이다.
20세기 유대계 프랑스 여성 철학자요 기독교 회심자, 정치활동가인 시몬 베이(Simone Weil, 1909-1943)는 복음서에서 부활 사건의 보고가 없었더라도 신앙은 용이했을 것으로 보면서 “나에게는 십자가만으로 충분하다”(Simone Weil, Lettre à un religieux, Paris: Gallimard, 1951, 58.)고 고백했다. 유대계 여성으로 프랑스 반나치 저항대에 헌신한 베이에게는 2차대전 동안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동족 유대인들에 대한 신비적 공감 속에서 십자가 신앙이 부활 신앙보다도 더 다가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활 신앙 없는 십자가 신앙이란 그녀의 34세의 짧은 생애처럼 반쪽 세상 도피적이고 현실부정적인 반쪽의 신앙이다.
이에 반해 독일 엘랑엔의 부활신학자 큐네트(Walther Künneth)는 십자가 죽음에 대한 부활 사건의 우위를 강조한다: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십자가보다 우위(優位)에 있다.”(Walther Künneth, Theologie der Auferstehung, 4. Auflage, 1951, 132 f.) 부활 사건 없이는 십자가 사건은 어떠한 구원의 사건도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사건 없는 부활 사건은 구속의 사건이 될 수 없고 단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사건처럼 하나의 기적의 사건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십자가와 균형잡히지 않는 부활사건의 강조는 승리우선주의요 기복주의로 끝나는 것이다. 부활사건은 십자가 사건과 균형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십자가 죽음 없이는 부활 사건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사건 없이는 십자가 사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부활 사건은 십자가 사건과 균형있게 이해되어야 하며 십자가 사건과 불가분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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