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창세기의 ‘한 주간’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How should we interpret the Genesis week?)를 2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필자는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로 인정하기에 가장 합당한 시대라고 믿는다.
형이상학의 근본 질문, “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다. 영원한 우주이거나, 영원한 창조주이거나. 그런데 오늘날 우주가 영원하지 않다는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설명은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리학자 알렉산더 빌렌킨(Dr. Alexander Vilenkin)은 영원한 우주 가설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듯한 말을 남겼다: “합리적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논증이라면, 비합리적인 사람까지 설득하는 것이 증명이다. 이제 그 증명이 제시되었기에, 우주론자들은 더 이상 과거가 영원했다는 가능성 뒤에 숨을 수 없다. 피할 길은 없다. 그들은 우주의 시작이라는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
과거에 하나님의 존재 가설을 비판하던 이들은 종종 다중우주 이론으로 우주의 시작 문제를 피해가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그러한 이론을 뒷받침할 실증적 증거가 없음을 인정한다. (그 이론 역시 일종의 ‘믿음’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리처드 스윈번(Dr. Richard Swinburne)의 견해에 공감하고 있다: “우리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 한 분이 아니라 수조 곱하기 수조 개의 다른 우주를 가정하는 것은, 오히려 극도의 비합리성처럼 보인다.”
과학자는 자신의 편견이 아니라 증거를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우주의 시작이라는 개념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강하다. 존 레녹스(Dr. John Lennox)는 그 아이러니를 이렇게 지적했다: “16세기에는 과학의 발전이 하나님 신앙을 위협한다고 여겨져 반대되었다. 그런데 20세기에는 과학이 ‘시작’을 말하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 신앙의 개연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과학적 아이디어가 저항을 받았다.”
심지어 스티븐 호킹도 이렇게 인정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시작을 가진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신적 개입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 때문이다.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신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점점 더 많은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을 신앙으로 이끌고 있다. 정치학자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는 오랫동안 불가지론자였지만, 지난해 『Taking Religion Seriously』라는 책을 출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바튼 스웨임은 그의 변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머레이는 2000년대 초, 마틴 리스의 『Just Six Numbers』 등 우주의 기원을 다룬 이론들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빅뱅이 가능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정교하다는 사실을 접하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유일하게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가 말한 ‘이것’은 바로 모든 것의 신적 기원이었다. 결국 이러한 과학적 논의는 성경으로 돌아가게 된다. 성경의 첫 책, ‘기원’을 의미하는 창세기(Genesis)로 말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단순한 한 구절이지만, 이 한 문장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입장이 갈라진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차이가 교회 안의 분열과 긴장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창세기의 ‘한 주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신학자들은 창세기 창조 주간에 대한 여러 해석을 제시한다. (필자가 정리한 목록만 해도 아홉 가지다.) 그러나 어떤 목록을 따르든, 공통적으로 최소 두 가지는 확고히 인정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초자연적 창조이며, 자연주의를 거부한다. 창세기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으며, 실제 창조 행위와 실제 인물들이 존재했다.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가? 지구와 우주의 나이, 그리고 ‘날’(day)을 문자적으로 볼 것인가, 비유적으로 볼 것인가에서 갈린다.
▲젊은 지구(Young Earth) 관점: 6일 창조설: 24시간 하루씩 6일 동안 창조, 이상적 시간(Ideal Time): 모든 것이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창조, 이에 대해 존 맥아더(John MacArthur)와 같은 강력한 지지자들이 있다.
▲오래된 지구(Old Earth) 관점: 긴 날(Long Days):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긴 시대, 계시의 날(Revelatory Days): 하나님이 모세에게 6일 동안 계시하신 창조 과정, 날-시대(Day-Age): 실제 6일 창조이되, 각 날 사이에 긴 시간이 존재 (존 레녹스의 『Seven Days That Divide the World』는 이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문학적 구조(Literary Framework): 6일은 문학적 장치 (C. S. Lewis, 팀 켈러,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등이 선호), 이스라엘 중심(Israel Focus):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 땅의 창조에 초점, 간격설(Gap Theory): 1절과 2절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존재
그렇다면 어느 이론이 옳은가? 필자는 과거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의 『Defenders』 시리즈를 들으며 그의 결론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는 각 이론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떤 이론을 옳다고 믿는지 궁금하시겠죠?”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진 세계적인 기독교 사상가조차 100%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진정으로 그리스도께 헌신된 위대한 신학자들조차 창조 방식에 대해서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에는 굳게 손을 맞잡는다.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시간 + 물질 + 우연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토론의 주제는 될 수 있지만, 분열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The God Who is There』에서 이렇게 말했다: “창세기 1–3장을 제거하면, 참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할 수도 없고 기독교가 제시하는 답을 제시할 수도 없다.”
필자는 이에 동의한다. 창세기 첫 장들은 단지 ‘어떻게’의 문제가 아니라, ‘왜’와 ‘누가’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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