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배안호 선교사.
배안호 선교사.

“태도가 고도를 결정한다(Attitude to Altitude)
들어가는 말(서론): “고난(苦難)의 악재(惡材)를 축복의 약재(藥材)로 살아갑시다”(조봉희)
‘실망, 절망, 그래도 희망을 품고 싶을 때 하나님께 던지는 ‘21가지 질문’과 통쾌한 해답

‘오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 자신감이 떨어질 때, 낙심이 지속될 때, 삶에 답이 없어 답답할 때, 믿음이 흔들릴 때,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을 때, 내 힘으로 살아가기 막막할 때,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을 때, 삶의 많은 것을 빼앗긴 것처럼 느껴질 때, 삶의 굴곡이 이해되지 않을 때, 질병과 아픔으로 고통 당할 때, 사방이 꽉 둘러 막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보다 내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질 때, 예상치 못한 당혹감을 느낄 때, 삶에 기적이 필요할 때, 축복받을 그릇을 만들고 싶을 때, 이유 모를 고난에 답답할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인생의 악재가 다가올 때, 시련을 이겨 나가고 싶을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실망할 때’. 21가지 ‘ㄹ때'를 저자는 목차에서 제기한다.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다>(조봉희, 교회성장연구소, 2023 300페이지). 벌써 책 제목에서 선명한 답이 보인다. 충분히 기대해도 좋은 멋진 책이다. 이 서평을 2,3페이지 만 읽어도 힘이 솟고 용기와 소망이 넘칠 것이다. ‘벤처(도전)목사’ 다운 묵직한 메세지가 압권이다. 인생의 미래는 믿음으로 투자하는 만큼 거둬들인다는 ‘영원을 위한 현재의 투자’를 배우게 된다.
“저는 군대에서 허리(요추) 골절상을 입고 뼈를 이식하여 유합하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반듯이 누워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몸을 몇 차례씩 가누며 선잠을 잡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으로 목디스크도 터져서 수술했고, 작년에는 복부대동맥과 척추 사이에 림프종이라는 암이 생겼습니다. 암의 위치가 좋지 않은 곳에 있어서 방사선치료도 못합니다. 접근이 어렵고 위험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군대서 수술 받은 허리뼈 압박 후유증의 문제로 디스크까지 심하게 터져서 병원에 입원하여 또 한번 고난의 터널을 지났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했습니다.” (p.5, 저자의 머리말이다. 엄청난 고행 수련, 영혼의 사막여행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본서의 제목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다>에서 벌써 힌트가 보인다)

조봉희 목사는 목동 지구촌교회(1988년 개척) 담임목사다. 총신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 Fuller 선교대학원. Belhaven University 명예박사. 교회성장연구소 이사. 극동방송 이사. 알타이 선교회 이사장. 미션유럽 이사장. 한국밀알선교단 이사장. 저서: <벤처목회>/<벤처인생>/<벤처비전>/<고난 돌파>(나침반). <이기는 신앙>/<사랑은 동사다>/<부모갱신>/<위로> 이상은 (교회성장연구소)

서평자는 ‘고난’/’악’/’아니라’/’약이다’ 4부 중에서 “연전연패에서 연패연전(連敗連戰) 신앙으로”, “성령을 전염시킵시다”, “갑자기의 은총을 기대합시다”,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다” 4편의 주옥설교의 핵심을 요약하면서 서평 할 것이다.

1. ‘낙심이 지속될 때’: 연전연패(連戰連敗)에서 연패연전(連敗連戰) 신앙으로(잠24:16)

도서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다’
도서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다’ 표지 이미지.

“의로운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지지만 악인은 단 한 번의 재앙으로도 쓰러지고 만다” (잠언24:16, 현대인의 성경)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연전연패 가운데서도 ‘계속지고 있지만 계속 싸우는 자’다. 곧 연패연전(連敗連戰)하는 자다. 집념과 투혼의 사람이 결국은 승리한다. 그래서 성경 잠24:16은 분명히 “의로운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자, 신앙인을 가리킨다. ‘7번’ 넘어져도, 곧 완전히 망해도 끝장이 나도 믿음의 사람은 결국은 다시 일어선다는 뜻이다.

“밝히면서도 피어나는 민들레 같이!” (씨 없는 수박의 우장춘 박사, 좌우명)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신앙인도 실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즘은 급변하는 시대다. 변수와 굴곡이 많지만 오뚝이처럼 칠전팔기(七顚八起) 자세가 필요하다. 대개 성공하는 사람은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가 탁월하다. 한국의 위대한 식물학자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는 자신의 책상 앞에 좌우명(座右銘)을 써 붙였다. “밝히면서도 피어나는 민들레 같이!”, 우리가 잘 아는 박지성 선수는 축구선수로 최악의 조건인 평발로 세계적 선수가 되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한 승리자’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주저앉지 않는다.

“나도 삶의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병원 저 병원 가보고, 이 의사 저 의사를 만나보면 오히려 낙심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간다.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들어도 낙심하지 않는다. 내 인생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p. 46, 저자의 진솔한 신앙고백!)

일반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3가지 좌우명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 둘째, 반드시 끝까지 해낸다. 셋째,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도 포기에 익숙한 자가 되지 말고, 끈기에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포기를 포기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포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이미 승리의 궤도에 올라선 것이다” (pp. 46-47, 저자는 계속 말한다. “우리는 퇴보에 익숙하지 말고, 진보에 익숙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입니다”(소설가 박상륭): ‘앓음다움’ → 아름다움 → ‘사람다움’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많은 아픔의 과정을 거쳐 ‘앓은 사람답다’ 가 곧 ‘아름다움’이 이루어 진 것이다. 그래서 시인(천영희)은 아름다움을 ‘상처가 피워 낸 꽃’이라 했다. 상처를 경험하고 슬픔을 삭인 사람들만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살아간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앓고 난 뒤의 ‘사람다움’이다. 사람은 결코 시련과 역격을 통해서 더욱 사람다워 가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처가 있는가? 아픔을 겪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람다운 작품으로 빚어 가시는 중이라고 믿기를 바란다. 이것이 승리이다” (p. 47, 서평자 강조)

2.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을 때’: 성령을 전염시킵시다(삼상19:18-24)

감기 등 전염병의 파급력은 대단하다. 5년 전에 발생한 코로나 19은 삽시간에 지구촌으로 퍼졌다. 세계 도처에 제2차, 3차 감염으로 엄청난 사망자를 내며 무섭게 번져갔던 그때를 우리는 악몽처럼 기억한다. 앞으로 또 어떤 전염병이 발생하여 펜데믹을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인류역사를 보면 전쟁으로 죽은 자보다 주기적인 전염병으로 죽는 인원이 더 많다.
성경에는 성령체험의 전염력이 질병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함을 증거한다. 복음의 강력한 ‘은혜의 전염력’이다. 단 한 사람의 신앙이 온 집안이 예수 믿고 그 가문/혈통이 예수혁명을 가져온다. 실제로 성령 충만한 사람 곁에 있는 모두가 성령 충만해 진다.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 옆에서 같이 기도하면 덩달아 힘차게 기도한다. 반대로 예배 중 졸음/하품하는 신자 옆사람은 덩달아 전염이 된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전염시키는 ‘거룩한 숙주’가 되어야 한다.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의 부하들이 성령체험 → “사울도 예언자의 한패가 되었느냐?”(24절)

오늘의 본문(삼상 19:18-24)은 성령의 엄청난 전염력의 실제를 보여준다. 다윗은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로 미운털이 박혀 피신생활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땅 전역에 피해 다니다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자 그는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인 라마로 올라갔다. 선지자이자 제사장인 사무엘은 기도와 성령으로 채워진 리더십을 발휘했다. 자신의 고향에 신학교를 세웠다. 자신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바로 그곳에서 성령의 사람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현대어 성경은 ‘나욧’을 “Prophets Village’ 곧 선지자 동네로 명명하였다.

다윗은 피신생활로 지친 영육에 성령으로 새 힘을 불어넣고자 사무엘 신학교를 찾아간 것이다. 성령 충만한 동네에도 은혜를 체험 못한 한 사람의 밀고로 사울은 군졸을 보낸다. 희한하게도 다윗을 잡으러 온 그들(3번째 군인들까지) 모두가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사울이 직접 다윗을 잡으러 왔지만, “성령님이 그를 하늘의 능력으로 덮어 버리신 것”이다. 이런 드라마 같은 역사를 성경에 기록한 것은, 교회에 오기만 하면 성령을 체험하는 영적분위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목동 지구촌 교회는 실제로 이런 신학교 같은 성령 충만한 공동체다.

교회는 ‘성령 충만한 공동체’: “교회는 성령역사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 중 하나는 ‘성령 충만한 공동체’이다. 교회는 성령이 임재하고 역사하시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성령께 사로잡히는 은혜의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중략) 그래서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구촌교회 특별 새벽기도에는 양복을 입고 가면 안 된다.” 눈물로 다 젖기 때문이다. 예배당에 발을 디뎠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회 행사에 초청받아왔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을 갖게 되어 지금까지 훌륭하게 헌신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우리 교회 대다수 리더가 그러하다. 이처럼 교회는 성령이 운행하시는 능력의 현장이어야 한다. 성령체험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p. 113)

3. ‘사방이 꽉 둘러 막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갑자기의 은총을 기대합시다(행9:1-20)
사도행전은 “갑자기”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성령님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2장). 베드로가 가두어 놓았던 옥문이 ‘갑자기’ 열린다(4장). 성령님을 속이고 거짓말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갑자기’ 죽고(5장), 기독교를 박해하던 헤롯왕이 ‘갑자기’ 병들어 죽는다(12장). 사도 바울이 감금되었던 빌립보 감옥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감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린다(16장). 이즘 같은 암울한 시대에 우리에게도 이 같은 ‘갑자기 은혜’가 절실하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 정치계에 수개월 내에 ‘갑자기의 은혜’가 곧 임할 것이다.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체험이 필요하다”.
본문(행9장)은 사울이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다. 광신적으로 예수쟁이를 핍박하던 사울에게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로 부터 밝은 빛이 사울을 둘러 비쳤습니다”. (3절, 쉬운성경) 사울은 눈먼 인생에서 눈뜬 인생이 되는 기점이다. 해보다 더 밝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행26:13).

경이로운 거듭남의 체험을 통해 바울은 혁명적인 변화를 받았다. 어두운 영혼이 밝은 영혼으로, 성난 늑대가 순한 양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변화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대한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인간혁명이 일어난다. 서평자도 20세 때 혁명적 사건이후 인생혁명이 일어났다.

“갑자기 성령을 체험하는 혁명적 은혜가 필요하다”
사도행전 전체는 시종일관 ‘기도할 때 성령을 체험하는 스토리’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이 첫 번째 축복(first blessing)이라면,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두 번째 축복(second blessing)이라고 할 수 있다. 세례는 받았는데, 교회는 다니는데 성령 없이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성경공부하고, 제자훈련하고, 직분까지 받았지만 성령 없이 살아가니 신앙의 역동성이 없는 것이다” (p. 170, 서평자가 알기로는 ‘second blessing’을 경험하지 못한 예수쟁이가 너무너무 많은 듯하다. 선교사/목회자/신학교수 중에도 꾀나 많다)

왜 우리는 기적을 일반상식처럼 체험하지 못할까? 기도의 양이 꽉 차면 ‘갑자기의 은총’이 임한다. 물은 100도C에서 끓는다. 99도C까지는 별 변동이 없다가 100도C가 되면 갑자기 끊는다. 물이 수증기로 바뀌어야 또 다른 힘을 발휘한다. 기도의 온도를 100도로 끌어올려야 한다. 기도의 양이 차기만 하면 성령님이 기름 부어 주신다.

“그렇다. 우리가 기도하며 사는 만큼 점핑의 역사가 일어난다. 신분의 점핑, 축복의 점핑, 지평의 점핑이 일어난다. 평범한 스펙을 뛰어넘는 점핌의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계속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다 보면 갑자기 응답의 기적이 일어남을 약속하신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것이 ‘포기보다 끈기에 익숙해지자’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에 있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P. 173, 예수쟁이는 독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4. ‘이유 모를 고난에 답답할 때’: 고난은 약이 아니라, 약이다(요9:1-3)

“암진단을 받은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교우들의 뜨거운 중도기도와 주님의 은혜로 지난 1년 동안 잘 극복해 왔다. 이렇게 1년씩 20년만 연장해도 85세까지 산다. 아이러니하지만, 암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치료를 받다 보니 전반적으로 더 건강해졌다.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p. 235, 조봉희 목사의 삶과 설교(사역)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삶자체가 기적덩어리다. 고난은 악이 아닌 약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저자는 펜데믹 세계적 고난도 악이 아니라, 약이라고 하였다. 코로나 악재가 주는 7가지 선물들이라 하였다. 첫째, 사람들이 불필요한 외부활동 줄이고 일찍 귀가한다. 둘째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셋째는 부부가 서로 배려하고 보호한다. 넷째, 삶이 단순해지고 경제적으로 절약한다. 다섯째, 여러 종류의 질병이 예방된다(감기/결막염/수족구병) 여섯째,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갈망하게 된다. 일곱째, 아이들이 집에 머물며 좋은 음식을 먹어 더 튼튼해지고 있다. 세상의 종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는 모든 고난은 전생의 죄 값이나 저주로 규정한다. 인과응보·업보·운명으로 규정한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님을 확실히 증명한다.

오늘 본문(요9:1-3)은 ‘가시 때문에’라기 보다 ‘가시 덕분에’ 긍정의 신앙을 심어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3절, 우리말 성경)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시련이나 고통에 대하여 ‘왜’라는 물음보다, ‘하나님께서 이 시련을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실까?’라는 희망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인생의 어떤 문제를 만나도 희망방정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는 인생을 해석해야 한다. 나는 이 표현을 참 좋아한다. “당신의 고통 뒤에는 하나님의 큰 목적이 있습니다”(God’s purpose behind your pain). 맞다 고난은 악이 아니라, 약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약이 될까?” (p. 238)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낸다”(3절)는 헬라어로 “밝히 보여주신다/눈을 열어 주신다”는 뜻이다. 극심한 고난을 통해 우리 눈에 비늘을 벗겨 주신다. 인생살이가 만만치 않다. 저마다 길고 짧은 고난의 터널/영혼의 어두운 밤을 만나게 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한다. 캄캄할수록 별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인생의 어두운 밤이 하나님의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열어준다. 모두가 참 어려운 시절이다. 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p. 240, 요9장의 눈뜬 시각장애인과 그 부모의 생생한 간증 → ‘나의 간증’이 되어야)

나가는 말(결론):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복된 섭리가 있다”/”고난은 변장 된 축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 우리말 성경)

조봉희 목사는 인생의 21가지 고난 앞에서 서있는 자들에게 21개의 시원시원한 간증, 강해 설교를 통해서 명명백백하게 성경적, 실제적,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참으로 통쾌, 유쾌, 상쾌한 책이다. 1편, 1편의 설교들이 독자들의 심령의 시원케 하는 청량음료 메시지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하지 않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다. ‘은혜의 보좌’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른다. 얼마나 좋은 보좌인가? 24시간의 십일조시간, 2시간 24분 보좌 앞에 나아가자!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진행형이다”라고 말한다. 때를 따라, 때에 맞게, 제 때에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긍휼의 지성소로 나가기만 하면 주님은 달려와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에 맞게 도우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긍휼의 지성소로 나와야 한다. 주님은 언제나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시다가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씀중의 하나가 시편 31편 19절이다.” (p. 297, 서평자도 ‘나를 위해 쌓아 두신 은혜’를 매일 기대한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31:19, 수년전까지, 서평자는 이런 엄청난 약속이 성경에 있는 줄도 몰랐다. 얼마나 억울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삶인가?, 기도의 세계에 눈떠야 한다)

서평 후기

조봉희 목사님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승부를 건, ‘신앙의 대모험가’다. 지난 6월 독일 뭰헨에서 개최된 <2025년 미션유럽 컨퍼런스 & 포럼>서 오랜만에 만나 뵈어 반가웠다. 폐회예배 때 조목사님의 짧은 메시지가 서평자의 심령에 깊이 각인되었다. “’Around to Ahead!’ ‘높이 떠서 멀리 보라’. 독수리는 쩨쩨하게 갈매기, 까마귀와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독수리다. 기준을 높여라. ‘Attitude to Altitude!’ ‘태도가 고도를 결정한다’. 영적 수위가 낮다. 수위를 높여 날자.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하다가 지쳐 버린다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렘12:5). 말로만 선교하지 말라. 행함으로 선교하라! 지기 기준을 높여라. 동역자들과 단순 비교하지 말라. 우리는 펄펄 살아있는 전사(戰士)다. 거시적 비전을 가져라”.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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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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