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의 기고글은 ‘판단할 것인가, 판단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To judge or not to judge, now that is a question)를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해리스 박사는 컨설팅 회사인 Avenir Leadership Institute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필요한 리더 양성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충돌하는 진실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에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고 배웠지만,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는 도덕적 감시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평가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은 각양각색이다”, “네게 맞는 방식이면 괜찮다”와 같은 관대함으로 차이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

다른 사람의 행동에 무관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예수의 말씀을 인용할 것이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그 방식으로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며, 너희가 사용하는 그 잣대로 너희에게 재어질 것이다.”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웃이 또다시 간통을 하거나, 술에 취해 거리를 질주하거나, 배우자와 자녀에게 끝없는 학대를 퍼붓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세 현명한 원숭이처럼 눈, 귀, 입을 막고 악을 보지, 듣지, 말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괜찮은가? 침묵이 언제 무책임한가? 침묵이 학대를 부추기는 경우는 언제인가? 우리는 일부 일들을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요한복음 7장 24절에서는 이렇게 부드럽게 말씀하신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판단을 하라.”

판단(judging)과 올바른 판단(right judgment)은 다르다. 판단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행위다. 여기에는 우리가 모든 동기를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그들의 입장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문제는, 온전히 아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며, 우리 인간은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가정을 바탕으로 판단하며, 그중 상당수는 거의 항상 틀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단정지은 적이 있는가?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중에 그 사람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각이 바뀌고, 결국 좋은 친구가 된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을 알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항상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종종 그렇다. 어떤 정보는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7장의 예수님의 명령의 핵심은 우리 모두에게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분노할 때, 우리는 스스로 안에 있는 그림자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그림자가 우리를 멈추게 해야 한다. 우리는 최선의 모습으로 자신을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의 최악의 모습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그들의 평가가 다를 수 있다.

예수께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 “올바른 판단”을 하라고 하신다. 올바른 판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 가치 평가가 아니라, 특정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현명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누군가 특정한 길을 걸으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또한 그 판단을 공유하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할 줄 안다.

누군가 내게 “조금 걱정된다. 네가 이렇게 계속하면 스스로 지치거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라고 말할 때, 나는 이를 판단이 아닌 배려로 받아들이며 감사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올바른 판단은 때로 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는 또한 올바른 판단의 전제 조건으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요한복음 7장 24절의 문맥은 안식일 법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겉보기에는 예수가 법을 어긴 것처럼 보였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는 안식일 법의 본래 목적을 지키고 있었다.

올바른 판단은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는 쉽지 않지만,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성경의 모든 법과 명령에는 ‘왜’가 있으며, 우리는 겸손하게 그 이유를 탐구해야 한다.

올바른 판단은 또한 큰 연민으로 이어진다. “정말 역겨운 사람”이라고 성급히 단정하는 대신, 깊은 절망, 반복된 실망, 올바른 삶의 모델 부재, 또는 세상과 삶을 보는 창이 없는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실패가 아닌, 도달하지 못한 잠재력을 볼 수도 있다. 올바른 판단은 책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의 하나님 주신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요한복음 16장 8절에서 성령의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성령이 아니므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대신 사랑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며 성령이 필요한 깨달음을 주도록 신뢰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그 사랑을 볼 때, 성령은 깊은 회개와 새로운 삶을 향한 갈망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새롭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사랑해야 한다. 필요할 때 성령이 깨닫게 하실 것을 믿고 맡기면 된다. 사실 나는 성령이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다가, 결국 성령이 내 교만과 사랑의 부족을 깨닫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판단하지 말라 그러나 올바른 판단을 사용하라. 올바른 판단은 겉모습을 넘어보고, 호기심을 가지며, 사랑으로 형성되고, 자신의 그림자를 기억한다. 올바른 판단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성령이 세상에서 오직 성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는 것을 지켜보며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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