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욘1:1~5]
주전 750년 지중해의 한 항구도시 욥바에 선지자 요나가 배표를 사서 승선했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다시스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가라고 지시한 곳은 니느웨였는데, 정반대의 길을 택하여 자신이 선택한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요나는 배를 타고 사람들의 시선이 닫지 않는 곳을 피해 배 밑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 잠을 청했습니다. 요나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요나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 잠자고 있는 평신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요나의 코고는 소리를 우리는 교회 안에서 많이 듣고 있습니다.
윌리엄 맥래(William McRae)는 오늘날의 교회를 비유하여 마치 축구 경기장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회에 운집하는 수많은 성도들은 경기장의 관객으로, 격무를 감당하는 교회의 유급 직원들은 고액의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안고 있는 기형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결국 관객으로 전략한 대다수의 성도들은 사역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요 평가자일 뿐이고, 섬김과 봉사의 여러 업무는 유급직원과 소수의 평신도 헌신자들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거대한 그룹이 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평신도 그룹입니다. 교회 안에는 1% 교역자와 99%의 평신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시절이 아합왕 때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엘리야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은 아왑왕 시절에 선지자 엘리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아합 왕궁에 한 인물을 준비하셨는데, 그가 바로 궁내 대신 오바댜입니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왕상18:3-4] 오바댜는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일 때도, 백명을 굴에 숨기고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던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오바댜는 왕궁 맡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최고로 악한 아합과 이세벨에게도 인정을 받았기에 그는 왕궁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바댜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으며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미치면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교회를 정확하게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1명의 엘리야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오바댜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 명[왕상19:18]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는 유일한 길은 평신도를 깨우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영향력을 회복하고, 상실한 거룩한 능력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평신도를 재발견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 안에 본연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평신도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시대를 선도하고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잠자는 거인인 평신도를 깨워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교회의 부흥을 원한다면 교회 건물을 새로운 양식으로 바꾸어 짓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목사의 가운에 줄을 하나 더 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주체요, 얼굴인 평신도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교회는 평신도를 사역자로 발굴하고, 그들 속에 잠재된 역량을 이끌어 내어 교회를 위해 진정한 사역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해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오늘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분명히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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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