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 18:21~22)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 경제 6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어두운 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크리스천들이 많은데 세상은 왜 변화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신도들에게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살도록 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평신도들을 양육한다고 하면서 평신도들에게 신학교육을 시켰습니다. 평신도들이 몸 담고 있는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에게 소명의식을 고취시켜 주고, 비전과 리더십을 소유하게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전문성을 길러주어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실패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평신도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의 시스템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신학교육의 문제는 전문 신학의 훈련은 있으나, 그 신학이 살아있는 목회와 연결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신학 과정을 통하여 배출된 목회자는 현재의 패턴을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신학체계로는 평신도 목회란 처음부터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를 양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도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규모가 있는 교회는 자체적으로, 규모가 작은 교회는 노회 차원에서 신학원을 세워 성도들을 교육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세운 신학원의 커리큘럼이 평신도의 전문성과 은사를 발굴하여 육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학교육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목회를 위해서는 먼저 평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소명과 평신도들이 가진 전문성과 은사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3) 양육체계란 한 성도를 성장시킬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전도한 사람을 체계 있게 양육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잘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양육 목표란 첫째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요,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요,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고,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성도가 교회라는 성경적인 교회론을 회복하고, 평신도들이 몸 담고 있는 세상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평신도 양육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저는 신광두레교회에 평신도 사역자로 부름을 받고 와서 평신도 사역자 훈련원을 세워 우리 성도들을 체계적으로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이제부터 출발하는 평신도 사역자 훈련원에서는 약 5년 과정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평신도를 체계적으로 양육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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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재





























































